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무도회

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100화

by 오래된 타자기


제2부 26-4



예루살렘

1232년 11월



특사 궁전



롱슬랭은 더 이상 말을 잃었다. 입안의 침마저 말라비틀어졌다. 이런 고문은 난생처음이었다. 세상이 온통 붉은빛으로 바뀌었다. 목둘레선 피가 줄줄 흐르고 벌겋게 충혈된 두 눈에서는 불꽃이 튀겼다.


롱슬랭에게 새로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거꾸로 보였다. 의자들도, 채찍을 들고 서있는 사내들도 모두가 다 뒤집혀 보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도구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탁자도 마찬가지로 거꾸로 보였다. 온통 피범벅이 된 몸뚱어리가 마룻바닥에 쓸리면서 뿌연 재 가루를 뒤집어썼다.



붉은빛 세상
거꾸로 된 세상
악마의 세상



취조를 하는 자들은 점점 더 견디기 어려운 혹독한 고통을 맛보라는 듯이 롱슬랭을 거꾸로 매달아 놨다. 매달린 채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욕들을 닥치는 대로 주어 삼켰다. 하지만 취조자들은 그걸로도 충분치 않았는지 그를 고문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진짜 고문이 이제부터 시작될 찰나였다.


교황 특사는 성당으로 이어진 계단을 내려가면서 호탕하게 웃어 젖혔다. 특사는 오로지 혼자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생각해 냈다. 특사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돌벽에 부딪혀 튕겨져 나오듯 반향 해갔다. 저 아래쪽에서 한 사내가 고통에 찬 신음 소리를 내질렀다. 둥근 천장 아래 메아리치던 웃음소리는 틀림없이 누군가에게 무자비하게 체형을 가하고 있음을 증거 해주는 듯했다.


특사는 홀로 죽음의 무도회를 즐기고 있었다. 젊었을 때 그 역시 신비에 매달렸다. 그가 즐겼던 신비란 비극적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라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얽힌 일화 같은 것들이었다. 사람들은 그러한 표현들에 열광했다. 아이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매달리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사내들은 유다를 저주하고 비난을 쏟아냈다. 여자들은 본시오 빌라도 총독이 구세주에게 사형을 구형하는 장면에 이르면 얼굴을 가린 채 탄식마저 쏟아냈다.


젊은 시절 교황의 특사 역시 이러한 장면들에 심정적으로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본당신부가 설교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심오한 삶을 전하는 바를 좀 더 확실하고도 분명하게 판단하고자 애썼다. 무지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자신의 처지와 동일시했고 모두가 한결같이 매번 똑같은 감동과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 같은 사고가 그의 뇌리에 박혀있었다. 기억 속에 희미한 불씨로 남아있는 그 같은 사고는 언제든 불꽃으로 활활 타오를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불꽃이 되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만일 이를 지켜보는 관중이 있다면, 청중들이 더욱 뭉클한 감동을 맛보기 위해서는 장면들이 더욱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어야 하지 않을까? 특사는 생각했다. 느닷없이 의문이 꼬리를 물면서 병행하여 그에 대한 실천적 방법도 함께 떠올랐다. 체형을 가하는 고문실이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곧 스스로 벌일 일이 점점 흥미로워질 것 같다는 느낌도 함께 커져만 갔다.


성당을 가로질러 가면서 특사는 자신의 명령에 따라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음에 지극히 만족스러웠다. 완벽한 조화. 특히나 색깔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고문하는 이와 고문하는 이를 현명하게 조력하고 있는 이들이 어슴푸레한 횃불에 새빨간 빛으로 얼룩졌다. 어두컴컴한 벽들은 거의 검은색에 가까웠다. 정 중앙에는 창백한 흰 살결이 꿈틀거렸다.


특사는 눈을 치켜뜨고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롱슬랭의 몸을 쳐다보았다. 롱슬랭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퉁퉁 부어오른 얼굴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상아로 만든 손잡이와 금속의 날카롭고도 뾰족한 날 끝이 바닥에서 타오르는 희미한 불빛 아래 번쩍거렸다.


특사는 고문하는 이로부터 못을 빼앗아 들고는 롱슬랭의 왼쪽 검지 손톱과 손등 살 사이 마디에 수직으로 못을 내리쳤다.


“그래도 아무 말 아니하겠느냐?”


프로방스 사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든 걸 다 이야기했소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걸 증명해 주실 것이오.”


특사는 나무망치를 들고는 못을 힘껏 내리쳤다.


울부짖는 소리가 진동했다.


여우는 새로이 못을 하나 집어 들었다. 횃불 빛으로 가느다란 못이 번쩍거렸다. 그가 웅얼거리듯


“지금 내가 들고 있는 못이 네 활짝 편 오른 손바닥에 박힐 것이다. 그러면 너는 주님께 좀 더 가까이 다가가겠지.”


공포의 번뜩임이 롱슬랭의 동공을 스쳤다. 특사는 롱슬랭의 이마에다가 얼음처럼 차가운 못을 갖다 댔다. 그러고는 롱슬랭의 이마 위에 못을 이리저리 굴려댔다. 그러더니 못을 다시 손아귀에 꽉 쥐었다.


“내일 다시 너를 보러 오마. 기다리고 있거라. 내가 부리는 이들이 너를 다시 우물 속에 처넣을 것이니라.”


롱슬랭은 여우인 특사가 하는 말조차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경에 빠져들었다. 오직 고통만이 그의 의식을 갈가리 찢어발겨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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