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103화
제2부 28-1
예루살렘
1232년 11월
수도회 건물
주술사 드뱅이 몸을 기울여 창밖을 내다보았다. 무덤구덩이를 파던 사내가 일을 마치고 지나가는 중이었다. 올리브나무 둥치 아래로 솟아오른 봉분이 보였다. 늘어놓은 해골들이 햇빛을 받아 번쩍거렸다. 해골 조각들 가운데 위아래 턱뼈가 선명히 드러난 시신 한 구가 눈에 띄자 드뱅이 눈살을 찌푸렸다.
“십여 년 전부터 죽은 자들을 여기다 매장하고 있소.” 고문서학자가 토를 달았다. “여기 이 부지들 또한 시신들로 가득 찼소.”
아래쪽에서는 아직도 시신을 묻을 구덩이를 파고 있는 이들이 구덩이를 파자마자 구덩이 안으로 시신을 데굴데굴 굴려 던져 넣고 있었다. 무덤에 던져진 시체는 두 다리마저 보이질 않았다. 구덩이 안으로 밀어 넣기 전에 둘둘 말아 집어던진 탓이었다. 고문서학자가 탄식을 쏟아내며,
“세상의 영광은 이렇게 지나가나이다.” [1]
“우리의 이름으로가 아니옵고, 주님! 우리의 이름으로가 아니옵고…….”[2] 드뱅이 오른손 손바닥으로 왼쪽 팔을 두드리며 덧붙였다. 무덤 구덩이를 판 작자가 시신을 흙으로 덮으려고 첫 삽을 뜨는 순간 드뱅이 외면하듯 창가를 벗어났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소?”
고문서학자가 이마를 찡그렸다.
“오늘 밤 매복을 할 예정이오. 단장님이 우리더러 여기 대기하고 있으라 이르셨소.”
서가를 등지고 앉아 페리고르는 지도를 손가락으로 짚어갔다.
“잘 들어라! 본래의 위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수도회가 옛 솔로몬 신전이 있던 지하 발굴을 시작한 지도 어언 한 세기 가까이나 되었다. 처음으로 지하 입구를 찾아낸 이가 바로 우리들의 석공 형제들 가운데 한 명인 애몽이니라. 그가 건물을 짓는 데 사용한 돌을 캐낸 채석장을 찾아냈느니라. 하지만 유대인들이 이미 천 년 전에 찾아낸 곳이기도 하니라.”
고문서학자는 고개를 들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일련의 길들을 묘사한 양피지를 펼쳤다. 얇은 양피지에는 어지러울 정도로 여러 길들이 묘사되어 있었다.
“자 애몽이 처음 찾아낸 장소가 여기다. 지하로 2리외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발견한 곳이다.”
“무슨 연유로 몇몇 특별한 부분엔 아무 표시가 되어있지 않나이까?” 드뱅이 의아한 눈초리로 단장에게 물었다.
“그곳은 위에서 무너져 내린 흙덩이에 묻힌 유적들이라네. 형제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이 잔해들을 걷어내는 일이었다네. 이어 그들은 무너져 내려앉은 길들을 견고하게 구축하였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였네만…….”
“……그렇기는 하지만 이 일을 비밀로 붙여야 하는 것이” 아르망 드 페리고르가 덧붙였다. “수도회가 설립된 지가 얼마 안 되었고 교회가 이를 의심하기 때문이라네. 교회가 도처에서 이교도들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교회는 전혀 변하지 않았나이다.” 드뱅이 중얼거리듯 화답했다.
“애몽이 지상의 부분을 전혀 손대지 않고도 지하의 흙을 파내고 벽토와 같은 잔해들을 치울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은 사실이네. 그는 둥근 지붕을 더 견고히 구축해 가면서 지하에 두 개의 벽을 나란히 세웠지. 그리고 그렇게 하는 동안에 잔해들을 치워나갔네. 절묘하면서도 기막힌 방법이었다네.”
“자! 이 지도가 가리키고 있는 곳은 붕괴 사태가 일어나 사라진 것을 표시한 것이옵고.” 양피지 둘째 장을 펼치면서 고문서학자가 자신의 의사를 표명했다.
드뱅은 양피지 가두리를 손으로 누르면서 설계도를 유의 깊게 살펴보았다. 그러나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고문서학자가 설명을 늘어놓았다. “애몽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채석장에서 파낸 돌들 무더기가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솔로몬의 신전의 건축물과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점이옵니다.”
“여기 모퉁이에 파랗게 동그라미를 친 곳은 무엇을 가리키는 거요?” 드뱅이 물었다.
벽난로에 팔꿈치를 하고 드뱅을 쳐다보던 고문서학자가 미소를 띠고는 대답했다.
“벽들을 쌓아 올리면서 두 벽 사이에 벽토 부스러기 잔해들을 채워 넣기 위해서는 석회 반죽이 필요했나이다. 그러기 위해서 물이 필요했는데……. 애몽이 그런 이유로 우물을 판 것이옵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그곳에서 벌어졌다네.” 페리고르가 말을 이어받았다.
“어떻게 그와 같은 일이?”
고문서학자는 대답에 앞서 성호부터 그었다.
“애몽은 전혀 생각지 못한 통로를 새로이 찾아냈사옵니다.”
[1] 원문은 “Sic transit gloria mundi”이다. 이 말은 교황이 타고 다니던 자주색 가마인 세디아 게스타토리아와 관련이 깊다. 교황이 새로이 선출되어 가마를 타면 주례 사제가 그 앞에서 삼 조각을 3번 태우며 라틴어로 ‘교황 성하! 세상의 영광은 이렇듯 지나갑니다.’라고 말한다. 이 의식은 교황이라는 높고 화려한 지위에 오르더라도 인생의 덧없음과 결국 인간은 모두 죽으면 한 줌의 재로 돌아갈 것을 상기시키며 겸손을 갖추도록 촉구하는 뜻을 지니고 있다. 바티칸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때부터 자주색 가마 대신 방탄차를 운영하고 있다.
[2] 원문은 Non nobis domine, non nobis. 템플 기사단 좌우명인 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