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85화
제2부 22-6
예루살렘
1232년 11월
롱슬랭의 입안에서 쓰디쓴 맛이 겉돌았다. 랍비를 향해있던 고개가 돌려지더니 다시 롱슬랭 자신을 쳐다보았다. 롱슬랭은 칸막이벽을 잡고 일어서려 애썼으나 두 다리마저 풀려버린 듯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그가 다시 물속에 처박혔다.
옛적엔 뒤랑스 강[1] 줄기를 따라 한 번도 쉬지 않고 그 먼 길을 달릴 수 있었던 그였다. 근육이 강철만큼이나 단단했던 그였다. 손을 뻗어 장딴지를 만져보았다. 무릎 아래쪽으로 힘줄들이 돋아나있었다. 시력은 흐리멍덩해지고 현기증마저 일어 눈가에 무언가 소용돌이치는 느낌이었다. 유대인이 손을 뻗어 다시 그를 붙잡았다.
“걱정 말게나. 악은 결코 자네를 해치지 못할 것이네. 자네가 죽으려면 아직도 멀었네.”
뱃속에서 복통이 일어나는지 롱슬랭은 딸꾹질을 해댔다.
“놀라운 일이로군……. 그대의 예언이 제발 이루어졌으면……. 난 개처럼 끌려가 죽고 말 거야…….”
“천체를 수놓고 있는 해와 달과 별들은 틀리는 법이 없다네.”
점점 의기소침해져 갔지만, 그래도 터져 나오는 싸늘한 비웃음을 롱슬랭은 어쩔 수가 없었다.
“……너 역시 네 마을 사람들처럼 시체로 나뒹굴어도 그때도 그렇게 말할 텐가?”
마이모네스는 롱슬랭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자네는 아는가? 운명이 다만 저 찬란하게 별들이 떠있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천체 속에서 제 갈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프로방스 사내는 소리 없이 그의 말에 동의를 표시했다. 유대인들이 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처형한 뒤로 그들 모두가 사탄의 무리가 되어갔음이 명백했다. 롱슬랭은 그런 그들을 의심했고 경계해 왔다. 모두가 악마일 뿐이었다.
“그런데 하늘이 뜻하는 바 비밀에 감춰진 언표를 읽을 줄 아는 자야말로 인간들의 운명까지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롱슬랭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이전부터 벌써 성지에 모여 사는 랍비들과 이런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인 바 있었다. 자신들에게 엄격한 이들은 침묵했다.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신비한 허상이나 쫓고 있는 그들의 입바른 수다에 빠져드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하늘만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앞날을 예정하고 있는 길을 읽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 않은가? 전지전능? 전혀 고마운 게 못되네. 차라리 손바닥에 나있는 손금을 보는 게 나으리니.”
포스의 카데인 롱슬랭이 이번에는 랍비가 하는 말에 수긍했다. 노인네는 정신을 잃었다. 오랫동안 포로로 잡혀있던 탓에 그리된 것이 틀림없었다.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친놈! 남의 동정이나 살피러 다니는 놈? 아니면 적어도 그 비슷한 놈은 아닐까?
“그래서 너는 앞날을 내다볼 줄 안다는 거야 뭐야?”
“이미 자네의 운명을 말했지 않은가.”
몸을 쑤셔대는 통증에도 아랑곳없이 롱슬랭이 웃음을 터뜨렸다.
“너는 확실히 미쳐버린 게 틀림없어!”
캄캄한 어둠 속에서 마이모네스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대꾸했다.
“우리 둘 중에 누가 더 미쳤는지 별들에게 한 번 물어볼까……?”
귀가 먹먹할 정도로 소음이 캄캄한 어둠을 뒤흔들어 놓고 있었다. 이빨이 부드득 갈렸다. 쥐들이 물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아니면 물 위를 걸어가고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아니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부활한 이에게 물어볼까?”
“이 유대인 놈이 참으로 불경한 말들만 쏟아내는구나.” 도적떼의 우두머리가 벌컥 화를 내며 맞받아쳤다.
마이모네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뼈마디가 드러난 손으로 자신과 같은 몰골을 한 운조차도 더럽게 없을 것 같은 사내의 어깨를 붙잡았다.
“나를 믿게나. 롱슬랭! 영원히 함께 할 손이 그대의 어깨 위에 얹혀있다네.”
[1] 뒤랑스(la Durance) 강은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 남동쪽으로 흐르다가 마지막엔 론(le Rhône) 강에 합류하는 지류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