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63화
제1부 16-3
알 킬할
1232년 만성절 축일
드뱅의 출현에 놀란 염소 떼가 드뱅을 한참을 쳐다보다가 다시 풀들마저 자취를 감춘 황무지의 덤불들을 찾아다니며 코끝으로 자갈들을 밀쳐냈다. 약간 위쪽 나무 그림자 아래에서는 목동이 모습은 보이지 않은 채, 단조롭고도 구슬픈 노랫가락을 흥얼거렸다. 태양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진흙투성이의 우물물이나마 갈증을 풀기 위하여 잠시 걸음을 멈춘 드뱅은 목을 축이자 다시 길을 떠났다. 오며 가며 길에서 마주친 장사치들은 그가 지나온 길 쪽으로 멀어져 갔다.
무모할 것만 같던 드뱅의 변장술은 어느 정도 제 기능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아주 먼 옛날에 수사들이 입었던 복고풍의 옷차림을 한 수도승들 가운데 한 명쯤으로 치부하는 듯했다. 반은 선지자이자 반은 주술사 같은 옷차림을 한 드뱅을 영혼의 죄를 지어 수도원에서 쫓겨나 여기저기를 방랑하는 땡중쯤으로 여기는 눈치가 역력했다.
비렁뱅이, 필요에 따라 여기저기 도둑질을 하고 다니는 자들,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모든 것을 거부하며 저주를 일삼는 자들을 주민들은 약탈자들보다 더 질이 나쁜 족속들이라 여기면서 두려워하면서 기피하기까지 했다.
드뱅은 발걸음을 멈췄다. 앞에 펼쳐진 길은 이제 예루살렘까지 불과 몇 리외 밖에 남지 않았다. 그가 성스러운 도시를 떠올릴 때마다 매번 드뱅은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시골의 작은 촌락은 절대로 우주의 중심이 될 수 없었다. 폐허가 되다시피 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기독교도로 살아간다는 것 역시 무의미한 일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더군다나 기독교도의 왕관조차도 명성이 바란 몇몇 교회들의 투명한 광석과 빛이 희미해져 가는 태양의 황금 덩어리와도 같이 더 이상 찬란한 빛을 토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국왕과 비렁뱅이들, 순례자들 그리고 전사들이 들끓는 도시는 더 이상 반복하여 악몽을 꿈꾸는 그의 꿈속에 등장하는 지옥일 수밖에 없었다.
침식에 의해 갈라지는 바위들을 단단하게 붙들어 매어놓은 줄들을 잡고 드뱅은 길을 따라 내려갔다. 길은 가팔랐고 공동묘지에 이르렀다. 묘지는 커다란 두 개의 바위 그늘에 가려있었다. 무덤들은 최근에 생겨난 것들이었다. 구덩이들 사이의 경계가 명확한 걸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짙어졌다.
두 개의 바위가 나있는 나지막한 돌산 나무 십자가 아래쪽은 여행자들의 신앙심을 증거 해주고 있었다. 드뱅이 세어보니 무덤이 모두 열한 개였다. 틀림없는 순례자의 무덤들이었다. 저쪽에 있는 무덤들은 신자가 아닌 이유로 희생당한, 병으로 사망한, 또는 자연사한 이들로서 명을 달리 한 이들의 무덤이었다.
이름 없는 무덤들은 흥미가 없었다. 드뱅은 일어서서 다시 길을 떠났다. 이름 없이 죽은 자들은 그에게 아무런 흥미가 없었다. 그들은 그가 부르는 소리에 전혀 호응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