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87화
제2부 23-1
영국
웨스트 컴브리아
달톤 원자력 연구소
지금 현재
기계장치에서 흘러내린 고무 타는 냄새가 실험실 내부에 진동하면서 유리 칸막이 뒤쪽에 자리 잡은 기계장치들이 회색 연기에 덮여갔다. 순간 경보 사이렌이 갑자기 울려대기 시작했다. 위험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는 실험실 바깥 복도에까지 퍼져나갔다.
만티네아 박사는 뒤쪽에 있는 기계 조종 장치가 설치된 계기판 앞으로 뛰어가서는 중앙 컨트롤 컴퓨터의 좌판을 마구 두들겨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경보 사이렌 소리가 일순간 뚝 그쳤다.
훼인스워드는 유리 칸막이벽 앞에 몸이 굳어버린 듯 멍하니 서있는 채였다. 뼈들에게 방사능이 쏟아지면서 마치 그가 예상한 대단한 일이라도 곧 벌어지려니 하는 눈치였다.
“좀 멀리 떨어져 있으세요. 빨리!” 엔지니어이자 연구소 책임자인 만티네아 박사가 소리 질렀다. “빨리요!”
귀족은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뒷걸음질 쳐서 조종 계기판으로부터 멀찌감치 물러났다. 유리판 뒤로 콘크리트 차단벽이 천장에서 바닥 아래쪽으로 빠른 속도로 내려왔다. 방사능 생성장치들을 눈에 띄지 않도록 폐쇄하기 위한 수단인 것 같았다.
기계가 작동하는 것을 한눈에 컨트롤할 수 있는 화면에는 이상한 현상이 연이어 나타났다. 붉은 막대그래프가 멈추지 않고 화면을 오르내리더니 일련의 숫자들이 엄청난 속도로 화면 한쪽을 채워갔다. 만티네아 박사는 셔츠의 늘어진 부분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훼인스워드 쪽으로 돌아섰다.
“일단 실험실 안의 모든 경보를 차단했습니다. 아마도 더 이상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은 발생하지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보호벽 또한 어느 단계까지는 어떠한 경우를 막론하고 방사능이 방출되는 것을 차단해 주리라 생각합니다. 빌어먹을,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로드께서 가져온 이 뼈가 미립자 원소들을 지나치게 많이 방출하는 바람에 균형이 깨진 것 같습니다. 눈앞에 실제로 빅뱅이 이루어진 거라 생각되는데 만일 계속한다면 연구소 안의 모든 반응 장치들이 점점 온도가 비등하여 위험한 상태가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멈추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요……. 그것 말이요?” 불안한 기색을 숨길 새도 없이 훼인스워드가 쏘아붙였다.
훼인스워드는 돌변의 사태에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성인의 뼈들은 단지 하나의 단계나 열쇠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수준을…… 이미 넘어버렸다. 만티네아 박사는 열에 들뜬 표정으로 좌판을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프로톤을 발생시키는 장치가 작동을 멈췄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충분치는 않습니다. 뼈들이 자체적인 에너지를 생산하는 원인으로 자리 잡았다면 연쇄작용이 일어나야만 합니다. 프로톤을 끌어당기는 변환기 장치를 다시 작동했습니다. 그러면 미립자들이 소용돌이치면서 이를 흡수하게 됩니다. 그런데 전혀 작동하지 않는군요. 2분 정도 프로톤을 방출하다가는 멈춰버립니다. 연구소 전체에 경보 사이렌이 울릴 것입니다. 이젠 오로지 한 가지 선택만이 남아있습니다.”
“뭐가요?”
“자동으로 조종되는 로봇이 방사 장치들 한쪽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로봇은 방사선이 방출될 경우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하여 안전을 위해 일시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마련한 것입니다. 로봇을 작동시켜 뼈들을 완전히 분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모든 작동이 멈출 것입니다.”
“안 돼요!” 훼인스워드의 표정이 위협적인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참 당신은 제 말을 안 들으시는군요. 제 이야기는 이 말도 안 되는 시도가 연구소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요.”
귀족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도저히 뼈를 파괴하는 걸 용납할 수가 없었다. 만일 그렇게 되면 모든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검은 템플 기사단의 존재 자체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전지전능한 에너지의 원천에 대한 기대는 절대 수포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그는 스스로 흥분상태를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그에게는 세 가지 선택만이 남아있었다. 죽느냐, 아니면 뼈를 완전히 소각해 버릴 것이냐, 그도 아니면 방사능 사출을 낮출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맨 마지막을 선택하리란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였다. 그 역시 그것을 선택하리라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본능에 따른 행동과는 달리 신중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을 성취하고야 말겠다는 본능적인 반사행동. 처음 몇 년간을 훼인스워드는 금융 시장을 정복하겠다고 미친 듯이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배짱을 부리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의 평가에 따르면 그는 아주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배짱, 바로 그것만이 그의 열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