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보느리가 들려주는 로마네스크 예술 이야기 89화
[대문 사진] 채색 삽화
로마네스크 화가들의 재능은 수사본 채색 장식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수도원이나 대성당의 필사실(scriptora)에서 수사본에 채색 작업을 하던 수사들을 가리켜 픽토르(pictore)라 불렀죠. 중세 때 채색 삽화(enlumiure)란 단어는 라틴어 일류미나레(illuminare)에서 온 말로 “빛을 발하는, 환하게 비추는, 장식하는,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뜻합니다. 라틴어 미니아투스(miniatus)에서 파생한 세밀화 또는 붉은 장식 문자(miniature)란 단어는 ‘최소한으로 색을 입히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중세 초기부터 수사본의 첫머리글자나 교회 미사 전례집을 붉은색 글자로 장식했는데, 이때 붉은 광물질 안료로 만든 물감을 사용하였습니다. 어원상으로 세밀화란 용어는 ‘아주 작은’ 것을 가리키는 미노르(minor)란 형용사와 상당히 비슷해서 서로 자주 혼동되기도 했죠. 사실 세밀화는 프레스코 화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작은 크기로 제작한 그림을 가리키는 관계로 미노르란 단어와 혼동될 수 있는 여지는 농후합니다.
색을 입힌 또 다른 장식물로는 12세기부터 널리 퍼지게 된 색유리창(스테인드글라스)입니다. 색유리창은 정밀함과 섬세함을 요구하는 여러 차례의 세밀한 공정을 거쳐 제작되었습니다.
제작 공정은 완성할 색유리창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으로부터 시작하여 유리 세공기술을 지닌 마스터가 이를 선별한 뒤 색이 칠해진 유리들을 절단합니다. 절단된 유리들은 다시 그리자이유(grisaille) 기법을 이용하여 갈색과 검은색만으로 농담과 명암[1]을 나타내죠. 색을 입힌 유리는 가마에 넣어 열을 가한 다음 구워냅니다. 그런 다음 밑그림에 따라 끼워 맞추기 위해 서로 다른 유리 조각들을 이어 붙인 뒤 그 사이를 납으로 땜질하는 순서로 진행됩니다.
로마네스크 교회들과 수도원들은 색유리창 말고도 건물을 모자이크로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이탈리아는 모자이크 장식이 아주 현저했던 곳으로써 특히 시칠리아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비잔틴 예술의 탁월한 전통 가운데 하나인 모자이크 장식은 프랑스에서는 아주 드문 현상이었는데, 타피스리 제작에 차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부분이 마멸되거나 훼손되어 남아있는 것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끝으로 언급해야 할 부분은 로마네스크 교회의 보물이라 할 수 있는 보석을 박은 금은 세공품들입니다. 12세기에 리모쥬에서 금은 세공품에 도자기처럼 유약을 바르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한층 윤이 나는 다양한 색조를 강조하게 되었고 더군다나 세밀하고도 정교한 형태로의 제작 또한 가능해졌습니다.
[1] 농담(濃淡)은 회화에서 짙음과 옅음에 따른 채색의 정도를 가리키며, 명암(明暗)은 어둡게 하거나 또는 밝게 표현하기 위한 채색술을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