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비틀어진 나무가 서있는 구역

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80화

by 오래된 타자기


제2부 22-1



예루살렘

1232년 11월


급히 어딘가로 달려가는 기마행렬의 둔중한 말발굽 소리가 돌길을 뒤흔들었다. 건물 앞부분 발코니처럼 툭 튀어나온 건물 안쪽에서 잠을 깬 주민들 몇 명이 바람에 흔들리며 타 들어가는 양초의 심지를 잘라냈다.


덧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고개를 창밖으로 내밀 정도로 여명이 밝아오는 순간은 아니었다. 프랑크 인들이 하는 짓이라고는 급히 서두르는 일밖에 없을뿐더러 맹목적인데 마저 있었다. 특히 그들의 기마병들이 예루살렘의 변두리 지역을 밤에 순찰할 때 종종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곤 했다.


게다가 갑자기 교전이 벌어지면서 상대방과 뒤섞이지 않으려고 처절히 자기편을 끌어모으는 일도 자주 벌어졌다. 여기저기서 소리를 질러대는 고함소리와 함께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소음이 귓전을 어지럽히기는 했지만, 다시 고요한 순간으로 접어들면 어느 누구 하나 감히 대항하고자 나서는 이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농부 한 사람이 시장이 들어서는 광장 쪽으로 걸어갔다. 농부는 위험을 알리고자 홀로 광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성 밖 외곽 지대의 말라비틀어진 나무가 서있는 구역은 참으로 기이하게도 주민들이 피난처로 삼은 곳이었다. 길게 둘러쳐진 성벽 바깥쪽에 위치한 이곳은 스스로 신앙에 고무된 순례자들뿐 아니라 한밤중에 어슬렁거리는 입신출세한 군인들 그리고 광신도들만큼이나 기이하기 짝이 없는 온갖 종교들에 심취한 신앙인들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양한 이들이 몰려드는 곳이었다.


또한 사람들 수만큼이나 많은 음식과 술을 파는 주점들이 쭉 늘어선 곳도 이곳이었다. 강도에다가 악당이 출몰하는 험악한 장소이면서 동시에 남루한 옷을 걸친 비렁뱅이들이 나무껍질로 담근 술에 절어 정신이 흐리멍덩해지도록 고주망태가 되는 곳. 더하여 술 마시는 것이 금지된 이슬람인들조차 이곳으로 찾아와 간판은 고사하고 창문조차 나있지 않은 건물 안에서 금단의 포도 열매로 담근 술을 홀짝이는 판이었다.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들판을 향해 열려있는 이 구역에서는 온갖 종류의 밀수품들마저 유통되고 있었다. 심지어는 바다 저 너머에 자리한 정체불명의 나라들로부터 노예로 붙들려왔을 뿐만 아니라 아주 먼 곳에서 붙잡혀온 노예들을 사고파는 장이 서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만큼은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과 참담함마저 잠재울 수 있었다. 이처럼 성 밖 외곽 지대인 포부르그는 혼잡스러운 만큼 활기를 띤 곳으로 그 이름값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이슬람인, 유대인, 기독교도 할 것 없이 종교에 대한 논쟁으로 늘 시끌벅적한 곳이자 서로 편 가르기를 하거나 어느 한쪽을 선택한 자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괴상망측한 짓을 벌이는 곳 역시 이곳이었다.


이곳엔 나무 한 그루가 성벽 아래 깊이 뿌리를 내린 채 서있었다. 사람들은 봄만 되면 잎을 새로 피우는 나무에게다 그들 각자가 따르는 신의 이름으로 나무가 장수하기를 축복해 주곤 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나무가 있던 자리는 정복자의 승리와 관련이 깊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 번째 최후통첩이 이뤄지던 순간 나무는 그만 잎들을 모두 떨구고 말라비틀어졌다는 것이다.


템플 기사단장이 검게 변한 나무둥치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수비대 병사들이 쓰러져 있는 사체를 일으켜 세웠다. 두 구의 사체였다. 사냥감의 먹이가 되어 거세된 채, 널브러진 성전 기사단원들이었다. 입고 있던 바지까지 발가벗겨진 채로 알몸을 드러낸 사체는 보기에도 끔찍한 몰골이었다. 몸 위를 타고 흐르던 피가 넓적다리 한가운데에서 검게 말라비틀어져있었다.


“기마대가 한 짓이라 사료되옵니다.” 부하사관 중 한 명이 바닥에 난 흔적을 가리키면 단언하듯 말했다.


아르망 드 페리고르는 돌길 바닥을 살펴보았다. 서로 싸운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횃대를 밝힌 흐릿한 불빛 아래 반원형의 말편자 자국 역시 선명하게 보였다.


“페르슈(프랑스 중부지방의 한 마을)인들이 한 짓이라 사료되옵니다.” 부하사관이 단정 짓듯 말을 더했다. “돌길 바닥에 흙이 묻어있는 자국들이 선명하게 남아있사옵니다. 말굽에 흙이 묻어있다는 것은 농장의 마구간에서 훔친 말들이 틀림없사옵니다. 우리 편이 농가에서 징발한 말들이옵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단장은 신속하게 이제까지 벌어진 일들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를 가늠해 보았다. 도성을 침입한 자들이 타고 온 말들로 비추어 보건대, 침입자들은 그렇게 서두름이 없이 은밀히 침투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 자잘한 자갈들이 깔린 땅바닥에서는 더욱 그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반 리외쯤 말을 타고 가다가 더 이상 가볼 필요가 없다는 듯이 단장은 말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멈춰 세우고는 호위부대를 향해 외쳤다.


“형제들이여! 정의가 무엇인지를 신속하고도 확실하게 보여주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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