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79화
제2부 21-3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
지금 현재
“수사반장님! 괜찮으세요?”
수위가 앙투안 마르카스의 어깨를 손으로 감쌌다.
“저 이리란 여자하고 아주 나쁜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녹화 필름을 떠서 복사해 주실 순 없겠습니까?”
“문제없어요. 10분이면 됩니다.”
마르카스는 핸드폰을 꺼내더니 차량번호를 조회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마르카스 형사입니다. 오세베세(OCBC). 아주 급한데요. 차량을 확인하고 싶어서요. 국립경찰 범죄 수사과 기록에서 차량을 좀 확인해 주시고 프랑스 모든 경찰서에 수배령을 발효시켜주셨으면 합니다.”
“차량이 범죄에 이용된 적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만 형사님! 프랑스 내에 수배령을 내리기 위해서는 상급기관의 추인을 받아야 합니다.”
“전화받으시는 분이 그렇게 하시려면 디지피엔(프랑스 국립경찰 수사국)을 거쳐야겠죠. 제 생각에는 그렇게 하실 수 없으리라고 판단되는데, 전화기에 뜬 제 핸드폰 번호를 적어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제게 전화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른 번호를 눌렀다. 프랑스 국립경찰 중앙 신원 조회 조사국 전화번호였다. 이제 시간을 따져봐야 할 순간이었다. 이리의 사진이 확보되었으니 신원을 확인하기만 하면 되었다. 새로운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뚱보 형제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찾아낸 단서들을 들려주었다. 수사를 통해 새롭게 찾아낸 증거들에 대한 흥분이 과거 기억이 불러일으킨 싸늘한 분노심을 잠재워갔다.
이리의 등장은 카드 패를 바꿔놓았다. 테러리스트의 출현은 천만 다행히 그의 수사를 공염불이 되게 만들지는 않았다. 그가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성당 지하실에서였다. 무덤 속에서 유물을 발굴하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요상한 일이 벌어지듯 그녀가 다시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앙투안은 시간을 되질해 보았다. 이젠 엄밀하게 상황을 판단해야만 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한시바삐. 그러기 위해서는 홀로 있을 필요가 있었다.
관리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말을 전하고는 다시 거리로 나섰다. 앰뷸런스가 도착했던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다 실바 신부가 층계에 앉아 께느른하게 길이가 짧은 시가를 피우고 있었다. 앙투안은 다가가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
“저도 하나 주실 수 있습니까?”
신부는 웃으면서 그에게 양철통으로 된 담뱃갑을 내밀었다. 담뱃갑에는 베드로 성인이 열쇠 3개를 쥐고 있는 장면이 새겨져 있었다. 열쇠들은 성인이 부여받은 사명을 이행하기 위한 무기들이었다. 앙투안은 담뱃갑에서 작은 크기의 시가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다 실바 신부가 라이터로 불을 붙여주려 하자 앙투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단지 입에 물고 싶어서 그럽니다. 아무래도 뭔가 생각을 집중하는 데는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아서요.”
“농담하는 거요?”
“아닙니다. 입에 물고만 있으면 폐에는 전혀 지장이 없잖아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무엇부터 얘기할까요?"
“두말할 것도 없이 좋은 소식부터, 들려주시오. 나쁜 소식은, 좋은 소식을 들어본 다음 들을지 말 지를 결정하겠소.”
“좋습니다. 프리메이슨 단에서 하는 것처럼 세 가지로 요점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살인범들에 대한 녹화 영상 자료를 확보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세 명이 범행에 이용한 차량 번호판을 입수했습니다. 셋째, 그들 가운데 한 명의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범인은 사악한 이리 같은 여자입니다.”
다 실바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시가 연기만 내뿜었다.
“축하합니다. 그리고 나쁜 소식은…….”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세 가지 관점에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앞에서 이미 언급한 인물들에게서 야기된 것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첫째,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같은 범죄조직을 상대로 싸워야만 한다는 점입니다. 둘째, 엠레흐 신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저 위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봐야 신부의 자취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교황청에까지요. 셋째, 지금의 제 처지와 신분으로서는 바티칸 국과 연관시켜 수사를 계속하기에는 너무 힘겹고 위험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보물을 회수하는 일은 모든 것을 고려하기 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동시에 제게 살인범을 잡으라는 요청이 떨어져야만 하고요.”
“암살자들과 도둑들을 쫓아내기로 유명한 산 에스테반(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한 마을)이 떠오르는군요. 당신께서는 지금 무얼 하실 생각입니까?”
“저기, 지금요? 집에 가서 휴식 좀 취해야겠습니다. 제 동반자도 찾아봐야겠고 차량 번호판 조회 결과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하시면 언제든 한잔하러 오세요. 저는 정원 아래 저 건너편 쪽에 살고 있습니다.”
다 실바의 입가에 주름이 잡혔다. 신부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쏟아냈다.
“아니오. 괜찮습니다. 교황청에 관련된 것까지는 수사하지 말아 주세요. 당신이 내게 이야기한 것처럼 실제 모든 일이 중단될 수도 있어요. 설사 당신이 그렇게 시도해 봤자 소용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만.”
“안이한 생각이십니다. 바티칸에 소속된 신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야밤의 침입자는 한 명이거나 또는 조직일 가능성이 크며 또한 보물을 탈취하고자 의도한 자와 동일 인물입니다. 엠레흐 신부는 단지 중간에서 이들을 도왔을 따름이고요. 신부님께서는 엠레흐 신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으십니까? 저는 이런 관점에서 보고서를 작성할 계획입니다. 제 상급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일을 진행시키겠지요. 제 능력은 거기까지입니다.”
바티칸에서 파견된 신부는 시가 꽁초를 쓰레기통에 달려있는 재떨이에 비벼 껐다. 신부의 표정이 굳어져있었다. 신부가 마르카스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당신은 뭔가를 착각하고 있소. 친구! 판단력을 잃은 사람에게 영적인 계시를 내려주시는 훌륭한 전문의이기도 하신 빅토르 성인에게 기도를 바치도록 하시오.”
마르카스는 벌떡 일어서서 기지개를 켰다. 점잔 떠는 신부의 어조가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저는 신자가 아닙니다. 신부님이 따르는 성인은 제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어느 누구 한 사람 대성당 주임신부를 돕기 위해 구원을 요청한 이가 없듯이, 참으로 불운하게도 몇십 년 전에 이 모퉁이 어딘 가에서 살다가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불쌍한 아이들을 그 많은 성인들 가운데 어느 한 분도 도와준 이가 없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함께 했던 날들 가운데 어느 하루가 기억날 수도 있겠지요. 다 실바 신부님!”
바티칸에서 파견된 신부 역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위선자들이 그러하듯이 다 실바 역시 마르카스를 유의 깊게 바라보았다. 앙투안 마르카스는 이미 그를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가 상당히 민첩하게 행동하면서 매사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다 실바는 앙투안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를 따라오시오. 사크레 쾨르 성당으로 돌아갑시다. 크립트 지하교회 안의 무덤으로.”
“왜요?”
“당신에게 비밀을 일러주기 위함이요. 바티칸의 국가 기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