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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Oct 19. 2023

중세 필사실

앙드레 보느리가 들려주는 로마네스크 예술 이야기 91화

[대문 사진] 중세 필사실 모습


중세의 저술들이나 문서들 그리고 기록집들은 필사실이라 불린 스크립토리아(scriptoria)에서 제작한 것들입니다. 스크립토리아란 거의 대개가 수도원에 딸려있거나 대성당 참사회에 소속된 수사본들을 필사하면서 삽화를 그리던 공방을 가리키죠.


교회나 대성당의 공방들은 대개 경내 안뜰 양측의 회랑에 자리 잡았으며, 필사나 채색작업 일을 맡은 형제 수사들이 창가 쪽 햇빛이 드는 곳에 앉아 수사본을 필사하고 그 안에다 삽화를 그려 넣었습니다.


공방을 관리 감독하면서 모든 작업을 진두지휘 하는 관리자 수사도 존재했죠. 이 관리자를 가리켜 아르마리우스(armarius)라 불렀는데, 요즘 식으로 일컫자면 수도원이나 교회 참사회의 도서관장쯤에 해당합니다.


필사실(scriptorium)은 사정에 따라, 즉 계절이 바뀌거나 일조량이 변할 때마다 자그마한 부속 채로 옮겨지기도 했습니다.


홍뜨내(Fontenay) 수도원 수사본 필사실인 스크립토리움(scriptorium).


책을 만드는 일은 장기적으로 열과 성을 다해야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양피지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양이나 염소 가죽을 벗기고 말려야 하는 번거로운 작업이 자연히 수반되었죠. 때로는 최상급의 독피지에 해당하는 양피지를 얻기 위하여 송아지나 어린 염소 새끼 가죽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단 한 권의 성서를 제작하는데 수십 마리의 짐승 가죽이 들어갈 정도로 많은 양의 가죽을 필요로 했죠.


질 좋은 양피지를 생산하기 위한 공정은 우선적으로 여러 개의 석회 수조에 가죽을 부드럽게 불리기 위한 용액을 혼합하여 가죽을 담근 다음 이를 여러 차례 반복하는 일입니다.


그 진행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석회 수조에 가죽을 물에 담그기, 불린 가죽의 세척, 씻은 가죽에서 기름기를 제거하기, 이면의 털을 제거하는 순서로 공정이 이어집니다.


이어서 가죽을 늘리고, 다시 세척하고, 마지막으로 석회가루를 가죽에 바릅니다. 그런 다음 속돌[1]로 문질러 가죽을 부드럽게 만들죠.


공정이 복잡하고 섬세한 작업을 필요로 했던 까닭에 수도원이나 교회 참사회는 나름대로 독특한 제조법을 개발하여 이를 바탕으로 양피지를 생산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엔 양피지의 우툴두툴한 부분을 제거하고 필요에 따라 양피지를 반들반들하게 윤이 나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그다음으로는 적당한 규격으로 잘라 포개 놓은 뒤에 이를 쌓아 올립니다. 이렇게 해서 한 권의 서책과 같은 아무것도 씌어있지 않은 양피지 낱장 묶음 더미를 완성합니다.


필사를 하기 위해서는 깃털이나 갈대, 뾰족한 철필, 글자를 지우는 데 사용하는 작은 칼, 속돌 등과 같은 도구가 갖춰진 상태여야만 하며, 필사 작업에 참여한 형제 수도사는 양피지에다가 무척 공을 들여 오랜 시간 동안 한 자 한 자 글자를 적어나갑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글자 한 자 한 자에 온 신경을 집중하기도 했습니다. 만일 글자를 잘못 쓴 경우엔 작은 칼로 살살 긁어내어 완전히 지운 다음 그 위에 다시 적어 넣어야만 했습니다.


그보다도 더 심한 경우에는 문장 전체를 다시 반복하여 필사하곤 했죠. 세바스티앙 바레(Sébastien Barret)가 조사하고 검증한 바에 따르면, 하루 동안 필사할 수 있는 글자의 양은 7000자에서 9000자 정도입니다. 이는 약 35개에서 45개의 행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문단에 걸친 양입니다. 즉 하루에 두 개의 문단 정도를 필사할 수 있었던 셈이죠.


똑같은 책을 완성하기 위해 여러 명의 필경사들이 함께 참여하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각자 서로 다른 양피지 서책에 같은 내용을 동시에 적어나가는 협업체계를 통한 작업이 이루어졌죠.


복사가 완전히 끝나면 양피지 한 장 한 장을 실로 꿰매어 묶는 작업이 뒤따랐습니다. 이른바 나무로 만든 널빤지를 대고 제책(製冊) 또는 장정(裝幀)하는 작업이죠.


서책 표지에 해당하는 널빤지는 가죽이나 양피지, 또는 천과 같은 것으로 둘러 씌웠습니다. 아주 진귀한 책일 경우에는 표지를 보석을 붙여 넣은 금은 세공으로 장정하는 경우도 있었고 상아로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중세 때 제작된 수사본들 가운데 단 10%만이 채색 삽화로 장식한 것들입니다. 채색 삽화는 첫머리글자만 장식한 경우 거나 텍스트 가장자리까지 장식한 경우, 페이지 전체에 걸쳐 삽화로 채운 경우 각기 다 달랐습니다.


채색 공정은 먼저 수은으로 초벌 그림을 그린 뒤 밑그림을 완성시켜 나갔죠. 다음엔 가느다란 깃털 펜으로 잉크를 찍어 선을 그으면서 전체 그림의 윤곽을 잡습니다. 그다음엔 금박을 입히는 작업입니다. 금박을 입히는 공정은 반드시 색칠을 하기 전에 먼저 해야만 하는 작업입니다. 그래야만 도색과 금박이 서로 잘 어울려 묘한 조화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도색 과정은 까다롭기 이를 데 없었는데, 먼저 천연 안료를 으깨어 부순 뒤 녹여야 하는 공정으로 적당히 물을 섞어 잘 풀어지게끔 만들어야만 합니다. 이때 계란 흰자나 아라비아 산 고무에서 채취한 용액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명반 용액과 같은 부식제를 사용하여 색이 양피지에 잘 먹히도록 만듭니다.


색소를 섞어 만든 물감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채색 삽화가는 밋밋한 색조, 즉 밝은 계통의 색을 먼저 입힌 뒤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려 그 위에 덧칠하는 식으로 서로 다른 색들을 입혀나갑니다.


색칠이 덧나갔을 경우엔, 잉크를 다시 사용하여 색칠이 넘친 가두리를 지웁니다. 마지막으로는 채색 삽화를 보다 선명하고도 뚜렷하게 만들기 위한 색칠 작업이 뒤따릅니다.


<수사본을 읽는 수도사>, 독일인 부르샤르트(Burchard)에 의해 제작된 「성지(聖地)에 대한 묘사」, 파두아(Padoua) 신학대학 도서관 소장.




[1] 속돌(輕石)이란 화산이 분출하면서 쏟아낸 용암이 갑자기 식으면서 공기구멍들이 생긴 다공질의 가벼운 돌을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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