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보느리가 들려주는 로마네스크 예술 이야기 92화
[대문 사진]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교회 건축물을 장식함에 있어서 성화가 그려진 색유리창 역시 회화와 일치하는 대전제로부터 출발하였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회화와는 달리 그림을 그려 넣은 색유리창의 기능만큼은 대단히 복잡한 양상을 띠었습니다. 기능에 우선하여 일단 실내를 환하게 할 목적으로 유리창을 설치하였던 이유 때문이죠.
유리창에 점점 색을 입혀가면서 상징적 의미도 더해졌습니다. 요컨대 빛은 신의 창조물이라는 인식이 점차적으로 확산되어 갔죠. 빛은 곧 신을 상징했습니다. 요한복음(1장 1-5절)에 따르면 빛은 니케아(Nicée), 즉 승리의 상징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빛은 빛을 낳고 참다운 하느님은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시다.”[1]
유리 한 장씩마다 색을 입힘으로써 교회 건축물은 천상의 예루살렘으로 변모해 갔습니다. 색유리창을 투과한 “빛은 지극히 귀한 보석처럼 섬광을 발하면서 수정처럼 맑은 벽옥과 같았다.” 천상 예루살렘의 “성벽은 온갖 진귀한 보석 장식들로 쌓여있었다.” (요한의 묵시록, 21장 10-19절).
유리 세공인들은 요한의 묵시록에 등장하는 보석들을 색유리창에 색채로 표현하였습니다. 묵시록에 등장하는 보석들은 벽옥, 사파이어, 옥수, 에메랄드, 홍마노, 홍옥수, 감람석, 녹주석, 황옥, 녹옥수, 청옥, 자수정들입니다. (요한의 묵시록, 21장 19-21절). 또한 유리 세공인들은 연금술사들이 영혼과 육신을 돕는 신비한 능력을 돌들에 부여했다는 점도 잊지 않았습니다.
생 드니 수도원과 프랑스 서쪽 지역을 비롯하여 독일 지역에 로마네스크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대형 착색유리가 등장한 것은 12세기 중반 이후의 일입니다. 성화를 담은 색유리창이 출현한 지역은 가장 아름다운 벽화가 탄생한 지역과 정확히 일치하죠.
생사뱅 쉬흐 갸흐탕프(Saint Savin sur Gartempe) 같은 경우에는 프레스코 화들 사이에 색유리창이 끼어들었습니다. 푸아티에(Poitiers) 대성당은 그림이 들어간 색유리창이 후진을 장식하기도 합니다. 르망(Le Mans) 대성당엔 예수 승천을 묘사한 유리창이 걸렸습니다. 또한 방돔(Vendôme) 삼위일체 수도원 성당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그린 성화가 색유리창에 등장합니다.
독일에서는 1100년부터 색유리창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아우크스부르크 대성당에는 보석처럼 빛나는 유리조각들이 다윗의 왕관과 의복을 수놓고 있습니다. 이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예시한 것이죠.
한 세기가 지난 다음 독일의 검은 숲에 위치한 알피르스바흐(Alpirsbach) 수도원 교회에 성화가 그려진 색유리창이 설치되었습니다.
이어서 스트라스부르대성당의 ‘최상의 시리즈(séries impériales)’라 불리는 일련의 색유리창들 역시 출현했습니다.
샤르트르 대성당과 생 드니 수도원은 로마네스크 양식을 쇄신한 고딕 성당에 성화를 담은 색유리창을 처음으로 설치한 곳입니다. 이들 성당들은 시토회의 규율에 따르자면 유리창에는 그 어떤 색도 입혀서는 안 되며, 또한 어떠한 성서적 삽화도 담아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거부한 채, 성서에 등장하는 장면들을 극화한 색유리창을 제작해 설치한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색을 입힌 유리 조각들을 납으로 된 그물처럼 얼키설키 만든 꽂을대에 정교하게 끼워 넣었습니다. 유리창에는 성서에 등장하는 장면들이 각각 그려져 있죠. 얼굴과 옷 주름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윤곽선들은 유리에 그림을 그려 넣게 되면서 발전을 거듭한 이른바 그리자이유(grisaille) 기법에 따른 것입니다.
시토회에 속한 유리 세공인들은 납 꽂을대에 마치 머리 타래를 이리저리 엮은 모양으로 유리 조각들을 끼워 맞춰 유리창을 제작했습니다. 장식적 특징은 기하학적 문양이라든가 얽힘/엮음장식 또는 양식화된 꽃장식들이 전부입니다. 이를 그리자이유(grisaille) 기법이라 부르는데, 가장 대표적인 유리창으로는 꼬레즈(Corrèze) 지방에 자리 잡은 오바진느(Aubazine) 수도원의 유리창이 이에 해당합니다. 다행히 유리창은 아직까지도 남아있습니다.
시토회 소속 수도원 교회들은 한결같이 ‘흰색의 또한 그림이 들어가지 않은’ 유리창만을 고집했습니다. 이는 최대한 빛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이자 묘사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고안된 것이죠. 12세기에 이와 같은 유리창에 대한 규제 탓으로 앞으로 제작되는 시토회 유리창들은 항상 회색이나 녹색, 혹은 노란색이나 푸르스름한 엷은 색조를 띠게 됩니다.
[1] 요한복음 1장 1절에서부터 5절까지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말씀은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생겨난 모든 것이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 『공동번역 성서』(가톨릭 용), 대한성서공회 발행, 1986,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