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의 템플

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53화

by 오래된 타자기


제1부 12-2



영국 옥스퍼드

지금 현재


훼인스워드는 암흑의 템플 속으로 들어가 한가운데를 향하여 나아갔다. 마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템플 의장의 희끄무레한 얼굴이 동쪽에서 떠올랐다. 다행히 의장 이외는 다른 사람은 없었다.


몇 개의 나무 층계, 연단 그리고 잘 설치된 조명기구 등, 그는 그 이상으로 권위를 상징하는 장면을 연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실내의 모든 장식들은 방에 대한 권위를 한층 강화시키는 촉매제였다.


셰익스피어의 문체는 귀족 신사가 꿈꾸던 바였다. 음울하고 모든 것을 최소화한 실내 장식을 이미 상상했던 터라 그리 놀랄 일은 못되었다. 마찬가지로 의장 또한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마을인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단장처럼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이였다.


훼인스워드는 공손하게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마치 휘파람을 불 듯, 경쾌한 어조로 유머가 섞인 말들을 쏟아냈다.


“자정부터 정오까지. 나는 자네 명령에 따랐네.”


하얀 유령은 눈 한 번 깜박하지 않은 채,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너무 늦었어.”


“도시로 진입하는 중에 길이 좀 막혔네.” 귀족 신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의장은 얼어붙은 듯 꼼짝 않은 채였다.


“자네는 왜 내가 그대를 소환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아니. 모르겠네.”


의장의 창백한 얼굴 위로 헤드라이트 같은 강렬한 빛이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훼인스워드는 의장이 자신을 비웃지 않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이제는 그와는 무관한 일이 될 참이었다. 검은 템플 단장이 약간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모든 일을 중단해야만 하네.”


“너무 늦었네. 자네는 우리 형제들과 자매들이 투표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이해할 것이네. 내 그대에게 부탁하노니, 형제여, 아직 시간이 남아있을 때, 일을 중단하는 것이 좋을 듯하네.”


훼인스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자네는 항상 이야기할 때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는 버릇이 있네. 행동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데 말이야. 자네는 객쩍은 소리나 늘어놓고 있는 이 프리메이슨 집회를 위해 우리의 소굴을 지켜낼 자신이 없다는 건가? 자네는 너무 노쇠했어.”


의장은 바로 곁으로 다가왔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프리메이슨 단들은 그들의 템플들에 맡기는 게 더 나아. 난 빛을 숭배하는 이들을 구별함에 있어서 나보다 그대가 더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네.”


두 사내는 서로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다. 훼인스워드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나눌 거면 내가 왜 이런데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지 모르겠네. 활동은 이미 개시됐어.”

의장은 어깨를 추켜올렸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기꺼이 도와줄 중재인과 방법을 알고 있다네…….”


훼인스워드는 웃었다.


“협박하는 건가?”


“아니, 미리 말해두는 거네. 편지 끝에 적혀있는 글들은 읽지 말게나. 과거에 실제 있었던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우리 단체가 설립되고부터 세상이 급변했어.”


귀족 신사는 잠시 대꾸할 말을 찾는 것 같았다. 화해할 마지막 기회는 남겨둘 필요가 있었다.


검은 템플은 거창한 목적으로 세워졌네. 우리 형제들 다수가 그들의 투표로 그와 같은 목표를 타당한 것으로 인정했네.”


여자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극히 미미한 차이로 표결된 과반수라. 난 우리의 의장과 같은 견해이니라.”


훼인스워드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새로운 빛의 다발이 쏟아지면서 어슴푸레하게 한 자매의 형상이 드러났다.


“나 역시!” 또 다른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우리는 우리의 임무를 벗어났어.”


또 다른 유령이 마치 요술을 부리듯 나타났다. 훼인스워드는 꼼짝 않고 서있었다. 그들은 지금 당장 그를 자신들에게 복종시키게 만들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얼어붙은 듯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전부입니까? 당신들 단지 셋……. 난 이보다 더 나은 결과를 기대했소.”


의장은 연단에서 내려왔다.


“그대가 계획한 바를 중단하기 위해서는 이만하면 되었네.”


“난 단지, 한 가지 사실만을 알기 원하네. 친애하는 의장! 자네가 기억하는 우리의 템플에 대한 것 말일세. 우리 단체 안에 두 개의 파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


“뭘 말하려 하는 것인가?”


“신봉자들과 겁쟁이들!”


의장은 몹시 상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의 선임자들은 절대 자네 같은 사람을 가입시키지 않았을 것일세. 실수였어. 굳이 그대의 질문에 답하자면 겁쟁이란 말은 적절치가 않네. 암흑 속에서는 모두가 대등할 뿐이야. 우리 셋은 템플 내에서 조화를 이루는 임무를 맡은 야경꾼들이야.”


“그럼 다른 사람들은? 내 의견에 찬성표를 던진 사람들 말이야.”


“그들은 반대하지 않았네. 어느 한 사람도……. 전략의 변화에. 요컨대 그건 논의할 성격이 아닌 것만큼은 분명하네. 자네는 이 템플을 떠날 수 있지. 오늘 저녁부터 우리는 자네가 시도하고자 한 것들을 모두 중단시킬 방법을 강구하게 될 걸세. 나는 그에 대한 책임을 지기로 했고. 우리의 임무와 합치되는 새로운 회의가 개최될 거란 말일세. 자네는 지금 떠날 수 있어. 당장!”


훼인스워드는 그들의 얼굴을 뚫어져라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출구 쪽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너무 늦었어. 떠날 사람들은 당신들이야!”


문 뒤쪽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들 가운데 두 명이 실내의 환기장치를 가동하는 소리였다. 갑작스러운 소동에 귀족 신사는 웃옷 주머니에서 작은 크기의 방독면 입마개를 꺼내 들고는 입을 가렸다. 유령들은 놀란 눈을 크게 뜨고 암흑의 천장을 향해 날아갔다. 송풍장치 소음이 다시 들리고 흰 연기가 식탁보처럼 바닥에 흩어졌다.


흰 연기는 헤드라이트 빛다발과 유사한 이상야릇한 형태를 띠어갔다. 의장은 두 손으로 목을 쥐었다. 또 다른 희끄무레한 얼굴들 역시 공포에 사로잡힌 표정으로 기침을 쏟아냈다. 마치 온몸에서 방전이 된 듯, 그들이 수직으로 곤두박질치면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자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의장이 훼인스워드에게 소리치면서 달려들었다.


의장은 훼인스워드의 웃옷 저고리 깃을 움켜잡았다. 훼인스워드는 거추장스럽게 목 부분을 꽉 조이고 있는 셔츠 단추를 풀었다. 귀족 신사는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두 눈이 방독면 사이로 튀어나온 두 개의 유리 구멍처럼 보였다.


그는 소스라친 표정으로 소리를 내지르며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세 유령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의장은 그를 향하여 기어서 다가오려고 시도하다가 두 발로부터 1미터쯤 남겨놓고 포기하고 말았다. 그는 고개를 들려고 시도했다. 몇 초 동안 두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사형 집행인은 그에게 희생당한 이의 몸을 건너뛰어 연단을 향해 꼿꼿한 자세로 걸어갔다. 그는 작은 층계를 걸어 올라가 의장이 앉아있던 안락의자에 앉았다. 멀리서 올드 마리 벽시계가 30분마다 파열음을 쏟아내고 있었다.


훼인스워드 경이 의장석에 앉은 것은 정확히 12시 30분이었다. 그는 검은 템플의 새로운 의장이 되었다. 너무도 쉽게 이루어졌다. 그는 리처드 3세를 꿈꾸고자 하는 자신을 주체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여 비난받을 만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고 그의 왕관 또한 그대로 유지될 것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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