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92화
제2부 24-3
예루살렘
1232년 11월
공동묘지
사이프러스 나무들을 통과한 해가 무덤들 사이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오후가 다해가고 있었다. 방금 전에 거무튀튀한 나무 십자가를 비추던 햇살이 어느샌가 서늘한 빛으로 흙무덤 위에서 나뒹굴었다. 바람은 잦아졌다. 대신 근원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고요가 텅 빈 묘지를 감싸고 휘돌았다.
묘지를 날아오른 비둘기 떼가 갑자기 허공에서 남쪽을 향해 방향을 틀더니 시온 산을 향해 날아갔다. 주술사 드뱅은 새들의 움직임과 새들이 날아간 방향을 되짚으며, 무슨 뜻일까를 놓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처음에 새들은 간격을 띄운 채 앉아있었다. 그러다 허공으로 날아올라 사라졌다. 죽은 자들이 그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마지막으로 도마뱀들이 어딘가로 도망쳤다. 초록빛 섬광이 무덤 위를 휘돌면서 유령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드뱅은 뒤로 물러나 헛간 벽에 등을 기대고 앞을 지켜보았다. 소음 하나 들리지 않는 가운데 드뱅은 벽에 등을 기대고 쭈그리고 앉아 돌처럼 굳어져갔다. 앞에 놓인 잔 세 개는 망령들이 나타나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죽은 자들의 왕국은 교회가 일러준 것과는 너무도 다른 세계였다. 사제들에게는 오로지 서로 완전히 적대적인 두 세계만이 존재할 따름이었다. 그곳이 천국과 지옥이었다. 당연히 사제들의 편협한 세계관으로는 어둠의 왕국인 지옥 또한 신성한 세계라는 주장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영원의 해안에 이르기 전에 이미 수많은 영혼들은 길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그 길고 긴 도상에서 죄를 저지르기까지 했다. 드뱅 역시 이쪽도 저쪽도 아닌 그 중간 세계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는 오직 고통만이 뒤따랐다. 혹자는 그가 살아가고 있는 곳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사람들에게 치여가며 이리저리 휩쓸리면서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겁을 집어먹고는 삶의 고초를 겪기도 했다. 또 다른 이들은 참된 빛의 세계에 이르고자 부단히 노력했으나, 자신을 스스로 정화하는데 실패했다.
이들 모두는 자신의 포로가 되어 살아갈 뿐이었다. 그들은 지상세계에서는 너무나도 깨끗한 영혼의 소유자들이었지만, 천상세계에서는 단지 오점투성이인 존재들에 불과했다.
우유가 담긴 잔이 흔들리면서 잔물결이 일었다. 그러자 영혼 하나가 모습을 나타냈다.
드뱅이 가까이 다가갔다.
무언가가 솟구치면서 꿀이 용해되어 있는 잔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템플 기사는 한쪽이 잘린 삼각형 중심에 자리 잡았다.
영혼을 붙잡기 위한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드뱅은 주먹 쥔 손을 풀었다.
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