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감옥

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76화

by 오래된 타자기


제2부 20-3



예루살렘

1232년 11월


매일 누군가가 저 높은 곳에서 구멍을 열고 자갈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줄에 매달린 두레박을 내려보냈다. 처음에 그러려니 하던 롱슬랭조차도 무언가가 물에 철써덕 떨어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허공을 쳐다봤다. 아주 불쾌한 소리가 좁은 감옥 안에 울려 퍼졌다.


두 번째로 두레박이 내려왔을 때, 비로소 롱슬랭은 그게 무슨 뜻인지를 직감할 수 있었다. 만일 그가 수도원에서 지급하고 있는 아주 빈약한 먹거리나마 취하기를 원한다면, 두레박이 내려오자마자 빨리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야 한다는 사실마저 깨달았다. 아니면 쥐들이 달려들어 음식물을 다 먹어 치울 게 분명했다.


롱슬랭의 몸 이곳저곳에는 전쟁을 치르면서 부상당한 상처 자국만이 남아있었다. 그에게는 전혀 먹지 못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나 불안감의 엄습보다도 고여있는 물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와 좁은 감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역겨움이 외려 그를 물어뜯고 갉아먹고 있었다.


몇 번이고 자살을 시도해 보았지만, 스스로 죽을 만큼의 기력조차도 그에게는 남아있질 않았다. 추위보다 더 싸늘한 경우나 다를 바 없이 쥐가 아귀아귀 먹어대는 것보다 더 심한 경우가 그에게 갑자기 엄습하여 가슴을 쥐어뜯게 만드는 절망감이 더 큰 고통으로 그를 갉아먹고 있었다. 차라리 알 킬할의 주민들 손에 잡혀 죽음을 당해 성벽 아래로 내동댕이 쳐졌거나 아니면 교황 특사의 군대에 잡혀 죽음을 당했더라면 더 나을 뻔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신속한 죽음, 잔인한 죽음, 명예스럽지 못한 죽음. 지상에서의 일들이 한 장면씩 뇌리를 스쳐갔다. 그러나 죽음은 이와는 달리 신이나 악마가 결정할 문제였다. 수염은 길어 딱딱하게 뻗쳐있었고 머리는 기름기로 엉겨 붙어 악취가 진동했다.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예컨대 이러한 상황이 과연 다른 이들과 공평한 것인지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지만, 축축하고 음습한 지옥에서 그는 더 이상 매달릴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마지막 남아있던 아버지가 물려준 반지조차 빼앗긴 상태였다. 그가 포스의 영주 가문의 일원이란 걸 확인시킬 방법은 이제 그의 수중에는 더 이상 남아있질 않았다. 그는 시들어 말라비틀어진 고목에 마지막으로 썩어 문드러진 싹이 되고 만 것이다.


악몽이 롱슬랭을 집요하게 괴롭혀댔다. 악몽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라도 롱슬랭은 감옥을 한 번 훑어보고자 작정하였다. 두꺼운 성벽을 따라 손으로 더듬어 가면서 틈이나 구멍이든 울툭불툭하게 튀어나온 모서리가 만져져 희망의 서광을 밝혀줄 그 무엇이라도 찾아내길 바랐지만, 늘 같은 식으로 빙빙 돌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롱슬랭은 결국 죽음의 우물 저 깊은 곳에 갇혀있는 꼴이었다.


프로방스 사내는 썩어 고인 물속에 다시 처박히자 절망감으로 흐느껴 울었다. 순간 갑자기 저 높이에서 금속성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고요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밤보다도 더 음산한 목소리가 우물 안의 칸막이벽을 넘어 그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교황의 특사께서 너를 보자 하신다.”


롱슬랭은 일어서서 축축한 벽에 등을 기댔다.


“제발! 저를 여기서 내 보내주옵소서.”


웃음소리가 도움을 청하는 부르짖음을 일순간 멈춰버리게 만들었다. 모습은 보이질 않고 목소리만이 다시 울려 퍼졌다.


“곧 이루어질 것이니라……. 네가 생각지도 못한 순간보다도 더 빨리. 그리고 그날 너는 하늘을 향해 기도할 것이니라. 이 구멍 속에 다시 한시바삐 되돌려 보내달라고.”


그가 서있는 곳 위에서 횃불이 지옥 같은 어둠을 쫓아내듯 타올랐다. 환하다가 어둡기를 반복하던 끝에 떡갈나무 판이 줄에 매달려 천천히 내려왔다. 구슬픈 신음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리면서 우물 안 칸막이벽들을 맴돌았다.


롱슬랭은 더러워진 수염을 긁어댔다. 나무판자 다른 한 면에는 빨간 점들이 찍혀있었다. 불꽃이 타오르면서 한쪽이 환해지자 쥐들이 창자를 드러낸 채, 널브러진 차마 눈뜨고는 바라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떡갈나무 판이 한쪽으로 기우뚱거리면서 첨벙 소리와 함께 나무판 위에서 사람 몸 하나가 얼음같이 차가운 물속으로 떨어졌다.


“자 봐라, 너와 함께 있을 자이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속에 처박힌 사내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일어섰다. 두 어깨는 채찍질당한 자국이 역력했고 얼굴은 주먹으로 얻어터져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아직 횃불이 떡갈나무판 위에서 타오르고 있는 탓에 롱슬랭은 그 자가 알 킬할의 랍비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왼쪽 눈은 찌그러져 눈꺼풀이 덮여있고 한쪽 팔은 뒤틀려 아래로 축 늘어뜨려져 있었다. 롱슬랭이 그를 쳐다보자 유대인 노인네는 달아나려고 칸막이벽을 움켜쥐었다.


“그래 너……. 네가 바로 우리를 공격했던 마귀지?”


롱슬랭은 부패해서 악취가 진동하는 물에다 가래침을 뱉었다. 랍비는 미끄러운 돌벽에 등을 기댄 채, 버티고 있었다. 두 다리는 보이질 않았다.


“이 저주받을 영감탱이!”


프로방스 사내는 마이모네스의 찢어발겨진 헐렁한 겉옷을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노인네는 밀짚 지푸라기만큼이나 가벼웠다.


“누가 너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느냐?”


“특사가…….”


기력이 쇠진했는지 랍비는 털썩 주저앉았다.


“……나를 고문한 놈도 바로 그 자이니라.”


롱슬랭은 랍비를 거머쥔 손을 풀었다. 롱슬랭과 랍비 두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무판이 다시 허공으로 올라갔다. 그와 함께 불꽃이 너울거리던 횃불도 함께 사라져 갔다. 위쪽에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목소리는 지옥과도 같은 암흑 상태로 모든 것을 되돌리려는 듯 허공에서 메아리쳤다.


“롱슬랭……. 다음은 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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