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킬할 도성 넓은 터

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57화

by 오래된 타자기


제1부 14-2



알 킬할

1232년 만성절 축일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도상에서 정찰병들이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도착했다. 그들 가운데 한 명이 말에서 튀어내려 교황 특사의 발 앞에 엎드렸다.


“주교님! 알 킬할 성문은 열려있사옵니다. 약탈자들은 아직 도성 안에 있는 듯하옵니다.”


“다른 움직임은 없더냐?”


“성문 근처에 단지 몇 명만이 죄수들을 지키고 있사옵니다.”


“다른 입구는?”


“없사옵니다.”


교황 특사는 몸을 돌렸다. 50명가량의 기마병들이 특사와 함께 하고 있었다. 개인 호위 무사들이었다. 사내들은 거칠었지만, 신앙심으로 똘똘 뭉친 자들이었다. 그들은 무슨 일이든지 시키는 대로 행동했으며, 절대복종으로 특사를 따랐다. 하느님을 찬양하는 가장 탁월한 군대였다.


“우리가 몸을 숨길만한 장소가 있더냐?”


“올리브나무 재배지가 있사옵니다. 특사 나리! 1리외[1] 정도 떨어져 있사옵니다. 말들은 그곳에 매어놓고 병사들은 명령에 따를 것이옵니다.”


교황 특사는 자문관 쪽으로 몸을 돌렸다. 도미니크 수사는 자신의 손톱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예쁘게 다듬은 손톱은 진줏빛으로 광택이 났다. 광택은 기러기 깃털 끝부분만큼이나 우아했다. 온갖 그릇된 말로 평가서나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독설이 담긴 잉크 물에 단련된 손가락이었다.


“도미니크 형제, 자네는 수사 복장을 하고 있으니 자네가 도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나을 듯하네.”


“소인이요?”


특사는 특유의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물론이네. 자네가 가는 것이 낫겠네. 누가 성 도미니크(도밍고) 수도회의 형제를 의심하겠나? 자네처럼 고결한 사람을?”


“주교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입구에서 도적떼에게 이르게나. 자네가 그들 모두를 책임지겠다고. 자네는 구변이 좋으니 능히 그리하리라 믿네.”


“주교님! 살인자들에게 무슨 말을…….”


“하느님의 말씀……. 전하게나. 주님께서는 자네의 노고를 덜어 줄 것이네. 우리 역시 곧 도착할 것이니 걱정 말게나.”


교황의 특사는 수사에게 어서 빨리 가라고 손짓했다. 병사들 가운데 한 명이 탄식을 쏟아내고 있는 도미니크 수사를 부축하면서 그가 말에 올라타는 것을 도와주었다.


“사막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게나. 마침내 자넨 이제야말로 진짜 수도승이 되었으니.”






숨을 헐떡거리며 기욤이 첫 번째 그룹에 속한 포로들을 데리고 아케이드 밑으로 달려왔다. 진력을 다해 뛰어왔는지 거구는 철퇴를 내려놓고 포대자루 밑에 쓰러지듯 몸을 눕혔다. 성마른 손놀림으로 호리병 꼭지를 틀어 입에 대고는 송진 내음이 강하게 풍기는 포도주를 입안 가득 들이켰다.


롱슬랭은 궁수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이행할 것을 지시하고는 이미 돌바닥을 더럽혀가고 있는 흙탕물을 피하려고 뒤로 물러섰다.


“자네는 어떻게 악마의 포도주 같은 걸 다 마실 생각을 했는가?”


기욤은 술병 꼭지를 다시 틀어막고는 바람 부는 쪽으로 몸을 돌려 트림하면서 얼굴에 웃음기를 띠운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모든 여인네들이 다 날 미친놈 대하듯 합니다. 모든 것을 잊으려고 마시는데 만일 마시지 않는다면, 난 폭발하고 말 것입니다.”


롱슬랭은 기욤에게 노간주나무 열매로 담근 술이 들어있는 호리병을 내밀었다.


“자! 마시게나. 황금과 포로들이 다 자네의 것이니 이제 예루살렘의 유곽들을 전전하면서 쾌락의 갈증이나 달래면 되겠구먼.”


소맷자락을 걷어 올리면서 기욤은 입가를 훔쳤다. 가늘게 뜬 눈은 옆으로 처져 목탄과도 같은 검은 섬광으로 번쩍였다. 기욤은 주민들이 떠들썩하게 즐겁게 노니는 광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노래 불러라! 춤춰라! 악마가 너희들을 지켜보고 있고 지옥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


프로방스 사내 역시 술 호리병을 들고 목을 축였다. 밤은 깊고 길었다. 피곤에 짓눌린 어깨가 축 늘어졌다. 바로 그 순간에 롱슬랭은 실수할 수도 있다는 걸 직감했다.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더 빨리 반응하게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순간이 아니다.


“다른 포로들은 어디 있느냐?”


“시리아 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히브리 구역을 지나 곧 도성 입구에 도착할 것입니다.”


프로방스 사내가 입술을 꾹 다물자 입가에 주름이 잡혔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광장 쪽을 유심히 바라봤다. 붉은색의 차도르로 머리를 두른 여인네 주위로 가족인 듯한 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석방된 여인네들은 몇 명인가?” 롱슬랭이 물었다.


“12명입니다. 대장이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셔서 여인네들은 모두 붉은색 차도르를 쓰고 있습니다.”


롱슬랭이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로 말했다.


“나는 그렇게 시킨 적이 없다.”


기욤이 어깨를 들썩였다.


“드뱅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대장이 시킨 일이라고.”


롱슬랭이 기욤의 팔을 잡았다. 뭔가 일이 꼬여가고 있었다.


“악마를 빨리 내게 데려와!”






난간에 등을 기댄 주술사 드뱅의 낯빛이 대리석처럼 굳어졌다. 그 옆에 있던 궁수대장이 광장 주위에 진 치고 있던 궁수들에게 손짓을 했다.


“자네가 말한 거 맞는가? 주술사?”


“그래, 내가 했네. 롱슬랭의 명령은 잊어버려. 그리고 노획물 가운데 자네 몫은 갑절 이상이 될 거야. 빨간 차도르를 쓴 여인네들은 죽여 버려. 모두!”






[1] 거리를 나타내는 단위. 1리외는 약 4킬로에 해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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