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91화
제2부 24-2
예루살렘
템플 수도회
1232년 11월
욕실
수증기가 자욱한 가운데 수사본 서책을 읽어가는 목소리가 바람에 일렁이는 촛불처럼 은은하게 온 방을 가득 채워갔다. 욕조 안에서 템플 기사단장은 눈을 감은 채 수사본을 읽어가는 수사의 목소리를 쫓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한 이래로 1119년이 되던 해, 사람들 사이에서 고결한 명성이 드높았던 예루살렘 국왕인 보두앵 2세[1]는 성당 기사단을 최초로 창설한 위그 드 페잉[2]에게 그 고결한 이름에 걸맞게 옛적 솔로몬 국왕이 거했던 영지를 하사하였느니라…….”
아르망 드 페리고르는 고개를 쳐들었다. 최초의 템플 기사단들이 유산으로 신성하고도 고귀한 돌들을 무더기로 상속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무너진 지붕들로부터 와르르 무너진 벽들에 이르기까지 돌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것과는 아랑곳없이 도성 사람들 모두가 폐허가 된 자리에 임시로 거처를 정하고 머무르던 청빈하고도 남루한 옷을 걸친 수사이자 전사인 성당 기사단들을 비웃었다.
예루살렘 왕이 샹파뉴 백작 출신의 위그 드 페잉에게 목수 일을 하는 장인들과 지붕을 잇는 기와공들을 비롯하여 건물을 짓는 석공들과 돌을 자르고 다듬고 조각하는 석수들을 일임한 것은 실상 자신의 군주이기도 한 예루살렘 국왕까지 납득시킨 그의 집념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몇 달이 흐른 뒤에 지상에는 솔로몬의 영광을 드높이기 위한 건물이 들어섰느니라. 온전히 그 영광을 원래대로 드높이고자 한 결과였느니라. 새로 쌓아 올린 벽들은 하늘을 향해 치솟았고, 튼튼한 받침돌 기둥과 함께 쌓아 올린 벽들 위에 올린 지붕들은 평화로이 비둘기들이 내려앉는 공간이 되었으며,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찬미의 송가가 울려 퍼지는 성전이 되었느니라…….”
위그 드 페잉은 아주 조심스러우면서도 신중한 자세로 처신했다. 성전을 다시 짓는 일을 독려하면서 장인들을 위한 세심한 조처도 함께 시행했다. 샹파뉴 백작의 신분으로서, 또한 막 생겨난 템플 수도회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공명정대하게 그들의 신분을 해방시켜 주거나 그들에게 세금을 감면해 주기 위한 조처를 시행했다. 더하여 그들이 숙소로 사용할 공동체 건물을 가능한 한 한시바삐 완성할 것도 주문했다.
[1] 레뗄 백작인 위그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예루살렘 국왕에 오른 인물.
[2] 위그 드 페잉(Hugues de Payns ; 1074-1136)은 샹프누와 기사로서 십자군 원정에 참가하여 템플 수도회 최초의 기사단장이 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