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69화
제1부 18-3
예루살렘
템플 수도회 건물
1232년 만성절 축일 저녁
템플 기사단장은 고문서학자를 돌아보았다. 탁자 위에는 나무로 만든 줄자들을 비롯하여 온갖 종류의 펜들과 함께 셀 수 없이 많은 양피지들이 수두룩했다. 촛대 뒤쪽에는 잉크 자욱이 얼룩진 컴퍼스도 놓여있었다.
“언제 끝날 것 같은가?”
고문서학자의 시선이 갑자기 출현한 두 사람에게 고정되었다. 거무스름한 손가락으로 탁자 위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독피지 무더기를 가리키면서 고문서학자가 대답했다. 몇 장의 독피지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누렇게 뜨거나 주름져있었다.
“아직도 필사할 것이 꽤 많이 남았사옵니다. 필사가 다 끝나면 적옥 빛 성서로 제책할 것들이옵니다.”
템플 단장인 페리고르는 첫 번째 수사본 제작에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이 일을 맡은 고문서학자는 모든 페이지마다 글자들로 가득 찬 수사본들을 한 장식 베껴가는 중이었다.
“1194년에 만들어진 수사본이옵니다.” 고문서학자는 음울하게 주석을 달았다. 어느 형제가 제작한 이 수사본은 그가 별로 맘에 내키지 않는 라틴어가 눈에 밟힐 정도로 널려있었다.
“뭐 흥미로운 점이라도 발견하였는가?”
“십중팔구 그들이 썩어 문드러진 곳을 통과하는 좁은 길을 발견한 듯하옵니다.”
“설계도는 어떻게 되었는가?” 단장이 그에게 물었다.
수사 복장을 한 고문서학자는 눈알을 굴리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설계도들은……. 여러 개가 있다는 건 잘 알고 계시지요?”
발자국 소리가 궁정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저녁 미사가 끝난 모양이었다. 페리고르는 두건이 달린 소매 없는 망토를 집어 들었다.
“자네는 더 빨리 일을 진척시켜야 할 걸세. 오직 하느님께서만이 우리가 예루살렘에 얼마나 더 머무를지를 알고 계실 테니. 우리의 적들은 도처에 널려있다네.”
순간 고개를 쳐든 고문서학자의 동공이 꼼짝하지 않고 한 방향만 응시했다. 템플의 요새 안에 기거하는 모든 이들이 교황의 특사가 다음번에 수도회를 방문하겠다고 예정한 것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템플 수도회의 적들 가운데 가장 두려운 적이 교황의 특사였다. 그리스도의 자비를 가장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우 뒤에는 늑대가 버티고 있었다.
“주님!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렵니다. 논 노비스 도미네, 세드 노미니 뚜오 다 글로리암.” [1]
고문서학자에게는 아직도 악센트가 강한 시구의 어조가 남아있었다. 더군다나 그에게 있어 너무나도 뜻밖에 타는 듯한 열정이 샘솟듯이 솟아오른 곳도 바로 루에르그[2] 수도원이었다.
그가 수도원에 들어간 때부터 그는 줄을 긋고 그림을 그리고 정치하게 도면을 제작하는 일에 매달렸다. 단 몇 주 동안에 숙소를 필두로 하여 수도원 안뜰에 이르기까지, 또한 수수하게 꾸민 정원에서부터 묘지에 이르기까지 수도원의 모든 시설을 담은 설계도면을 제작하곤 했다.
그가 설계도면을 완성했을 때는 교회의 돌길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설계도면에 빠짐없이 그려 넣은 치밀함으로 이 분야에 있어 선두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고안해 낸 것은 다름 아닌 지하교회(크립트)에 이르는 비밀 통로를 만드는 것이었으며, 지하교회 바로 위에 주제단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사려 깊은 생각을 지닌 템플 수도회 단장들은 그의 이러한 의외의 재능을 모든 베네딕도회 수도원들이 공동체를 위하여 신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여기도록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이 젊은 풋내기 수사가 노련한 솜씨로 필사실인 스크립토리움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수사들에게 솔선하여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성서에 등장하는 신성한 모든 장소에 교회를 지을 것을 주문했다.
예를 들어 감람산 동산에 천국의 궁전을 건설한다든지, 골고다 언덕에 예리고 동산을 만드는 식이었다. 그는 매번 가능한 한 정확하게 성서에 등장하는 지명을 확인하면서 설계 도면을 완성해 나갔다.
이러한 방식에 따라 처음으로 빛을 본 설계 도면은 만장일치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그의 입지를 굳혀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이에 머물지 않고 더 탁월한 작품을 완성하고자 고심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이루어진 것이 예루살렘의 성스러운 도시를 건설하게 만든 설계 도면이었다.
수도원장은 틈만 나면 그가 특별하다고 여기는 인사들에게 그가 제작한 설계 도면을 보여주곤 했다. 어느 날 저녁 무리를 지어 애그 모흐뜨에서 배를 타기 위하여 라흐자끄[3]를 가로질러가던 템플 수도회 소속 형제 수사들이 수도원에 머무르게 되었다.
설계 도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형제 수사들의 우두머리가 도면을 완성한 수사를 만나 볼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우두머리가 필사실인 스크립토리움에 들어섰을 때 젊은 풋내기 수사는 그가 그리고 있던 도면을 공들여 제작하는 중이었다.
형제 수사들을 지휘하던 우두머리는 그가 작업하는 것에 상당한 흥미를 느꼈다. 이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신비로우면서도 이상야릇한 말을 되뇌었다.
“자네는 마치 그 자리에 있는 듯하구나?”
순간 고문서학자가 솔로몬의 지하 신전의 설계 도면들을 펼쳐 보였다.
[1] 템플 기사단 송가. “우리가 아니옵고 주님! 주님의 이름으로 찬미받으소서.” 원문은 Non nobis domine, sed nomini tuo da gloriam.
[2] 루에르그(Rouergue)는 프랑스 중부 아베롱(Aveyron) 지역의 한마을을 가리키며, 중세 때 로마네스크 기독교 문명이 정착한 곳이다.
[3] 애그 모흐뜨(Aigues-Mortes)는 론 강의 삼각주에 위치한 프랑스 남부 지중해 가의 작은 마을이고 라흐자끄(Larzac)는 아베롱 지역의 고원지대다. 이들 지역 모두가 중세 시대 때 로마네스크 기독교 문명이 정착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