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통로

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65화

by 오래된 타자기


제1부 17-1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

사크레 쾨르 대성당

지금 현재


루딜 신부의 집무실 뒤쪽에 앉아 앙투안 마르카스는 순은으로 제작된 커다란 십자고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십자고상은 작은 서가와 나란히 인접한 실내 안벽에 걸려있었다.



이러한 속임수는 누군가의 머리를 돌아버리게 만들 수도 있다.



악의적인 생각에 빠진 앙투안은 베르나데트 수비루(기적수가 나오는 프랑스 피레네 지방에 위치한 루르드(Lourdes)의 성녀)의 초상이 장식된 만년필을 쥐고는 입에다 갖다 댔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앙투안은 문구를 자꾸만 되뇌었다. 출입문을 닫자 둥근 천장에서 요란하게 울려대는 굴착기의 파열음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프리메이슨 단원으로서 성녀의 이름을 웅얼거려 보았으나 프리메이슨 단 의장만 기쁘게 해 줄 뿐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앙투안 맞은편에 앉아있던 감독관이 초조함을 숨기지 않았다. 반면 뚱보 형제와 다 실바 신부는 서있는 채로 앙투안을 지켜보았다. 앙투안은 입에 물고 있던 만년필을 빼어 들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베르나데트는 고약한 취미를 지닌 성녀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 요지를 되새겨봅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이 한밤중에 성당에 침입하여 경비원을 쓰러뜨리고 비밀 통로를 이용하여 지하로 내려가서는 기념비 돌 안에 이중으로 설치한 바닥에서 무언가를 탈취한 것이겠죠. 루딜 신부가 현장에서 그들을 발견하자 그들은 그 자리에서 신부를 살해한 겁니다. 그런 뒤에 그들은 보물에는 손대지 못한 채, 서둘러 성당을 떠나버린 거죠.”


세 사람은 앙투안이 이야기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앙투안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그들은 성령의 도움으로 진입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어떻게 공사장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감독관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들어오고 나갈 때 이용할 수 있는 문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지하교회인 크립트로 진입하거나 원형 지붕인 돔에 이르는 입구는 이미 폐쇄되었고 다른 출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관계로 내부에 공모자가 있음을 가정하고 이를 조사 중에 있습니다. 모든 작업자는 사진과 이름이 인쇄된 신분증을 패용하고 있지요. 이는 바티칸 군인–경찰인 장다르므리가 발급한 것입니다. 군경 업무를 보고 있는 장다르므리는 이탈리아에서 파견되었습니다. 그들은 교황청의 보안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아 교황청에서 경호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모든 신상을 조회 중입니다. 좀 오래 걸릴 거로 예상됩니다. 그렇죠? 수사반장님? 신상에 대한 조회가 끝날 때까지 잠정적으로 공사는 연기될 것입니다. 제게 어떤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고는 상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감독관님! 제가 밖에 설치한 촬영 기기들을 살펴봤는데, 23시를 전후해서 들어오고 나간 사람이 전혀 없어요. 공사장 인부들이 출근한 것도 아침이고요.”


“그들은 아마도 비밀통로로 진입한 게 아닐까 추정됩니다.” 뤼쉐 국장이 슬그머니 대화에 끼어들었다.


“담장이 둘러쳐진 성 베드로 성당으로 이어진 길이 또 있습니까?” 앙투안 마르카스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느닷없이 물었다. “한 가지 더, 루딜 신부는 왜 한밤중에 대성당을 혼자 돌아다니고 있었느냐는 거죠?”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면 주교님께서는 루딜 신부에게 공사 중에는 절대로 성전에 있지 말라고 당부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루딜 신부는 허락 없이 성당에 들어온 것이죠. 그것도 입구가 아닌 정상적이지 않은 다른 경로를 통해 성당 안으로 진입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앙투안 마르카스는 만년필을 다시 입에 물고는 구멍이 뚫린 만년필 뚜껑을 입속에 돌려가며 질근질근 이로 깨물었다. 그는 다시 한번 실내를 꼼꼼히 살펴본 다음 다 실바 신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신부는 색유리창이 설치된 벽 아래에 몸을 기댄 채 서있었다.


두 개의 덮개가 달린 따뜻한 황갈색으로 장식된 색유리창에는 루르드의 동굴에서 발현한 전지전능한 성모와 그 앞에서 기도하는 신자들을 담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앙투안 마르카스는 색유리창조차도 여기저기 너절하게 표현된 종교적 장식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케이드의 둥그스름한 부분에 그려진 후광이 사제의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마르카스는 눈살을 찌푸리며,


“신부님께서는 성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 실바 신부님! 신부님 뒤에 있는 저 색유리창 안에 그려진 성인 말입니다.”


바티칸에서 파견된 감독관이 몸을 돌려 색유리창을 바라보았다.


“저 스테인드글라스는 19세기말에 제작된 전형적인 쉴피시엥 스타일[1]에 입각해서 만든 색유리창입니다.”


앙투안은 다시 한번 손에 들고 있는 만년필을 흘긋 쳐다본 뒤, 벌떡 일어나 색유리창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두 개의 덧문에 설치된 정사각형의 작은 폐쇄장치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색유리창의 조각들을 더듬어가던 그의 집게손가락이 인물의 초상이 일그러진 부분에 이르러 갑자기 멈춰 섰다. 얼굴에 해당하는 부분의 유리가 이가 빠지듯이 우툴두툴한 것이 눈에 띄었다. 벽 위쪽의 유리창은 미세하게 뒤틀리고 유리가 파열된 상태였다. 앙투안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가엾은 성인이시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려. 누가 이렇게 얼굴을 망가뜨려 놓았을까요?”


그 말에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앙투안 마르카스는 벽에 걸려있는 은으로 제작한 묵직한 십자고상을 떼어내어 살펴보았다. 함께 하고 있는 세 사람 역시 메두사의 눈빛으로 무슨 일인가 싶어 십자고상을 들여다보았다. 마르카스는 십자가를 흔들어 보더니 약간 과장된 어투로 또박또박 한 마디씩 내뱉었다.


“제 손안에 들려있는 이 십자가로 말할 것 같으면, 교회의 어마어마한 능력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태산도 옮길 수 있는 힘을 지녔습니다.”


한참 뜸을 들인 뒤, 앙투안 마르카스는 이어갔다. “착한 루딜 신부는 지하로 들어섰을 때 역시 십자가를 지니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한 번 가정해 봅시다. 저녁에 성당에 침입한 이들이나 본당 신부는 똑같이 같은 길로 지하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다릅니다. 왜 그랬을까요?”


“허! 참!” 뚱보 형제가 혀를 끌끌 찼다.


앙투안이 다 실바 신부에게 다가갔다.


“신부님! 신부님은 신부님 머리에 후광이 있다면 이를 벗어던지고 싶으십니까?”


“무슨 말씀인지 한 번 더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오른쪽으로 비켜보세요.”


다 실바가 한쪽으로 비켜섰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앙투안은 순은으로 된 십자가를 두 개의 색유리창을 연결하고 있는 부분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유리가 깨지면서 두 개로 난 덧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흡족한 표정으로 마르카스는 십자고상을 바닥에 내려놓으면서,


“교회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은 프리메이슨 단원이 여기 계신 형제분들을 아주 기분 좋게 해 줄 것만 같군요.”


앙투안은 벽을 성큼 넘어가 기다란 복도 안으로 들어섰다. 어둡고 좁은 복도였다. 복도는 양쪽으로 돌로 쌓은 높은 벽이 나란히 이어져 약간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경사진 채로 길게 뻗어있었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던 열쇠 중에 파리 스타일의 건축물에 설치된 유리창문을 열기 위해 사용하는 머리가 정사각형인 열쇠를 이용하여 한 꾸데(길이의 단위. 약 50센티미터에 해당함)마다 자신이 서있는 위치를 바닥에 표시했다. 그다음에는 다른 이들이 있는 자리도 표시해 갔다.


“우리가 쫓고 있는 살인범들은 이 좁은 통로로 들어오고 나갔습니다. 그들은 통로를 빠져나가자마자 등 뒤에 있는 덧문을 닫아걸고는 열쇠를 집어던졌지요. 등잔불이 어둡다고 우리가 이걸 간과한 겁니다.”


헉헉대며 첫 번째 벽을 통과한 뚱보 형제가 포르투갈 신부와 이탈리아 신부를 따라갔다. 벽 위쪽으로는 하늘을 향해 계란 형태의 타원형 창이 나있었다. 창으로 희끄무레한 빛이 반사되어 어른거렸다. 그들은 희미한 빛이 밝혀주는 통로를 따라 앞으로 걸어가면서 이제 겨우 복도 끝에 도달했음을 감지했다. 앙투안 마르카스는 세 사람을 동반한 채 통로로 쓸려 들어갔다. 뤼쉐 국장이 그를 소리쳐 불렀다.


“너는 그들이 이쪽으로 들어오고 나갔다고 정말 확신할 수 있는 거야?”


“곧 알게 될 걸세.” 앙투안은 그 말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곧바로 대꾸했다.


이윽고 네 사람은 아주 널찍한 공간에 이르렀다. 온갖 종류의 커다란 박스들과 상자들과 함께 먼지를 뒤집어쓴 가구들이 쌓여있었다. 한쪽 벽에 붙어있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초상을 담은 포스터는 이미 색이 바랜 상태였다. 압정으로 벽 한쪽 귀퉁이에 붙여놓은 포스터엔 요한 바오로 2세가 젊고 혈색 좋은 얼굴에 팔짱을 낀 채,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앙투안은 앞에 쌓여있는 박스 가운데 하얀 천 더미가 수북이 쌓여있는 상자 쪽으로 다가가서는 안을 뒤져보았다.


“누군가 무언가를 불에 태운 흔적이…….”


그는 백인이며 화가 난 인부 3명이 공모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들은 범행에 사용했던 것들을 모두 치워버렸습니다. 출구는 여기서 가까운 곳에 있을 겁니다.”


그들이 치워버린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앙투안은 실내를 꼼꼼히 살펴봤다. 폴란드 태생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포스터가 붙어있는 쪽에 또 다른 문 하나가 빙긋이 열렸다. 뚱보 형제가 앙투안 마르카스보다 먼저 문 쪽으로 재빨리 다가가서는 손으로 세차게 문짝을 밀었다.


“아! 이런 젠장!”


뚱보 형제의 큰 덩치가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어둠침침한 심연 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감독관이 앙투안 뒤에서 앞으로 달려왔다. 그 순간 다 실바 신부는 문 옆에 붙어있는 전기 스위치 버튼을 눌렀다. 앙투안 역시 뛰어갔다.


석회 곰팡이로 가득 찬 음습한 지하로 이어진 층계가 나타났다. 신음 소리는 층계 저 아래로부터 들려왔다. 그들은 더듬더듬 층계를 내려가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허리를 구부린 채로 바닥에 쓰러져있는 뚱보 형제를 발견했다. 목은 어깨에 달라붙었고 다리는 배와 각을 이루고 있었다. 고통스러운지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진 뚱보 형제는


“나……. 나 어디가 부러졌나 봐. 빌어먹을! 되게……. 아프네.”


앙투안 마르카스가 재빨리 뚱보 형제 곁으로 다가갔다.


“자! 내 손을 잡아.”


“안 돼요!” 다 실바가 소리쳤다. “아마도 기둥에 부딪힌 것 같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요. 그냥 내버려 두세요.”


앙투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신부가 지나가도록 비켜섰다. 신부는 확실하고도 정확한 치료법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신부가 치료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앙투안은 그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다 실바 신부는 뚱보 형제의 등 아래쪽에 손을 집어넣어 짚어본 다음 목 부근을 손으로 만져보더니 무릎 위쪽의 부근을 눌렀다. 거구는 비명을 내질렀다. 다 실바 신부는 고개를 쳐들고는


“대퇴골에 골절상을 당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구급차를 부르는 것이 나을 것 같으니 조금만 더 참아보세요.”


부상을 당한 뚱보 형제가 고통에 찬 신음 소리를 내지르며 말했다.


“안 됩니다! 어느 누구도 보물을 찾기 전에는 성당에 들어오면 안 됩니다. 핸드폰이 여기 있으니 제 기사를 불러주세요. 기사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으니 그가 알아서 할 겁니다. 앙투안! 계속해! 출구가 이쪽인 게 틀림없어.”


수사반장은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고개를 쳐들고는 앞을 바라보았다. 폭이 좁은 전혀 예상치 못한 통로가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통로는 옛날 방식의 알전구들이 일렬로 매달려 어두운 통로를 밝혀주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쯤인지를 도저히 알 수가 없네요. 대성당 어디쯤 일지.” 그는 턱을 매만지면서 앞을 바라보았다.

감독관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지금 완전 북쪽에 와 있습니다. 이 방향은 가르멜 수도원을 향한 방향입니다. 자매님들이 생활하는 수도원 건물은 아마도 공동체 건물 아래 있을 것입니다.”


앙투안은 습기가 축축이 배어있는 통로를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벽에는 곰팡이가 잔뜩 피어있었다. 알전구와 연결된 전기배선은 50년도 넘은 것 같았다. 바닥에 나있는 작은 배수구 구멍으로 악취가 올라오는지 온 통로가 구역질을 일으킬 정도로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앙투안 마르카스는 계속 앞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통로는 꺾여 있었다. 꺾인 통로를 지나자 또 다른 문이 나타났다. 문은 닫혀있었다.


그는 문을 밀어보았다. 문짝은 거의 부서질 듯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미지근한 바람의 열기가 얼굴을 살짝 스쳐 지나갔다. 그는 희미한 빛이 스며드는 커다란 건물 안에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실내에는 정원을 손질할 때 사용하는 연장들과 용기들이 쌓여있었고, 낡고 오래된 나무 판때기 위에 놓인 줄지어 잔뜩 늘어선 화분들에는 흙 가득히 양파들이 심어져 있었다.


그 너머 끄트머리에는 철문이 나있고 초록색 철문에는 환기용 철창이 뚫려있었다. 앙투안은 철문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그러자 문이 스르르 열렸다. 앙투안은 얼굴을 가렸다. 문이 열리면서 대낮의 강한 햇살이 한꺼번에 그의 얼굴로 쏟아져 들어와 눈이 부시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1] 쉴피시엥 스타일이란 파리 생 쉴피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보듯 종교적 상징을 다룬 설치물 가운데 독창성이 결여된 색유리창을 가리킨다. 생 쉴피스 성당은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에도 등장하는 파리 6구에 소재한 로마 가톨릭 천주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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