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67화
제1부 18-1
예루살렘
템플 수도회 건물
1232년 만성절 축일 저녁
성당 안에 형제들이 부르는 성가가 울려 퍼졌다. 모든 성인들을 위한 특별 미사가 집전되고 있었다. 우렁찬 목소리로 부르는 성가는 색유리창을 흔들리게 만들고 실내를 환히 밝힌 횃불들이 꽂혀있는 사면의 벽들 사이에서 메아리쳐 반향을 일으켰다.
말 한 마리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면서 돌길에 말발굽 소리를 허공에 흩날렸다. 말 옆으로는 손아귀에 말고삐를 움켜쥔 사내가 먼지를 뒤집어쓰고는 고개를 떨군 채 걸어갔다.
사내가 마구간 초소 앞을 막 지나치려는 순간 마구간에서 기마병 한 명이 앞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사내는 순간 반사적으로 옆구리에 차고 있던 검의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기마병은 정체 모를 사내를 불러 세웠다.
“그대는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게 틀림없는 것 같은데, 안 그런가? 이방인!”
날 선 목소리가 마치 단검을 칼집에서 빼어들 듯이 들려왔다.
“나는 이미 성문에서 출입 심사를 마쳤다네.”
앞을 가로막은 기마병은 성문을 슬그머니 바라보았다. 깨끗한 투니크 차림의 두 명의 수비대원들이 행진을 하듯 주먹 쥔 손을 앞으로 내밀고는 똑바로 걸어왔다. 그러나 어떠한 대꾸도,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겠다는 의사도, 그를 확인하겠다는 제스처도 없었다.
성지는 모든 책략과 배반과 음모가 판을 쳤다. 어느 누가 이 비렁뱅이 같은 작자를 경계를 서고 있는 수비대원들 몰래 잠입한 적군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 것인가? 더군다나 이 꼬질꼬질한 행색을 한 사내가 엄청난 살인을 꾀한 광신자라고 판단할 것인가?
최근에 와서 템플 수도회는 사실상 템플 기사들의 실질적인 적들이 틀림없는 자들의 신분을 확인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이슬람 인들이 평화를 갈구하는 템플 기사단과 맺은 조약이 아직도 유효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십자군의 수장은 교황이 파문한 프리드리히 황제였다. 교황의 특사인 여우는 악질 중의 악질이었다.
의심을 떨쳐버리지 않은 채, 칼을 뽑아들 준비를 하고는 기마병은 비렁뱅이 사내 가까이로 다가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 탓이었다. 그는 사내를 붙잡고 옷자락에 물든 핏자국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칼을 빼 들었다.
“무기를 거두어라.”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고개를 쳐들지 않은 채, 정체불명의 사내는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손바닥에는 템플 기사단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문신처럼 살갗을 태워 새긴 문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