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의 숲

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81화

by 오래된 타자기


제2부 22-2



예루살렘

1232년 11월


차디찬 기류를 품은 바람이 세차게 일면서 서재의 창문을 가리고 있던 두꺼운 커튼이 펄럭였다. 고문서학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생 마포 천을 젖히고는 도심을 흘깃 바라본 뒤, 창문을 다시 닫아걸었다. 서리가 내린 예루살렘에 훤하게 동이 터왔다. 예년에는 볼 수 없던 이상 기온이었다.


고문서학자는 굵직한 손가락으로 성호를 그었다. 성지에는 몇 주나 앞당겨 겨울이 찾아왔다. 얼마 전에는 천벌을 받은 영혼처럼 이미 가을이 지났는데도 폭염이 다시 시작되더니 과수들이 제철이 아닌데도 꽃봉오리를 틔우려 싹을 내밀었다.


꽃이 피려는 가망은 그러나 밤사이에 사라졌다. 모든 것을 불태울 듯이 건조한 바람만이 세차게 몰아치더니 이제는 서리가 내려 온 고을에 참화를 입힐 것이 분명해 보였다.


더욱 기이한 일은 시리아의 고원지대에 사는 늑대들이 양 떼가 풀을 뜯고 있는 계곡으로 몰려 내려와서는 양들을 물어뜯어 죽이고 있다는 소문마저 흉흉하게 나돌았다.


고문서학자는 자리로 다시 돌아와서는 책상 위를 밝히던 양초의 심지를 손으로 눌러 껐다. 밤새 등이 굽는 줄도 모르고 책상 앞에서 일하는 바람에 몸은 녹초가 되다시피 했다. 일하는 중에 어쩌다가 어둠 속에서 헛발질하듯 앞날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채,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기도 했다.


그가 다시 벽난로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서는 벽난로 앞에 놓여있는 떡갈나무로 만든 의자에 걸터앉아 장작더미가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이따금씩 벽난로 안에 눈에 보이진 않지만, 저 스스로 타오르는 잉걸불을 황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타닥타닥 거리는 소음도 없이 잉걸불이 남은 장작을 전소시켜가고 있었다. 느릿느릿하면서도 집요하게, 조심스러우면서도 확실하게 불타오르는 불꽃을 그는 묵묵히 지켜만 봤다.


고문서학자는 몸을 돌려 기다란 탁자 쪽으로 눈길을 던졌다. 탁자 위에는 양피지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채였다. 완성한 서책을 다시 들여다보고자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 쪽으로 걸어갔다. 탁자 위로 허공에 매단 줄에는 양피지 낱장들이 사슬에 목을 매단 사체들 모양 걸려있었다.


양피지에는 대로 하며 좁은 골목길들과 지하로 연결된 막다른 길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길들은 길게 이어져나가다가 서로 엇갈리기도 하고 서로 겹치기도 했다.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길들이 서로 얽힌 가운데 자리한 숲이 비밀을 감추고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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