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종말

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62화

by 오래된 타자기


제1부 16-2



알 킬할

1232년 만성절 축일


무릎을 꿇은 채, 두 눈을 감고 마이모네스는 인간이 내지르는 소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절규에 찬 울부짖음을 듣고 있었다. 죽음의 향기가 랍비의 폐 한구석을 태웠다. 너무도 처절하고도 쓰디쓴 냄새만큼은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어느 때인가 이러한 불행이 너희들 역시 집어삼키리라 랍비는 이를 악물었다.


크하타니가 유대인 신전에 뛰어들었을 때부터 마이모네스의 생명은 이미 끝장난 거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이 조용한 성품의 박학다식한 랍비는 소동과 광란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이러한 폭력적 사태는 그가 오랫동안 기도와 세심한 노력을 통하여 해소하고자 한 것이나 진배없었다. 하여 어느 정도 결실을 맺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만일 신이 난폭하게도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운명의 불확실함만을 일깨워 줄 뿐이라면, 무한한 신마저도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단지 결점 많은 존재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울부짖음이 그쳤다. 마이모네스는 세상을 떠난 길 잃은 영혼들을 위하여 시편을 음송했다. 랍비는 대체 자신의 것들이라 간주했던 것들을 지금 부인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혼탁한 시기에 학살은 계속 자행될 것이 틀림없었고 그를 둘러싼 세상마저 화염에 휩싸여갈 게 분명했다. 그에게는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질 않았다. 자신의 딸마저도 지금 곁에 없었다.


교황의 특사를 호위하는 병사들이 기욤에게서 여자들을 떼어놓았을 때는 이미 기욤의 시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된 상태였다. 시신은 두 조각으로 완전히 뜯겨 있었다. 얼굴도 무자비하게 짓이겨져 있었다. 몸뚱어리 곳곳을 이빨로 물어뜯었는지 피가 흥건히 흘러내렸다. 두 눈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탈구되어 텅 빈 눈두덩만 커다랗게 드러났다.


그나마 두 동강이 난 시신 가운데 한쪽은 사라지고, 다른 한쪽 몸뚱어리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배꼽까지 반쪽만 남은 시신은 둘둘 말려 푸른 기가 가신 하늘을 향해 무언가를 물끄러미 응시하는 듯한 몰골로 변해가는 중이었다.


교황의 특사는 시체를 성벽까지 끌고 가라고 명령했다. 시체가 들썩일 때마다 엉덩이 두 짝 사이에 난 커다란 구멍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입구에 무리 지어있던 여인네들은 어느새 얼굴과 손이 피로 범벅이 되어 핏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여인네들은 지옥에 떨어진 천벌을 받은 자들처럼 사납게 울부짖기까지 했다. 세간에서 여우라 불리는 교황의 특사이자 주교는 자신의 자문관을 호출했다.


“여인네들을 진정시키거라. 그리고 그들에게 전하라. 교회가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와 여자들만큼은 보호해 주겠노라고. 더해…….”


“예! 주교님!”


“열 명의 남자들을 시켜 남아있는 노획물들을 돌려주도록 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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