경매

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50화

by 오래된 타자기


제1부 11-3



알 킬할

1232년 만성절 축일


마지막 주화가 저울에 올려졌다. 가벼운 진동이 저울을 흔들다가 이내 균형을 이뤘다. 타협을 본 뒤에 생명을 보장받은 쿠비르는 가슴에 손을 얹고 중얼중얼 알라신께 감사를 드렸다. 밤은 낮보다 길었다.


한 번에 포로가 될 뻔한 위험을 모면한 상인들이 포로들 몸값을 낮추기 위하여 온갖 수단을 강구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수비대장 쿠비르는 그들의 예기치 않은 행운에 순조롭게 주민들을 납득시켜야만 할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주민들 개개인에게는 포로가 된 몸값을 배당해야만 했다.


이 모든 것을 결정함에 있어서 혼란이 다시 찾아왔다. 모두가 몸값은 지불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누구도 돈주머니를 열기를 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각자 비참하게 흐느끼며 알거지가 될 거라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이때 상인 부훼다가 나서서 해결책을 제시했다. 동류의 인간들의 졸렬함을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부훼다는 포로의 몸값을 그가 다 지불하겠노라고 의사를 표명했다. 천복으로 각자의 부담이 덜어진 것에 대한 흥분의 물살이 높아지다가 이내 딱 멈췄다. 부훼다가 상세한 내용을 설명하면서부터였다.


부훼다는 일단 자기가 몸값을 다 지불하는 대신 각자는 그에게 배당된 돈을 갚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이자를 쳐서. 이는 또 다른 위험요소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부훼다는 모범이 될 만한 일들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섰지만, 어느 누구도 이 남자에게 빚을 지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해결책이 모색되기에 이르렀고 각자 배당된 돈을 구하러 자리를 떴다.


롱슬랭은 내내 저울질에 빠져있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롱슬랭은 허리춤에 상아로 만든 나팔을 꿰차고 있었다. 쿠비르가 살려준 대가로 그에게 준 선물이자 증표였다.


“알 킬할의 가문들은 약속을 지켰다. 나는 내가 한 약속을 지킬 것이다. 그들에게 전하여라. 우리는 볼모들을 모두 자유롭게 풀어줄 것이다.”


수비대장 쿠비르는 이슬람인들이 무리 지어 있는 광장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약속을 지킨다는 롱슬랭의 말이 전해지자 군중들 가운데 환호성이 일어나면서 이내 웅성대기 시작했다. 프로방스 사내는 쿠비르에게 다가갔다.


“그들에게 전하라. 3명의 유력인사가 누구인지를 밝혀 달라 이르라. 그들은 처음 포로가 된 이들을 되찾을 것이다. 12명의 여인네들을.”


수비대장 쿠비르는 안절부절못했다.


“주민들께 다시 요청하기에는 무리니 좀 더 시간을 주셨으면 하오. 지금 그것을 말하면 여기 있는 사내들이 흥분하여 날뛸 위험이 있소이다.”


롱슬랭은 아케이드 쪽을 향하여 손을 들어 보였다. 궁수들이 테라스에서 활을 날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똑똑히 보거라! 어떤 이유에서 궁수들이 이해심을 갖고 참고 기다리는지를.”


무거움에 짓눌린 듯 쿠비르는 조건들을 설명하기 위하여 몸을 돌렸다. 롱슬랭은 기욤을 불렀다.


“넌 내가 내린 지시대로 가장 나이 많은 이들을 추려냈는가?”


“그리하였나이다. 각 이슬람 사원마다 네 명씩 추렸고, 유대인 노인은 잘 가둬놓았나이다.”


조심스럽게 롱슬랭은 마을에 있는 이슬람 사원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리고 서로 간의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그들 모두를 되돌려 보내기 전에 여기로 데리고 와라. 적어도 한 시간 이내로.”


쿠비르는 군중들에게 웅성거리지 말고 제발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다. 더군다나 궁수들은 아케이드 흉벽에서 아래쪽만 겨누고 있었다. 광장으로 통하는 길들은 또 다른 병사들이 바리케이드를 쳤다. 쿠비르의 목소리는 쉴 대로 쉬어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흥분한 이들이 수비대장에게 달려들었다. 쿠비르는 지금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또 다른 여자들은?” 기욤이 롱슬랭에게 물었다.


누그러뜨릴 수 없는 태양이 광장의 어둠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롱슬랭은 빛이 번져가는 돌바닥에 장화를 문질렀다. 그러자 강렬하면서도 가느다란 빛 한 줄기가 핏물로 얼룩진 가죽 장화를 물들였다.


“너는 애꾸눈을 데리고 가서 시리아 인들에게 경매가 시작될 거라고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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