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제식

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73화

by 오래된 타자기


제2부 19-3



영국

웨스트 컴브리아

달톤 원자력 연구소

지금 현재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검은 템플 기사단이 그에게 일러준 바는 예언과 제식이었다. 평범한 인간이자 성스러운 자였으며, 최초의 단장이었던 이가 지금 훼인스워드의 눈앞에서 에너지의 근원을 펼쳐 보이려는 찰나였다.


이 두 눈앞에 현시되고 있는 순간을 훼인스워드는 환희에 찬 기분으로 만끽하고 싶었다. 이성과 합리로 무장한 기술과학이 전통적으로 이어져온 템플 수도회의 비밀에 감춰진 신비와 불가사의를 확증해 줄 참이었다.


몇몇 형제들의 눈에만 보이는 환영이 이제 실체로 드러날 것이다. 촉지 할 수 있고, 명백하고 분명하며 확실할 뿐만 아니라 계측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실체.


훼인스워드는 자신의 몸이 붕 떠오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는 런던 시티의 동료들이 부러워하는 단체의 장이었으며, 금융기관이나 정부기관들도 겁을 먹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신용평가 회사를 이끌어 가고 있는 실질적인 수장이었다. 그러한 그였기에 실험실에 진열되어 있는 유해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가슴을 에는 듯한 느낌과 함께 스스로에 대한 연민으로 눈시울마저 붉어졌다.


유해는 이제 철근콘크리트로 지은 석관묘와도 같은 원자력 연구소 실험실 한복판에서 뼈에 살과 피를 다시 이어 붙이고 있는 중이었다. 시간이 흘러 점점 밤이 깊어갈수록 유해는 새로운 몸으로 거듭나 그에게 옛 죽은 자의 계시를 전해줄 것이 틀림없었다. 그 누구도 아닌 오로지 훼인스워드 경 자신에게만 계시가 내려질 것 또한 틀림없었다.


귀족인 훼인스워드는 검은 템플 기사단에 처음 입회하기 전부터 그리고 입회한 이후로도 늘 그와 같은 예감에 사로잡혔다. 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은 마치 무엇에 도취된 것 같은 기분으로 바뀌어갔다. 정신의 고양과도 같은 겸손함마저 그의 가슴에 깃들었다. 그에게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함에 대한 불확실성이나 의혹 같은 것들이 스며들 수가 없었다.


그는 오히려 지상에 강림한, 모든 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인간의 운명까지도 조종할 수 있는 신이 예정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것만 꿈꿨다. 프리메이슨 집회소 의장은 단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비열하면서도 더러운 음모나 꾸미는 인간일 뿐 아니라 이미 고인이 된 형제 선인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작자에 불과한 사람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생각에 잠긴 훼인스워드의 귀에 만티네아 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드께서는 방금 제가 말한 바를 이해하셨는지요?”


“이해 못 했소.”


“뼈들에서 양자들이 방출되자마자 그 양이 엄청나게 증폭되고 있습니다. 변환기가 과부하에 걸릴 정도로 말입니다.”


“난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귀족이 맞받아쳤다.


“예상치 못한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계측기 상에는 뼈에서 빠져나온 양자들이 덩어리 져 거대한 뭉치로 운집하고 있습니다. 뼈들만 갖고는 어느 것도 생성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석회로 침착된 세포 조직일 따름이죠. 그저 단순하고도 평범한 뼈 조각일 뿐입니다. 방사선 원통에 집어넣기 전에 참고하려고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놓았습니다만.”


만티네아는 땀이 비 오듯 솟아남을 느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커다란 철제 캐비닛 앞으로 다가갔다. 캐비닛에서 쏟아져 나온 상당량의 전기 피복선이 유리 칸막이벽 아래로 이어져있었다.


기계실에서는 전기 피복선이 보이질 않았다. 엔지니어는 기계실 양 문짝을 활짝 열어젖힌 채, 조절 계기판을 들여다보면서 열에 들뜬 듯한 손짓으로 차단기 스위치들을 내렸다. 그러자 갑자기 접속 램프가 문 위에서 빨간색으로 깜박거렸다. 엔지니어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젠장할! 경보 사이렌이 울리기 3분 전입니다. 연구소 전체에 비상이 걸릴 뻔했어요. 일단 모든 작동을 멈추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양자들은 뼛조각에서 무언가를 활성화시키고 있습니다.”


귀족은 조절 계기판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두 개의 빨간색 막대그래프가 천천히 화면 위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두 그래프상의 높이가 서로 다름으로 해서 수위가 무너지고 만 표시등이 깜박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만티네아는 망연자실하게 화면만 바라보았다. 화면 한쪽 구석에는 몸에 해로운 초록색 반사광에 둘러싸인 해골이 클로즈업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두 개의 뻥 뚫린 안구에서 찬란한 섬광이 방사상으로 뿜어져 나왔다. 마치 운명의 신이 뼈들이 들어있는 상자를 독차지한 것처럼 해골에게 생명의 광채를 불어넣고 있는 중이었다. 만티네아는 울부짖음에 가까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연쇄반응이 일어나고 있어요. 엄청난 양의 중성자가 증폭되고 있습니다.”


“방사능 말이오?” 훼인스워드는 억양이 들어가지 않은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결과를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훼인스워드는 뼈가 고유한 발광체로 광선을 사방에 내뿜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경에 빠졌다. 그와 같은 상태에서 에너지 전자파도 발생했다.


엔지니어는 커다란 검은 조절 레버를 아래로 돌리면서 부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뼈가 반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 구석구석에 우라늄 막대기 같은 방사능을 방사하고 있어요.”

귀족은 대꾸하지 않았다.


“당신 지금 내 말 듣고 계십니까? 당신이 가져온 이 개뼈다귀 같은 것이 연구소 전체를 날아가게 만들 참이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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