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99화
제2부 26-3
예루살렘
1232년 11월
말라비틀어진 나무가 있는 구역
도심을 에워싸고 있는 성벽과 나란히 이어진 길들은 더럽고 냄새나는 미로를 연상케 했다. 좀 산다는 이들은 특사가 초라하고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가게들과 쓰러질 듯이 위태로운 건물들을 아직까지 방치하고 있다는 것에 의아해했다.
특사는 이곳을 찾을 때마다 어김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역시 누구보다도 이 구역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금방이라도 어떻게 할 듯한 태도를 취하곤 했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었다. 특사는 사람이 살기 어려울 정도로 더럽고 어두컴컴한 길들이 그물처럼 얽혀있는 이곳이 성벽보다도 더 안전하게 도성을 지켜주고 있다고 거꾸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처럼 생각하는 이가 또 한 사람 있었다. 간수인 아르노는 이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들 안에 그물처럼 이어져 햇빛조차 들지 않는 골목에 자리한 주점에서 남몰래 술을 마셔도 어느 누구 한 사람 그를 쫓아낼 리가 만무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도 조심스레 이쪽저쪽을 힐끔거리면서 그가 들어선 길에 인기척이 있는지를 살폈다. 아무도 없다는 확신이 들자 간수는 안심하고 문을 밀고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실내로 들어섰다.
아르노가 애호하는 주막은 왁자지껄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또한 어디 적혀있지 않아도 생 초자가 아니면 붉은 혈색이 도는 황소 주점을 찾아오지 못할 사람은 적어도 없어 보였다. 또한 누가 예루살렘의 명인인 마스터고, 누가 기독교인이며, 누가 이슬람인지, 신기할 정도로 모두가 다 서로를 알아보았다. 더하여 이곳에서는 모두가 서로들 어울려 아르메니아 산 묵직한 포도주나 서양 삼목이 무성한 나라(레바논을 가리킴)에서 주조한 목젖이 타는 듯한 화주를 마실 수조차 있었다.
아르노는 주점에 들어서자마자 앞에 갖다 놓은 떨떠름한 붉은빛 술을 홀짝였다. 방금 벌어졌던 재수 없는 일들을 잊고자 안간힘을 쓰는 그에게 특별히 제공된 술이었다.
참으로 재수 없던 것이 이교도 여인과 여자에 딸린 절름발이 아이와 수감자들의 눈빛과 인상이 실의에 빠진 완전히 넋 나간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는 그들의 몸을 뒤진 끝에 두서너 개의 노예를 살 때 물물교환할 수 있을 정도로 값진 유리 장신구들을 빼앗았다. 여생을 생각한 끝에 그 같은 짓까지 저지른 것이다.
“……제발 동방의 기독교도들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선량하신 나리! 인간쓰레기 같은 것들, 인간 말종들, 짐승 똥만도 못한 아주 질 나쁜 족속들…….”
간수 아르노에게 재수 좋은 일도 생겼다. 한눈에 봐도 그처럼 술을 마셔 고주망태가 된 순례자 한 사람이 술을 같이 마시자고 그가 앉아있는 탁자로 와서 마주 앉았다. 순례자의 손에는 그리스 산 포도주가 들려있었다. 검고 달착지근한. 흠 없는 악덕.
“……나는 방금 전 시리아 인들을 마주했다네……. 그들을 개들의 먹이로 던지지는 않았네만 그들이 기름기로 배때기가 불렀다는 것은…….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 뭔가 하면, 불쌍한 사람들을 등쳐먹고 아귀아귀 사는 기생충들…….”
상대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은 주먹다짐을 했는지 심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왼쪽 눈은 거무스름한 눈동자가 아예 없었다. 목둘레로는 글자가 새겨진 거지발싸개 같은 것이 매달려 있었다. 간수는 순례자가 벙어리라는 걸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분노심을 표출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에, 또, 난 피부가 그을린 이슬람인들하고는 말을 섞지 않는다네. 감옥에 있는 이슬람인들을 말하는 것이네. 한 주 좀 못되었나? 며칠간을 그것들이 짐승 썩는 냄새보다도 더 고약한 냄새를 피우고 있다네. 내 확신하는 바는 그것들 몸 안에 악마가 들어있는데, 악마가 몸 밖으로 빠져나오려 꿈틀댄다 이거지…….”
순례자는 간수가 하는 말에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하지만 간수는 웃음을 참고 순례자의 말에 동의한다는 표시를 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탁자 위에 동전을 던졌다. 술 한 병 더 달라는 무언의 표시였다.
“아 자네 내 말을 이해했구먼.” 순례자가 술을 주문하자 아르노는 감동하기까지 했다. “자네는 내 썩을 여편네 같지는 않구먼. 다리가 썩어 들어간 악마의 자식도 아니고…….”
주석으로 만든 술잔에 포도주가 가득 흘러넘쳤다. 간수는 단숨에 술잔을 깨끗이 비웠다. 혓바닥으로 술이 묻어있는 입술을 핥는 간수의 두 눈이 증오심으로 번들거렸다. 간수가 웅얼거렸다.
“……죄수들 가운데 한 놈이…….”
순례자는 간수의 말을 들으려고 몸을 기울였다. 아르노가 술병을 잡고는
“그 작자 말이야, 아주 지독한 놈이야……. 유대인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