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변방

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56화

by 오래된 타자기


제1부 14-1



알 킬할

1232년 만성절 축일


예루살렘을 빠져나오자마자 황량한 벌판에 교황의 특사를 수행할 호위부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지난 몇십 년간을 도성을 에워싼 채, 끝없이 펼쳐진 들판은 그칠 줄 모르는 전쟁으로 말미암아 점점 황폐화되었으며, 약탈자들로 온갖 고초를 겪고 있었다. 수많은 경작지들은 버려진 땅으로 뒤바뀌어갔다. 관개 시설 역시 아무도 돌보지 않은 탓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불에 타 검게 변한 농장들은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고, 농부들도 농지를 대부분 방치하거나 방어시설이 잘 구축된 부락이나 작은 촌락 주위로 둥그렇게 펼쳐진 비옥한 땅 이외에는 전혀 농작물을 경작하지 않았다.


황량한 지역에서 해가 지면 쉴 곳을 찾기가 마땅치 않은 탓도 있었다. 알 킬할을 향한 멀고 고된 길을 가는 일행에게는 무겁고도 참담한 적막감만이 엄습했다. 나무들이 키 작은 숲을 이룬 곳을 지나칠 때마다 호위부대 병사들은 의심 어린 눈초리로 수풀 속까지 샅샅이 뒤졌다.


도미니크 수사는 그런 와중에도 오직 말 목덜미만 바라보면서 줄곧 기도를 했다. 오직 교황 특사만이 전방을 주시한 채였다. 광막한 황야가 끊임없이 특사의 감정을 끓어오르게 하고 있었다.


말굽 아래 나뒹구는 돌멩이들 하며, 끊임없이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먼지바람, 이 모든 적대적인 시련들이 특사를 더욱 날렵하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이 떠오르면서 허공 속에 대낮 줄넘기를 하던 자신의 모습이 선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져 갔다. 형제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울부짖으면서 나이 어린 그를 구하는 것마저 포기하고는 마을을 떠났다.


아이는 유모의 치마폭에 숨어있었다. 있을 법하지 않은 광경들이 그의 눈앞에서 벌어졌고 뇌리에 선연히 박혀있었다. 그때 이후로 그는 날렵함만이 최고의 무기임을 깨달았다. 그와 같은 날렵함이 그로 하여금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변화무쌍하게 자신을 변신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적당한 간격을 띄우고 앞으로 나아가던 말 탄 호위 병사들은 그들의 우두머리를 조심스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많은 이들이 특사의 냉정한 표정과 이글이글 불타는 눈매에 홀렸다. 다른 이들은 조심스레 성호를 긋기도 했다. 사막의 여우가 그들을 이끌고 가고 있는 곳은 오직 신만이 알고 있을 따름이었다.


알 킬할의 도심 광장은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리는 중에 실성한 여인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프랑크 인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포로의 몸값을 올렸다는 이야기가 떠돌기도 하고, 포로 가운데 몇몇 여자들이 비밀리에 사라졌다고도 하며, 온갖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애꾸눈은 안절부절을 못했다.


“포로들이 도착할 시간이 지났는데.”


프로방스 사내는 도성의 지도를 살펴보면서 모두가 안심하라는 듯 손짓을 했다.


“기욤이 곧 도착할 것이다. 그는 첫 번째 포로가 된 여인네들을 데리고 올 것이다. 그러니 긴장들을 풀어라. 말해봐라. 몸값은 어디다 두었느냐?”


애꾸눈의 표정이 돌연히 부드럽게 변했다. 그는 목에 걸고 있는 은으로 된 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씩 웃었다.


“가장 용감한 자들로 하여금 성문을 지키도록 하여라.”


“기마병으로 할갑쇼?”


“유대인 구역 근처에 모여 있는.”


롱슬랭은 다시 지도를 펼쳐 들었다.


“앞장서거라, 이곳. 그리고 기마병들에게 전하여라, 준비하라고…….”


그러고는 집게손가락으로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독피지를 가리켰다. 광장으로 향한 오른쪽 길은 뻥 뚫려있었다.


“……명령에 따를 준비가 되어있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성심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