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94화
[대문 사진] 프랑스 알비(Albi) 대성당 부속도서관 자료실에 보존되어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도인 마파 문디(Mappa mundi)
제2부 24-5
예루살렘
1232년 11월
공동묘지
주술사 드뱅은 아주 미세한 소리까지 감지하는 청각을 선천적으로 타고났다. 묘지 모퉁이에서 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그는 장화를 신은 발로 삼각형을 지웠다. 그와 함께 제식의 흔적 또한 말끔히 사라져 갔다.
템플 수도회 초심자가 헐레벌떡 묘지를 가로질러 뛰어와서는 기도하고 있는 기사 앞에서 주춤거렸다. 템플 기사는 오로지 형제 선인들을 위한 기도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당황한 초심자는 그가 기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서재에서 템플 기사단장이 드뱅을 기다리고 있다는 전갈을 아뢰었다.
드뱅이 서재에 들어서자 아르망 드 페리고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무용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몸을 돌리지 않은 채 단장인 그가 물었다.
“드뱅! 템플에 자네의 신심을 확인시켰는가?”
드뱅이 몸을 꼿꼿하게 세우면서 힘주어 말했다.
“저는 템플을 위한 일에 목숨까지 걸었나이다. 이제 저는 템플에 소속되었나이다. 몸과 영혼까지도.”
“영혼은 하느님께 달려있다네.” 단장이 정정하고 나섰다. “템플이 원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자네의 의지와 믿음이라네.”
주술사 드뱅은 땅에 무릎을 꿇었다.
“단장님! 명령만 내려주옵소서.”
“일어나거라.”
말이 떨어지자마자 기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칼을 찬 어깨띠 밑에서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고동쳤다. 페리고르는 장갑 낀 손을 드뱅의 어깨 위에 얹고는
“그대는 지금까지 맹목적으로 순종해 왔다. 지금부터라도 신앙의 빛 안에서 처신하도록 하거라.”
단장은 고문서학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에게 그것을 보여주도록 하라.”
수사는 책상 위에 양피지를 펼쳐놓은 뒤에 책상에서 물러났다. 드뱅이 펼쳐진 양피지로 가까이 다가갔다. 양피지 한 면 가득히 굵고 검은 선이 똑바로 그어져 있었다. 어지러이 여러 갈래로 나뉜 길들이 실타래처럼 풀려나간 형세였다. 양피지 위에는 여러 색상의 선들 또한 무질서하게 나있었다.
양피지 위에서 눈을 뗀 드뱅이 고개를 쳐들고
“이해할 수가 없사옵니다.”
단장은 손으로 지도를 가리키며
“우리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라네…….”
템플 기사는 의혹의 눈길을 거두면서
“……그렇다면 알 킬할의 랍비에게 한 번 물어보심이 어떠하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