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89화
제2부 23-3
영국
웨스트 컴브리아
달톤 원자력 연구소
지금 현재
훼인스워드는 이리에게 과학자와 좀 떨어져 있으라는 사인을 보냈다. 화면상에는 푸른 막대그래프가 계속 높게 상승하고 있었다. 대조적으로 붉은색 막대그래프는 점점 줄어들어갔다. 만티네아 박사는 비로소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린 정말 운이 좋습니다. 친애하는 경하! 그것도 엄청난 행운 말입니다.”
“박사가 떠올린 행운이란 것이 구령예정설[1]의 또 다른 이름 같은데 하지만 이러한 개념은 당신의 합리적이고도 이성적인 논리에 맞지 않는 것 아닌가요?”
이리가 훼인스워드에게 바짝 붙어서 소곤거렸다.
“모든 게 잘 될 거라 믿어.”
“흥분이 될 정도로 죽었다 살아난 경우로군. 아주 격렬하게 말이야.” 닫혀있던 철문 가리개 판이 다시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귀족이 말을 받았다. “난 네가 그렇게 빨리 일을 처리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어.”
“온전히 내 맘이 움직여서 한 일이야. 내 사랑!”
훼인스워드는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여자의 허리를 손으로 감싸 안았다.
“흥분은 역시 우리 둘을 존재하게 만드는 동력인 것이 틀림없다. 나는 네가 아주 여성적이라는 점이 맘에 들어. 내 이리가 참으로 잔인하고 인정사정 보지 않아서 더욱 맘에 들뿐이야.”
여자 살인범은 재빨리 그로부터 떨어지려고 서둘렀다. 그녀의 두 눈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자기에게 도움이 된다면 뭐든 할 각오가 되어있어.”
“서두르지 마라. 우리의 친구인 만티네아 박사에게 아직 할 말이 남아있다. 여기서 나가서 내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늦지 마. 난 지금 몸이 달아오르고 있어. 우리 둘이 그걸 안 한 지가 벌써 2주째야. 자꾸만 달아오르고 있어. 만일 시간이 자꾸 길어지면 자기도 괴로울 거야.”
“알았다. 알았어…….”
이리는 귀족의 목에 입맞춤을 하더니 포옹하던 두 손을 풀고는 실험실을 나갔다. 만티네아가 불안한 눈초리로 그녀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콘크리트 장벽이 완벽하게 원래 상태로 들어 올려지자 방사능 사출기계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엔지니어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의 빠른 손놀림으로 좌판을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오 이럴 수가! 1분 동안에 뼈들이 1억 볼트의 에너지를 생성했습니다. 번개가 4번이나 쳐야만 발생하는 전기에너지입니다. 모든 기계장치들이……. 프로톤 용 집속관이 모든 기계장치들을 활성화한 탓입니다. 이는 에너지 물질의 모형 화에 근거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기술을 다 동원한 끝에 획득한 놀라운 발견입니다. 저는 내부에 무엇이 자리해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우라늄 에너지라는 것이 장터에서 장사치들이 늘어놓고 팔고 있는 오락용 폭죽이나 폭발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순간까지 엄청난 실험을 했습니다만 앞으로도 저는…….”
“당신이 흥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고 있어요. 나 역시도 흥분이 돼요. 뼈는 일단 여기 놔두도록 하겠습니다. 해골은 제외하고……. 이야기는 아직 안 끝났어요. 실험실에서 있었던 모든 일에 관해서는 비밀을 유지해야만 합니다. 절대 당신 연구소 사람들하고 정보를 교환하거나 하면 안 됩니다.”
만티네아 박사는 얼굴이 붉어졌다.
“이 추출된 에너지의 기원과 본질을 확인하는 작업을 위해서는 컴퓨터상으로 시뮬레이션을 해야 하고 또한 다른 작업도 병행할 필요가 있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훼인스워드는 만티네아 박사 곁에 앉아 그의 손에다 자신의 손을 얹었다. 박사의 손을 잡고 그가 말하기를
“나는 당신과 같은 처지요. 나 역시 이 놀랍고도 대단한 에너지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소. 하지만 과학적으로 기술을 공유하고자 이를 세상에 알린다는 것은 시기상조일 듯싶소. 내 말을 믿으시오. 언젠가는 모든 공로가 당신에게 돌아갈 것이오. 그다음에 나 또한 당신에게 기대를 할 수 있을 것 아니겠소?”
“그렇긴 하죠……. 그런데 이러한 에너지의 존재를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리고 이 뼈는 어디서 가져온 겁니까?”
훼인스워드는 과학자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의 두 눈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뼈가 어디서 생겼는지는 중요하지 않소. 다만 그것이 인류의 운명을 바꿔놓을 것이란 점만이 중요하오.”
[1] 프랑스 누와용 태생의 종교개혁가 장 깔뱅(영어로 존 캘빈)이 주장한 이론으로 루터보다는 츠빙글리에 더 가까운 것으로 해석되는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구령예정설(救靈豫定說, la prédestination)은 두 개의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첫째는 하느님이 모든 사물의 흥망성쇠를 영원히 예정하고 있었다는 사물 숙명론이고, 둘째는 하느님이 사람의 운명까지도 미리 예정하였다는 인간 숙명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