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52화
제1부 12-1
영국 옥스퍼드
지금 현재
올드 마리 벽시계가 정오를 가리켰다. 수업이 종료되자 대학생들이 학내를 벗어나 골목길로 쏟아져 나와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정원에 옹기종기 모여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음울한 구내식당에 갇혀있기보다는 햇살 가득한 정원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날씨는 너무나 화창하기만 했다.
훼인스워드 경은 빠른 걸음으로 널따란 잔디밭을 가로질러갔다. 잔디밭은 리전트 파크 칼리지 입구와 칼리지 도서관을 가르고 있었다. 그는 하마터면 웃고 떠들면서 다가오는 두 명의 대학생들과 부딪힐 뻔했다.
자신이 대학생이던 시절 이렇게 무례하지는 않았다고 학생들에게 말하려던 것을 참았다. 선생들은 그에게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어른들에게 인사하는 법부터 가르쳐 주었고, 연장자의 길을 가로막는 짓은 꾸짖음 당할 단정치 못한 행실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옥스퍼드 대학은 어른들의 권위에 예의 바르게 처신하고 이를 존중하는 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대학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시대는 변했다. 악랄하게.
훼인스워드는 돌샘 앞에서 춤을 추며 난리 법석을 떨고 있는 한 떼의 아이들을 경멸에 찬 눈길로 쏘아보았다. 머슴애들은 단정치 못한 옷차림으로 – 옷을 거의 풀어헤치다시피 한 – 서로 큰 목소리로 떠들어대고 있었으며, 여자아이들은 길이가 너무나 짧은 치마를 입은 채, 우아함이란 전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태도로 오리주둥이처럼 입을 내밀면서 탄산음료를 홀짝이고 있었다.
훈육은 왕국의 도처에서 붕괴되어 갔다. 훼인스워드는 자신과도 같은 이들이야말로 보수주의의 최후의 보루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귀족 신사는 옥스퍼드의 권위와 지성을 혼합하여 벼려서 만든 갑옷을 잃어버린 학생들과 교수들을 측은하게 여겨야 하는지 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훼인스워드는 지붕 잇는 사람[1]의 시절이기도 하던 그가 공부를 하고 훈육받던 시절을 아쉬워했다. 군주제로 이루어진 왕국을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기둥 가운데 하나인 보수주의는 그 마지막 불씨마저 꺼져가는 느낌이었다.
철의 여인의 영광스런 시대에는 선생들은 당당하게 빛나는 엘리트주의에 애착을 느낀 칼리지들의 선대들이 이은 둥근 지붕 아래 웅변조로 연설하듯 강의를 이끌어갔다. 그러나 사회의 자유로운 분위기라는 독극물이 대학을 이루고 있는 기초나 원리 전반에 스며들고 해를 거듭할수록 칼리지 대학생들은 점점 사회 윤리의 이름으로 개인에게 가해지는 체제의 철폐를 주장하는 개인의 자유주의적 태도에 동요해 갔다.
오직 여러 다양한 교회들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던 몇몇 대학들만이 여전히 이에 소속된 학생들에게 피상적이나마 전통에 입각한 교육을 머리나 몸에 배도록 지도했다. 이러한 점이 훼인스워드로 하여금 종교 단체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인정하게 만든 유일한 덕목으로 작용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의 한 칼리지에 최고의 명성과 권위를 자랑하는 고고학 강좌를 설립한 존 바넥스 경의 조각상을 둘러보고는 오래된 도서관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제시간에 맞춰 템플에 도착하기 위하여 서둘렀다. 템플에는 의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결투였다. 이제 더 이상 그와 결투를 벌일 필요가 없어졌다. 지난번 투표는 확실히 그의 권력을 뒤흔들어놓았다. 형제자매들의 다수결 투표가 이를 입증했다. 그게 핵심이었다. 메커니즘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냉혹하리만치.
그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몇 명의 학생들이 떼를 지어 그리 급할 것 없는 걸음걸이로 본관 입구로 쏟아져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기다란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허름하고 낡은 분위기 속에 복도는 도서관으로 이어졌다.
열람실은 늘 그렇듯이 황량하기만 했다. 자신의 집무실에 앉아 문 지키는 개처럼 사서가 럭셔리 자동차에 관한 잡지를 뒤적이고 있었다. 훼인스워드는 처음 기사단에 입회했을 때부터 사서가 지금 보고 있는 잡지와 똑같은 스타일의 잡지나 훑어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사서는 어디 출신일까? 그는 왜 이 자리를 선택한 것일까? 그는 검은 템플 기사단 내에서 획책되고 있는 음모에 관한 정황을 알고 있을까? 귀족 신사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훼인스워드는 다만 그 사람을 알비용(영국의 옛 이름)의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적막한 처소에 틀어박혀 살다가 죽은 그 선량한 옛날 한 집안사람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더도 덜도 아닌.
“안녕하십니까?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존 바넥스 경의 템플 연대기』를 읽어보려고 찾는 중입니다.” 훼인스워드가 요청했다.
사서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면서 의심스런 눈길로 훼인스워드를 쏘아보듯 쳐다보았다. 몇 년간을 어느 누구에게나 그렇듯 대해왔다는 듯이 전혀 바뀌지 않을 것 같은 퉁명스러움이 몸에 밴 듯한 태도였다. 영혼까지도 샅샅이 뒤질 듯한 사서의 눈길이 템플 단원들 가운데 한 명과 같다는 생각을 떠올리게까지 만들었다.
“언제 출판된 책입니까?”
“1875년입니다. 장 지아나브 역사학자가 서문을 쓴 책이죠.”
“당신에게 행운이 따랐군요. 어느 누구도 빌려 가지 않은 덕분에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군요. 책이 도서관 책꽂이에 꽂혀있네요.”
비밀번호는 3개월마다 바뀌었다. 훼인스워드 경은 이상하리만치 복잡한 날짜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열람한 날짜를 찾아냈다. 사서 집무실 출입문은 열려있었고 귀족 신사는 책을 빌리기 위해서는 문 앞에 비치되어 있는 동전 주입구에 동전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작은 동전 하나를 집어넣은 뒤 문을 통과했다.
[1] 프리메이슨 단원을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