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연구소

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59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달톤 컴브리아 원자력 연구소



제1부 15-2



영국

웨스트 컴브리아

지금 현재


벨 롱 레인저 헬리콥터는 어두컴컴한 땅이 드넓게 펼쳐진 상공을 날아갔다. 여기저기 점점이 흩뿌려진 작은 불빛들이 사람 사는 집임을 일러줄 뿐, 축축한 땅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헬리콥터 안에서 머리를 빡빡 민 남자가 맥주병 마개를 땄다.


“우리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거지?”


“화이트해븐이라고 인적 없는 바닷가 작은 마을이야. 더 정확히 말하자면 웨스트레이크 과학 연구 단지.”

조종석에 연결된 스피커가 지글거렸다.


“2분 내로 착륙해.”


그들의 발아래로 돌연히 광장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 드넓은 땅에 느닷없이 들어선 공업단지가 강렬한 불빛으로 떠올랐다. 비행기는 유럽 전역을 오가는 화물트럭들이 가득 들어찬 엄청난 크기의 주차장으로 이쪽저쪽 나뉜 직사각형의 커다란 물류창고들의 지붕 위를 날아갔다.


분홍빛 살이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거대한 크기의 콘크리트로 만든 연어가 창고 지붕 위로 불쑥 솟아올라있었다. 조형물은 이곳이 애당초 어업 전진 기지였음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벨 헬리콥터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꾼 다음, 비행 속도를 늦췄다. 위압적인 크기의 건물 몸체가 고속도로와 연결된 도로 뒤편으로 솟아오르듯 자리했다. 완벽한 5각형 건물인 펜타곤이었다. 주위로는 이중으로 콘크리트 방벽이 둘러 쳐졌고 방벽 위에는 전기 철조망까지 설치된 모습이었다.


주위까지 합치면 건물은 축구장 두 개만한 크기였다. 바로 인접한 곳에는 유리로 된 작은 건물들이 모여 있는 복합형 건물이 조명을 받아 환히 불 밝혀진 넓은 잔디밭과 나란히 이어졌다.


건물들로부터 시작된 폭이 좁은 아스팔트 길은 잔디밭을 가로지르면서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져 정중앙 광장까지 뻗어나갔다. 끄트머리에 자리한 둥근 원형광장은 푸른빛으로 깜빡거리는 조명들 탓에 그 경계가 완벽하게 구분된 모습이었다.


허공을 가로지르며 날아온 헬리콥터가 원형광장 한가운데 착륙 지점이 표시되어 있는 곳으로 하강하다가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실제 보는 것보다 헬기 안에서 바라볼 때가 원형광장을 더 크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남녀는 플래시를 든 상태였다. 플래시는 2001년 우주 공간으로의 여행을 떠올려주는 상징적인 물건이었다.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의 잔물결」의 리듬에 맞춰 우주정거장과 달을 오가는 우주선을 타고 달에 착륙하던 순간을 회상하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두 남녀에게는 헬리콥터 조종사들 중에는 음악을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을 따름이었다.


벨 헬기는 잔디밭 위에 가뿐히 내려앉았다. 회색 밴 차량이 조그맣게 표시된 트랙 위로 도착할 때까지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은 채,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얼마 있다가 조종사가 승객들에게 헬기에서 내려도 좋다는 고갯짓을 했다.


두 사람은 헬기에서 내려 뒷좌석 유리창이 검은색으로 선팅된 도요타 밴 차량으로 휩쓸리듯 들어갔다. 밴 기사는 그들이 자리에 앉는 것을 백미러로 지켜보면서 두 남녀가 다른 짐들 중에 유독 커다란 어깨에 메는 가방 하나만을 그들의 발치에 두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 다음 밴 기사는 천천히 가속페달을 밟고 유리로 된 건물들을 빙 돌아서 콘크리트 건물 쪽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보안을 위한 경계용 바리케이드 앞에서 멈춰 섰다. 단단한 강철로 제작된 2미터가량의 기다란 쇠막대기가 아래를 향해 내려진 채로 차량 진입을 막아섰다.


옆에 위치한 초소에서 무장한 보안요원이 경비를 선 채, 그들을 쳐다보았다. 밴 기사가 유리문을 내리자 보안요원 가운데 한 명이 탐지기를 차량 밑으로 집어넣어 살펴보는 동안 다른 한 명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땅바닥을 향해 꼼짝도 하지 않던 뾰족한 기다란 창같이 생긴 쇠막대기 형상의 바리케이드가 밴 차량과 차량에 동승해 있는 이들이 통과할 수 있도록 허공으로 들어 올려졌다.


밴 차량은 정문 현관 입구를 향해 가지 않고 건물 모서리를 돌아 옆으로 이동했다. 그러다 철문 앞에 정차했다. 철문 위 콘크리트 벽에는 커다란 검은색 글자로 씌어진 간판이 조명등 아래 선명하게 반짝였다.



달톤 원자력 연구소



커다란 문이 열렸다. 밴 차량은 휩쓸리듯 앞으로 나아가다가 문으로부터 20미터 더 전진한 상태에서 멈춰 섰다. 펜타곤 안에는 파란 제복을 입은 두 명의 케르베르스[1]가 경비근무를 서고 있었다.


차 안에서 머리를 빡빡 민 남자가 이를 바드득 갈면서 말했다.


“몇 번을 심사받아야 하는 거야? 대체 우린 어디에 와있는 거야?”


“핵무기 연구소에 와있어.” 여자가 대꾸했다.


남녀는 도요타 밴 차량에서 내려 두 명의 경비원에게 신분증을 내밀었다. 경비원 중의 한 명이 아이패드 태블릿을 들고 그들의 신원을 검색했다. 두 명의 남녀 방문자들의 사진이 경비원이 화면에서 손을 움직일 때마다 화면에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경비원은 항상 그랬다는 듯이 단 한마디 말도 없이 두 사람의 여권을 들여다보고는 그들이 서있는 앞쪽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를 손으로 가리켰다. 에스컬레이터는 아래로만 내려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경비원이 두 남녀에게 이야기했다.


“아래층에서 만티네아 박사님께서 여러분을 기다리십니다.”


여권을 보관하는 대신, 경비원은 두 사람에게 상의 위에 패용해야 하는 노란색 플라스틱 카드 신분증을 건넸다. 그들이 층계에 발을 딛자마자 멈춰있던 기계식 계단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에스컬레이터 양쪽으로 설치된 유리 칸막이벽 거울에는 반사된 두 사람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여자는 자신들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스캔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녀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건물들을 드나들 때마다 이런 종류의 설치물을 이미 여러 차례 겪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부들부들 떨며 가방을 쥔 손을 꽉 오므려뜨렸다.


에스컬레이터 아래쪽으로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의 실루엣이 스쳐가는 것이 얼핏 보였다. 남자는 뒷짐을 진 채, 근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깔끔하게 빗질한 머리, 딱 벌어진 어깨, 사내는 연구원이라기보다는 해군 하사의 용모에 훨씬 더 가까워 보였다. 두 남녀를 환영한다기보다는 매서운 눈초리로 두 사람을 노려보듯 바라보았다.


“당신들은 30분씩이나 늦었소.”


“항공 이동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여자가 간결한 어조로 반박했다. “그런데 귀빈(VIP)들을 위한 통로로 들어와야 하는 것 아니에요?”


“에! 그리고 그건 아직. 당신들 그것 갖고 왔어요?”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천 가방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물었다.


“물론이죠.”


“나를 따라오시오.”


그는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가면서 두 사람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걸어가는 동안 실내 장식이 바뀌어 모두가 번쩍거리는 흰빛으로 번쩍였다. 바닥, 벽, 천장까지 모두가 한결같았다. 귀청이 멍멍해질 정도로 가르랑거리는 소리가 발밑에서 들려왔다. 진동음은 마치 건물 내부 깊숙이 어딘가에서 커다란 금속으로 만든 벌레가 부르르 몸을 떠는 것 같이 느껴졌다.


물리학자는 경쾌한 걸음걸이로 앞서갔다. 그러나 그가 신은 구두는 눅신 눅신하여 바닥에 닿아도 전혀 소음을 일으키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3단계 실험을 위한 출입 금지 구역에 들어와 있습니다. 방사능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려면 방호복을 입어야 합니다. 당신들의 염색체도 변형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피할 방도는 없고 오로지 진행과정을 지켜봐야 합니다.”


그들 중에 어느 누구도 3단계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들은 바 없었다. 그러나 물리학자의 말에 따르면,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게 확실했다. 오스카 만티네아 박사는 커다란 금속 캐비닛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두꺼운 녹색 작업복을 입으라고 건넸다. 박사 역시도 새로운 작업복으로 바꿔 입었다.


“당신들이 패용할 노란 작은 명찰이 잘 보이도록 옷에 부착하시오. 이 건물 구석구석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소. 명찰이 없으면 곧바로 보안요원들이 들이닥칠 거요.”


두 남녀는 언짢은 얼굴을 하고는 방호복을 거울에 비춰보았다. 칸막이벽에 설치된 미닫이문이 열리면서 타원형의 넓고 높은 홀이 나타났다. 홀 정중앙에는 엄청난 크기의 유리 칸막이벽이 설치되어 홀을 둘로 가르고 있었다.


유리 칸막이벽 뒤쪽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같은 궤도를 반복하여 돌고 있는 두 개의 커다란 순환 형 고리들이 눈에 언뜻 들어왔다. 고리 한복판에는 투명한 핵 같은 것이 달려있었다. 가장 안쪽 깊숙한 곳에 수백 개의 굵은 케이블들이 둘둘 말려있어 마치 뱀들이 서로 꼬리를 물고 뒤섞여있는 듯했다.


처음으로 기계 장치를 본 두 남녀는 복잡한 구조가 한층 궁금증을 자아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지켜만 보았다. 마치 아무런 질문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나 되듯이.


“마침내 저녁 초대 손님들께서 나타나셨군!”


그들이 서 있는 왼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은발에다가 이마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사내를 언뜻 보았다. 사내는 널따란 계기 조종 판 뒤쪽에서 조종 장치 버튼들을 누르려던 참이었다. 여자가 사내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기쁜지 서로 얼싸안으면서 몸을 껴안았다.


“여행은 어땠어?”


“좋았어. 고마워. 그것 지금 보여줄까?”


훼인스워드 경은 천 가방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얼빠진 소릴랑 집어치우고 가방일랑 커다란 탁자 위에 올려놓거라.”


훼인스워드 경은 만티네아 쪽으로 몸을 돌렸다.


“프로그램을 시작하세요. 제대로 작동을 하려면 얼마나 걸립니까?”


“약 15분 정도 걸립니다. 혈장인 플라스마가 아직 냉각되어 있는 상태여서요. 그렇기는 하지만 단 한 번에 이 실험이 성공하리라곤 확신할 수 없습니다. 효력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이니까요. 또 특이한 어떤 역 반응이 일어날…….”


“성가시게 하시네. 기술적인 문제까지 세세하게 나열할 필요는 없고. 당신은 당신 일만 하면 돼요."


만티네아는 대답하지 않고 세 사람의 우두머리가 가방을 열고 가방 속을 살펴보는 걸 지켜보았다. 우두머리는 가방 속에서 해골과 뼈들을 꺼내 들고는 깨끗하게 솔질한 철판 위에 올려놓았다. 훼인스워드 경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대단해……. 어떻게 수 세기를 거쳤는데도 아직까지 남아있을 수 있었는지, 말해봐. 그것도 파리 사크레 쾨르 성당 지하에. 비문이 저기 적혀 있구먼!”


그가 돌연히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미르코는?”


“파리에 있기로 이미 의견을 나눴어. 아직 수행해야 할 임무가 남아있어서 모든 걸 도맡아 하겠다 하더라고. 일을 끝내면 내게 전화 줄 거야.”


“좋아…….”


공손하고도 경건하게 훼인스워드 경은 두 손으로 해골을 받쳐 들었다. 매혹당한 듯 그는 해골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혹시나 이상한 점이 있을까 살펴보다가 낯선 기이한 문자를 발견하고는 손놀림을 멈췄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도래했노라. 지금 그대는 입을 열 것이며, 그대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털어놓을 것이니라.”






[1]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지옥문을 지키는 머리가 셋 달린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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