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98화
[대문 사진] 12세기에 통용되던 템플 기사단 금화
제2부 26-2
예루살렘
1232년 11월
특사 궁전
도미니크 수사가 대기실에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 알 킬할에 개입한 정황을 자세하게 기술한 공식적 조서를 둘둘 말아 가느다란 가죽끈으로 묶었다. 손톱을 뾰족하게 다듬은 손으로 마치 새가 먹이를 움켜쥐듯이 다 묶은 조서를 두 손에 쥐고 있었다.
그가 작성한 조서는 처음으로 진술된 증언이며, 이후에 전개될 진술들에 대한 판단 준거로 사용될 터였다. 교황 특사는 심문관의 눈으로 세세한 사항 하나하나까지 모두 다 훑어볼 것이 틀림없었다.
알 킬할 사건에 연루된 자들은 각자 한 사람씩 불려 나와 심문을 당했고 약탈에 가담했던 병사들 가운데 살아남은 극히 일부의 병사들에 대한 조사마저도 벌써 끝마쳤다. 끌려 나온 이들은 각자 특사가 스스로 직접 준비하여 쏟아내는 빈틈없으면서도 엄중한 일련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해야만 했다.
법정을 방불케 하는 궁전의 사무소는 약간은 개혁적인 분위기도 감지되었다. 그러나 그곳 역시 오직 유일한 증인만이 존재했다. 신의 인간, 그의 말이 곧 진리였다. 이제 시리아인들과 이슬람인들 그리고 자신의 이름조차 쓸 줄 모르는 용병들이 증인으로 나설 차례였다.
자문관은 행정업무를 보는 관리들이 화를 내는 것을 잠재우는 일이 제일 곤혹스러웠다. 소란을 일으킨 장본인은 오히려 교황 자신이었다. 교황이 이 같은 개혁을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소란은 곧바로 화살이 되어 되돌려졌다. 각자 모두는 심정적으로 교황의 의향에 열광적으로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자문관은 손에 들고 있는 회양목으로 만든 묵주를 한 알 한 알 천천히 돌리면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다. 그는 항상 초조해했으며, 그와 같은 자신의 결점을 극복하게끔 도와주십사 늘 기도를 바쳤다. 성모송을 반복하면서 자문관은 타원형 창문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행인 한 사람이 궁정을 가로질러갔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간수 아르노가 걸어가고 있었다. 한 번 더 알 킬할에서 데려온 수감자들을 감옥에 집어넣고 떠나는 중이었다.
도미니크 수사는 묵주알을 굴리면서 간수가 바뀌는 것을 마음속에 새겨두었다. 사람들은 교회를 섬기는 자가 도시 저 아래에 자리 잡은 수상한 곳들에서 미심쩍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너그러이 용인해 주고 있었다.
문 뒤쪽에서 특사가 상반신을 벌거벗은 채로 베네치아에서 가져온 거울에 자신의 몸을 비춰보았다. 특사는 결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오직 자신의 몸만이 관심사였다. 그것만이 아버지와의 정신적 혼란을 떠올리게 만드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때마다 그는 가문의 상속자가 되느니보다는 차라리 하느님께 서원을 맹세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잊지 않고 몸을 단련하는 버릇은 전쟁이 준 상처였다.
전쟁은 결국 그를 교회로 인도했다. 오직 쇠와 불밖에 모르는 오만불손하면서도 폭력적이기까지 한 십자군들이 벌이는 전쟁이 아니라 정신과의 싸움이 그를 교회로 이끌었다. 무지와 사기 협잡은 물론이고 허영심으로 가득 찬 이교도들과의 물불을 가리지 않는 싸움은 결국 그로 하여금 그들을 함정에 빠뜨리고 밀고하면서까지 그들을 뿌리째 뽑아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변질되기에 이르렀다.
집무용 탁자로 다가간 특사는 책상 위에 놓여있는 플라비우스 조세프[1]의 서책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서책은 매 쪽마다 가장자리에 정성스레 주석이 달려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유대인은 그를 따르는 민중의 관례와 풍습에 관해서 끝없이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았다. 확실히 그는 소용에 닿는 인물이었다. 고대하던 랍비와의 논쟁이 시작된다면 이 유대인의 서책은 그에게 무기가 될 수도 있었다.
랍비를 포로로 잡아와 심문하면서 랍비 주변 인물들인 협력자들과 상당히 덕망 있는 자들을 비롯하여 신자들과 초심자들에 이르기까지 유심히 살펴보았으나 그들은 한결같이 목숨 걸고 전투를 치를만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견고한 정신의 소유자들이었고, 담금질한 강심장을 지닌 이들이었으며, 신과 교황의 이름 앞에서 모두를 내맡길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황금이 필요했다.
특사는 아마포로 짠 옷을 걸치고 굳은 표정을 한 뒤 대기실 쪽을 향하여 들어와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문이 열렸다. 고문관이 들어와서는 몸을 굽혀 절을 했다. 고문관이 인사를 하는 동안에도 특사는 주교석에 앉아서 위쪽 나무판이 앞으로 경사진 작은 책상 위에 놓여있는 서류들을 검토하고 있었다.
잉크가 묻어있는 날이 좁고 뾰족한 단검은 책상을 검고 얼룩지게 만들었다. 심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도미니크 수사는 모든 신문 조서들의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다. 특사가 그에게 요구한 것은 심문을 받고 있는 이들이 특사에게 아뢴 이야기들을 곧바로 전사하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말들을 옮겨 적다 보니 나중에 조서 가장자리 여백은 개미 발들을 연상시키는 깨알 같은 주석들이 가득 들어차게 되었다.
갑자기 도미니크 수사는 진술 내용을 적은 조서에 각 절마다 시작하는 첫머리글자를 모양을 내고 채색을 한 일이 영 무용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 앉으시오. 자문관!”
“주교님! 지혜로우신 주교님께서 사무국 관리들에게 열성적으로 독촉하신 바를 마침내 이행하고자 여기 대령하였나이다.”
그때까지도 명상에 넋을 잃고 있던 특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벌써 조서 전체를 읽은 탓에 그가 심문한 내용들에 대한 답변들을 완전히 꿰차고 있었다. 이제는 오로지 명백히 밝혀내야 할 중요한 사항 하나만이 남아있었다.
“당신은 약탈자들 가운데 한 명인 이 작자가 무엇 때문에 알 킬할을 공격했다고 보시오?”
도미니크 수사는 스스로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자 애썼다. 더불어 모든 것을 일반적인 화제로 삼는 것을 즐겼다. 주변인들이 그를 늑대(본문에서는 교황을 가리킴)의 아가리 속에 던져 넣은 뒤부터는 특사에 대해 거의 아양에 가까운 긍정적 어투로 일관하면서 거의 같은 수준으로 특사에 대한 어떤 알 수 없는 두려움마저 줄어들었다.
“주교님! 그들이 엄청난 것을 얻으려는 속셈으로 미끼를 던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알 킬할은 아주 부유한 도성으로서…….”
여우의 눈가가 돌연히 꿈틀거렸다. 특사는 모두가 우연히 벌어진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더군다나 우리는 그들이 훔친 황금을 찾아내지 못하였사옵니다.”
이 부분에서 도미니크 수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살아남은 자들은 부랴부랴 포로의 몸값을 챙겨 각자 도망치고 말았나이다. 이제 불경한 짓을 벌이려고 그 약탈한 돈들을 쓸 때가 되었사옵니다.”
“그러한 돈을 추잡한 곳에 헛되이 낭비하게 내버려 둘 때가 아닌 것 같소이다. 자문관!”
도미니크 수사의 시선이 바닥 쪽을 향하여 떨궈졌다. 그가 듣기를 거북해한 말들이 특사의 입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제발 그와 같은 말들이 튀어나오지 않기만을 그는 바라고 있었다.
“믿으셔야 만 하옵니다. 전하! 우리와 연관되어 있는 모두가 유의 깊게 지켜보고…….”
“롱슬랭을 거명한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이미 이 도시의 어딘가로 각자 흩어졌소. 그렇지만 당신들이 심어놓은 밀고자들은 그 어떤 이도 우리에게 적어도 그들이 저 아래쪽 구역들에서 황금으로 모종의 타협을 하리라고 예견한 이는 없소이다.”
도미니크 수사는 마치 그가 법정에 서서 자신의 죄를 변명하듯이 흥분한 상태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주교님! 우리가 예루살렘 곳곳에 우리를 비방하는 목소리를 들으려고 밀고자를 고용한 것은 오직 하느님을 모독하는 불경한 짓을 벌이는 이교도들을 처단하기 위한 것이며 악을 몰아내기 위한…….”
“하여튼 밀정들을 교체하고 능수능란하게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구변 좋은 인물들로 배치하도록 하시오.” 특사가 수사의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교회는 그들이 훔친 황금을 찾아내야만 할 이유가 있소이다.”
자문관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황금이라는 게, 폭력과 핏물로 얼룩진 약탈물이라서, 저주받은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믿음이 없는 이들을 잔인한 고통으로 태워 없애시고자 그들에게 벌을 내리실 것이 분명하옵나이다.”
여우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하느님이 그에게서 만큼은 냉담한 태도로 일관할 따름이었다. 만일 신이 벌을 내리기를 원한다 할지라도 그들에게는 아주 낮은 형벌이 내려질 것이었다. 특사 자신 또한 그렇게 할 도리밖에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자문관! 교회는 적들과 싸우기 위해서라도 황금이 필요하오. 황금이 아무리 악마의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오.”
[1] 서기 37년에 태어나 100년경에 사망한 유대인 태생의 로마인으로 역사 편찬사관으로 활동하면서 그리스어로 된 유다서(書)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