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75화
제2부 20-2
예루살렘
1232년 11월
제단 뒤쪽에서 아르망 드 페리고르는 등잔불 심지를 바로잡았다.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돌바닥 위에 그림자 지어 넘실거렸다. 옆으로는 두 명의 수도회를 이끌고 있는 고문서학자와 미사 주임신부가 침묵을 지킨 채, 앉아있었다.
이상야릇한 침묵이 흐르는 동안 둥근 천장 아래 예전에 저수조였던 공간이 어둠에 묻혀갔다.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덧입힌 초벽 위에는 천 년도 더 되는 아득한 시기에 외지에서 온 이들이 새긴 낙서들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오직 신만이 이 자리에 열 지어 있던 그들을 기억할 뿐이었다.
이곳에 망명해 와 정주한 초기 기독교도들에게 노예나 다를 바 없던 그들은 건물을 짓고 그들이 하는 대로 미사를 바쳤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고리들이 지금 형제들을 얽어 매 놓고 있듯이 당시에도 정체불명의 기다란 사슬이 그들을 꼼짝 못 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주술사 드뱅 역시도 다른 사람들 이상으로 그들이 나눈 이야기들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사람들은 수군거리기를 어느 수도사 한 사람이 드뱅과 그와 같은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이다.
아르망 드 페리고르는 등골이 오싹했다. 초자연적인 것과 관계된 모든 것이 그를 흥분시켰다. 기독교도들이 성스러운 땅이라고 명명한 곳에 머문 요 몇 년 동안 그는 환속한 사제들에게 열광했다. 환속한 사제들은 모든 구속을 훌훌 벗어던져버리고 사막을 떠돌거나 열정과 광기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던 수도사들이었다. 단장인 아르망 드 페리고르 역시 어느 면에서는 그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환속한 사제들의 시선은 오직 한 방향으로만 고정되었고 몸은 초췌하여 바싹 말랐지만,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청중을 압도하다 못해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이들을 감격시키기까지 했다. 템플 기사단은 단지 수도회가 정한 규율에 따라 원칙을 적용하여 사제이자 수도사들인 이들을 감시할 따름이었다. 형제 수사들은 오로지 절대적인 것을 추구하고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설교자 형제 단원 가운데 한 명이라도 만나게 되어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에게 감격하고야 말았다.
드뱅이 별명을 얻게 된 이유도 그런 연유로 인한 것이었다. 거지꼴을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 귀에 쏙쏙 들어오는 말들만 늘어놓는 그가 외딴 마을에 나타나기라도 할라치면 사람들은 서로 간에 기이하면서도 신기한 수사 한 사람이 기적을 행했노라고 이야기를 나누기에 이르렀고, 왁자지껄 소동이 한바탕 일어나면서 온갖 풍문마저 나돌았다.
그가 특히 죽은 자들에게 말을 건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는 분명히 이교도들이 물려준 고대의 유습 가운데 하나였기에 이단으로 고발될 위험이 아주 큰 만큼 서로서로 알아듣기 힘든 말로 넌지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더군다나 드뱅이 모습을 나타낼 때마다 이 수도사가 자신의 이야기 상대자로 망령들을 불러낸다는 것이었다. 상대방과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간담이 써늘해지기도 했지만, 어느 누구 하나 위험을 무릅쓰고 첩첩산중 협곡에 갇혀 빈사상태에 처해있는 종교를 구하고자 용기 있게 나서는 사람 하나 없는 현 상황에서 그만이 즉석에서 신랄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자연 드뱅만이 오직 그렇게 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죽은 이와 템플 기사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죽은 이가 되살아나 템플 기사인 그로 하여금 망자들의 왕국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아르망 드 페리고르는 잠시 감았던 눈을 다시 뜨고는 드뱅을 바라보았다. 드뱅은 수도회의 규칙에 따라 수도회가 준비한 옷을 입고 무릎을 꿇은 채, 제단 쪽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두 손은 공손히 제단을 향해 기도하는 모습으로 합장한 채였다.
“형제여! 우리 모두는 그대가 알 킬할에서 겪은 일들을 소상히 들었노라. 단지 그대가 도성의 랍비를 공증인이 입회한 이곳까지 데리고 오지 못한 것에 대해 심히 유감의 뜻을 전하 노라…….”
드뱅의 눈에 흐릿한 빛이 잠시 머물다 사라졌다.
“……그런 고로 여기서 그대의 처지를 판단하는 논의를 위한 회합을 개최하도록 하겠노라. 일어서서 제단 앞으로 걸어 나오너라.”
벌떡 몸을 일으킨 템플 기사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단장은 고문서학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고문서학자가 단장에게 진홍빛으로 장정한 책 한 권을 단장에게 내밀었다. 두툼한 크기의 책자는 은으로 만든 걸쇠가 두 개씩이나 채워져 있었다. 아르망은 제단 위에 책자를 놓고 손에 낀 장갑을 벗었다.
“믿음과 우리의 옛 단장들이 증언한 바에 따라 명하느니, 하느님과 형제들 앞에서 이곳에서 본 것과 들은 것을 절대 남에게 이야기하지 않을 것을 엄숙하게 맹세할 것을 명하노라.”
고개를 똑바로 쳐들고 드뱅은 가슴팍에 팔짱을 낀 채 대답했다.
“명심하도록 하겠사옵니다.”
단장은 책자의 겉장에 주먹 쥔 손을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