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84화
제2부 22-5
예루살렘
1232년 11월
호위대 병사들이 요란한 말발굽 소리를 내며 템플 수도회 정문을 빠져나갔다. 정 중앙엔 템플 기사단장이 자리했다. 말고삐를 쥔 단장의 얼굴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투구 아래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살인마들과의 갑작스러운 교전은 그에게 벅찬 과제였다. 단장에 선출된 이후로 오랫동안 말을 타고 달릴 기회가 주어지질 않았다. 하지만 유럽 대륙을 떠나온 젊은 신병들에게 모범을 보일 좋은 기회였다.
템플 형제들이 공격을 하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행동은 항상 징벌의 차원에서만 허락되었다. 징벌은 곧 죽음이었다. 템플 기사단 내에서의 규율은 절대적이었고 다른 것들 역시 절대적 규칙에 따라야만 했다. 그럼으로써 십자군 성당 기사단은 기독교도들에게 최고의 명성을 지닌 수도회가 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동방에서의 골치 아픈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젊은 기사단원들 중에는 수도회를 비방하고 힐난하는 이들도 있어 그 숫자가 점점 늘어만 갔다. 서방 세계에서는 도처에서 집안의 카데(막내)들이 모여 십자군 기사단의 입회를 청원하고 나섰다.
흰색의 수도회 복장을 한 성당 기사단의 신화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기사단의 강력한 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들은 스페인에서 무어인들을 무찌르고 나일강 연안에서 약탈을 일삼는 무리들을 쫓아냈으며, 기독교 왕국의 모든 지역에서 맹활약을 떨쳤다. 그런 연유로 템플 형제단원이야말로 참된 신앙을 지키는 보루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페리고르는 욕실이 있는 곳까지 계단을 올라갔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온 방을 네모난 타일로 뒤덮은 욕실은 수증기가 가득 찬 가운데 더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한가운데에는 더운 김이 나는 커다란 욕조가 놓여있었다. 템플 기사단장은 투구와 갑옷을 벗고 헐렁한 투니크 겉옷까지 벗어던진 채 맨발로 내실을 가로질러 갔다.
하인들이 목욕물을 준비하는 방문을 열자 하인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하인의 손에는 수건과 함께 목욕통에 부어 넣을 작은 향유 병들이 들려있었다. 향내가 수증기에 뒤섞여갔다. 아르망은 욕조 안에 몸을 담갔다.
욕조 안의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순간 타는 듯한 뜨거움이 고통스러운 옛 기억들을 되살아나게 만들었다. 그의 가슴팍에는 커다란 흉터가 줄을 그은 것처럼 나있었다. 이집트 나일강 삼각주에서 있었던 전투에서 적이 휘두르는 칼에 베어진 상처 자국이었다. 그는 고개를 기울여 가슴팍에 난 흉터를 들여다보았다. 흉터는 연보랏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다시 고통스러운 기억이 되살아났다. 회교도가 휘두른 칼이 그의 가슴팍을 여지없이 도려냈다.
논 노비스 도미네 논 노비스, 세드 노미니 뚜오 다 글로리암 [1] 그가 읊조렸다. 수도회의 모토였다. 일개 병사로부터 단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템플 기사단원들이 매번 맘속으로 읊조리는 좌우명이었다.
성가는 방향성 향유처럼 온 방에 울려 퍼지면서 몸과 마음의 상처들을 가라앉혀 갔다. 훨씬 젊었을 때는 템플 기사단 관할의 키프로스 섬에서 잘못을 저지른 죄인에게 형벌을 내리는 재판정에서 심적 충격을 받기도 했다. 재판정에서 한 부하사관이 닭 한 마리를 훔친 죄로 쉰 번이나 내리치는 태형을 감내하고 있었다. 그것도 타는 듯한 열정으로 논 노비스 성가를 되풀이하며 매질의 고통을 그는 참아내고 있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자마자 몸이 느슨해지면서 나른한 느낌마저 들었다. 눈꺼풀이 천천히 덮여가자 정신마저 혼미해졌다. 그러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생각들이 구원의 열기에 뒤섞여갔다. 피, 검, 방패, 말타기, 전투……. 그리고 늘 전쟁터에 진동하는 피 냄새. 그 모든 피비린내 나는 아비규환이 이른바 이들이 성스러운 땅이라 부르는 곳의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뜨거운 물과 감미로운 향내가 잠시나마 멧돼지들[2]이 뒹구는 진창에 빠져 더러워진 그를 정화시켜 주었다.
갑자기 불두덩이가 칼로 째는 듯한 아픔이 전해졌다. 손안에 잡힌 한쪽 고환이 피가 딱딱하게 굳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도적떼 중 한 명이 단검으로 찌른 뒤부터 생긴 증상이었다. 다행히 쇠사슬 갑옷을 입고 있어서 정통으로 가해지는 일격은 면할 수 있었다. 쇠사슬 갑옷을 입지 않았더라면 그의 몸은 여기저기 칼에 찔려 의식을 잃고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문밖에서 시끄러운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피부가 검은 시리아인이 나무 가리개 뒤에서 속삭이는 말투로 전갈을 전해왔다.
“단장님! 고문서학자께서 서책을 가져오셨습니다.”
아르망 드 페리고르는 지그시 감았던 눈을 뜨고는 천천히 또박또박 한 마디씩 끊어서 분명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학자께 이르라. 그곳에 잠시 있으라고. 그리고 아무도 우리 두 사람을 방해해서는 아니 되느니라.”
[1] “우리가 아니옵고, 주님! 우리가 아니옵고, 주님의 이름으로 찬미받으소서.”
[2] 템플 기사단이나 서방세계의 기독교도들을 가리켜 회교도들은 그들이 절대 식용으로 취하지 않는 ‘돼지’라 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