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사 드뱅

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90화

by 오래된 타자기


제2부 24-1



예루살렘

템플 수도회 건물

1232년 11월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건물 뒤편으로는 사이프러스[1]가 빙 둘러싼 채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템플 공동묘지가 길게 이어졌다. 공동묘지의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무성한 잎을 피운 나무 그늘 아래, 아득히 먼 옛적 솔로몬과 예수 그리스도가 발을 디딘 땅에다가 죽은 형제들을 매장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의 시신은 땅속에 반드시 눕혀졌으며, 겸손함에 대한 표지로 묘석에는 오로지 검 하나만이 새겨져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요 몇 년간 전쟁터에서 수많은 성당 기사단들이 죽어가면서 묘지는 차고 넘쳐 더 이상 그들을 눕힐 자리마저 없어졌다.


전투에서 사망한 기사단원들의 시신은 염포에 둘둘 말려져 묘지 귀퉁이를 차지하거나 아니면 그들의 시신이 묻혀있음을 증거 해주는 나무 십자가 하나만이 덩그러니 땅에 박혀 있을 뿐이었다.


주술사 드뱅은 차갑게 얼어붙은 땅바닥을 손가락으로 긁으면서 무언가를 그려나갔다. 주술사가 긁는 대로 점차 땅바닥에 세모꼴 형태가 드러났다. 세모꼴 맨 위의 꼭짓점은 동쪽을 향해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주술사는 조금 거리를 띄운 채, 자신이 그린 삼각형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약간 구릿빛이 도는 황갈색 땅이 떠오르는 태양에 반짝였다.


드뱅은 신고 있는 장화 끝으로 땅바닥을 문질러 자신이 그린 삼각형의 맨 위 꼭짓점을 지워버렸다. 죽은 자들을 불러낼 때마다 그는 이처럼 모난 각을 지워버리곤 했다. 완벽한 상징인 맨 위 꼭짓점을 지우지 않으면 죽은 영혼들이 그가 부르는 소리에 절대 호응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삼각형 맨 밑바닥 쪽으로 돌아선 드뱅이 성에가 녹아 딱딱하게 굳어진 땅에 작은 세 개의 잔들을 세워놓았다. 이어 호리병 마개를 열고 첫 번째 잔에 우유를 따라 부었다. 그러고는 몸을 기울여 우유를 가득 따른 잔을 들여다보았다. 혹시나 원죄로 더럽혀지지는[2] 않았는지 우유 표면에 불순물이 섞인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첫 번째 잔을 확인한 주술사 드뱅은 이어서 작은 단지를 들고 회양목 가지[3]를 이용하여 두 번째 잔에다 꿀을 따랐다. 달콤한 내음이 바닥에서 피어올랐다. 주술사가 미소를 지었다. 길 잃은 영혼들은 저 높은 곳 천상을 향한다는 마음에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할 것이다. 더군다나 제사 음식까지 차려져 있으니 그 기쁨은 말할 것도 없었다.


주술사 드뱅은 다시 무심한 동작으로 다른 호리병의 마개를 뽑고는 콧구멍에 갖다 댔다. 붉은 과일향이 물씬 풍겨 나왔다. 그는 천천히 마지막 잔에 루비 빛 붉고 투명한 액체를 따랐다. 이어 한 발짝 물러서서 땅바닥에 손을 짚고는 저 낮은 곳 지하에 잠들어 있는 영혼들을 불러내기 시작했다.






[1] 사이프러스(cyprès)는 편백(扁柏) 또는 실편백이라 불리며, 서양에서는 레바논 삼목(杉木)이라 일컫기도 하고 주로 묘지에 심는 잎이 가늘고 뾰족한 상록수를 가리킨다. 나무가 죽은 영혼을 달래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나무 재질도 좋아 미루나무처럼 시신을 안치하는 관을 짜는 데 사용했다.


[2] 가톨릭에서 ‘원죄(原罪) 없음’이란 동정녀 마리아의 무염시태(無染始胎)를 상징한다.


[3] 성지가지라고도 하는 회양목(buis)은 정원수로 많이 심는데, 성지 주일에 신자들에게 나눠주는 축성된 성지가지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매거진의 이전글에너지의 정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