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

소설 『검은 템플 기사단』 108화

by 오래된 타자기


제2부 29-2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

지금 현재


“죄송합니다만 뭐라 하셨죠?”


“디지피엔 사무국에서 반장님을 기다리십니다. 지금 전화해 주시겠습니까? 긴급한 상황입니다.”


“예. 당장 전화하도록 하겠습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일 무슨 일 있으시면 제게 전화 주십시오. 지체 마시고요.”


“별말씀을요.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큰 도움이 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아닙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앙투안은 전화를 끊고 다시 보보 광장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전화는 바로 디지피엔 비서실로 연결되었다. 그러는 사이 피에르는 방으로 들어가고 없었다. 디지피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마르카스 씨! 통화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함께 일하는 우리의 친구 건강은 좀 나아졌나요? 붕대는 풀었습니까? 뭐 새로운 소식이라도?”


“다리 골절상에 관절 탈구입니다. 3주 동안 집에서 움직이지 말고 요양해야 하며 3달간 재활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3은 프리메이슨 숫자인데, 아닌가요?”


“예 맞습니다.” 전화를 받고 있는 상대방이 프리메이슨 단원이 아니라는 걸 아는 마르카스는 조심스레 맞장구쳤다.


잠시 통화가 중단되었다. 마르카스는 자신의 상관이 먼저 불을 지피기를 기다렸다. 이제 오로지 홀로 편히 통화할 수 있는 시간은 5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로맨틱한 식탁에 홀로 앉아있었다. 홀로 있는 자유로움. 그리고 그는 가브리엘과 함께 있어야만 한다. 그녀에게 그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디지피엔이 전화를 받았다.


“뤼쉐 국장과 논의했는데, 반장은 내일 아침 7시 12분 첫 유로스타를 타고 런던으로 출발하세요. 파리 북 역에 파견 나가 있는 동료들이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행선지는 칼라일입니다. 범인들의 행적이 마지막으로 끊긴 곳이에요. 다행히 영국 경찰이 우리에게 다른 정보를 주기로 되어있어요. 비행기를 전세 낸 회사에 관한 정보 말이오.”


앙투안은 전화를 받으면서 식탁 위를 장식하고 있는 장미 꽃잎을 한 잎 한 잎 포크로 찍어 한 곳에 쌓아갔다.


“그럴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폭력진압부대[1] 요원들을 보내시는 게 좋을 듯한데요. 이 분야에선 저보다도 그들이 훨씬 노련하게 일을 처리할 것 같습니다.”


“아니오. 전통적인 수사 방식으론 불가능하오. 더군다나 범인 중 한 명은 이리라고 당신도 잘 알고 있잖소? 범죄조직의 일원 가운데 한 명인 여자. 돈이 생길만한 곳이면 물불을 안 가리고 덤벼드는 테러리스트 출신 여자 말이오. 난 반장께 조언하고 싶은 것이 이곳에서 발품만 팔지 말고 멀리 내다보고 그곳에 가서 활약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오. 좀 더 멀리로. 내가 바라는 건 그처럼 당신이 저 빛의 도시에서 맹활약하는 것이오. 누구보다도 가톨릭 신자들이 진심으로 애호하는 프리메이슨의 잃어버린 땅에서는 지금 그 지역 인사들이 그들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들을 벌일 참이오. 그런 와중에 프리메이슨 단원인 당신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되겠소? 그들이 아연실색할 것 같지 않소? 난 그 도시에 소속된 경관 두서너 명을 알고 있소. 생애에 고속 열차(테제베)라는 걸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음은 물론 본 적조차 없는 사람들 말이오.”


앙투안은 한 손으로 전화기를 붙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신경질적으로 식탁보 위에 눌어붙은 촛농을 떼어내었다. 이제 그는 그런 직설적인 어투로 마치 자신을 위협하듯이 도전적으로 말하는 것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아들과 가브리엘을 데리고 프랑스 어느 구석으로 달아날 수마저 없다는 사실 또한 숨이 막혀왔다. 항상 긴장한 채로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이 더더욱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우물쭈물,


“아침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주겠다 하시고 저녁에는 유형지로 보내시는 겁니까? 청장님은 알면 알수록 참 기막힌 분이십니다. 제가 아는 357 우애를 다지기 위한 모임[2]에 나오는 몇몇 형제들이 청장님께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소문을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더불어 경찰 상당수가 가입한 노조들 역시. 그들은 디지피엔이 거듭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다면 기뻐 어쩔 줄 몰라하겠죠.”


“체면 차리실 것 없습니다. 마르카스 씨! 대통령 선거가 아직까지도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가게에 메르카토[3] 신상품이 진열될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인사이동에 의해 자리를 옮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확신컨대 3명 정도가 자리 변동이 있을 겁니다. 게다가 내가 갖고 있는 정보는 정확합니다. 357 단체 모임에 당신이 속한……. 라이벌 순종 단체 회원들도 자주 눈에 띄고 있습니다. 당신은 둘 가운데 어느 쪽을 더 선호합니까? 캉탈입니까? 아니면 크뢰즈입니까? [4] 두 곳 다 공기 좋고 범죄도 일어나지 않는 곳인데…….”


마르카스는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아침저녁으로 두 번이나 그에게 굴복당한 셈이었다. 이제 더 이상 타협은 불가능해 보였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영국에서 그들을 찾아내지요?”


“시간 절약하기 위해 간단히 이야기하면, 대사관 직원이 런던 유로스타 기차역에서 기다릴 것이오. 이때부터 새로 수집한 정보들은 신속하게 보고해야만 하오. 우리의 친구 뤼쉐 국장 역시 발 드 그라스 병원에서 퇴원하는 즉시 영국의 수사기관들과 긴밀히 공조할 예정이오. 이상이오. 다른 질문은 없소?”


앙투안은 피에르가 있는 방으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약간은 조롱 섞인 미소를 띤 채,


“알겠습니다. 마이애미에서 비행기 출발 직전에 청장님께서 제게 마지막으로 전화하신 것이 결국 이 일을 맡아하라는 뜻이었군요.”


“그런데 뭐 부탁할 사항이라도?”


“이번 경우에는 유로스타를 타게 되는군요. 청장님께서 제 모든 여행 일정을 다 짜놓으신 거군요. 제 크리스마스 휴가를 위해서도 예약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번에는 세 장의 티켓이 필요한데, 제 것하고 제 아들 녀석 것하고 그리고 또 한 장…….”


통화가 끊어졌는지 앙투안의 목소리만이 핸드폰에서 울리고 있었다. 디지피엔이 자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통화 중지 버튼을 누른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앙투안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아이가 있는 방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아들 녀석은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었다. 흘러나오는 곡이 파르지팔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아들 녀석은 바그너의 음악을 듣고 있었다. 앙투안은 물건들로 가득 차 있는 방을 가로질러 아이 옆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영화는?”


“아빠! 힘들어 죽겠어. 내일 다시 올게.”


“안돼! 아빠는 내일 아침 일찍 나갈 거야. 아주 긴급한 일이 있어서.”


튜튼 독일 금관악기가 내뿜는 곡조에 피에르의 목소리가 묻히고 말았다.


“그래. 늘 그런 식이야. 뭐가 그리 급한 일이 있다고. 하나도 바뀐 게 없어.” 아이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아빠 새 여자친구에게는 실수하지 마. 아빠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네가 뭘 안다고? 나갈 때 문 확실히 닫고 나갈 수 있겠어?”


“응! 내가 닫을게. 내일은 나 혼자 있는 것이 좀 무서울 것 같아. 다음 주 주말에 다시 봐. 안녕?”


마르카스는 목구멍에 무언가가 걸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가브리엘이었고 이제는 아들 녀석이었다. 프리메이슨 단의 인디아나 존스가 세차게 따귀를 두 차례나 맞은 꼬락서니와 진배없었다. 피곤하고 지친 목소리로 그가 아이 등 뒤에 대고 말했다.


“좋은 밤 보내 거라. 정말……. 미안하다!”


앙투안은 비실비실한 걸음걸이로 침실로 향했다. 그러고는 거리 쪽을 내려다봤다. 여학생들이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 「스릴러」를 있는 힘을 다해 목청껏 부르기 시작했다. 엘라미아 가죽으로 만든 비첼 여행용 가방을 꺼내든 앙투안은 가방 속에 두 장의 셔츠와 함께 세면용 도구가 들어있는 작은 가방 그리고 한 꾸러미의 팬티와 양말을 챙겨 넣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가브리엘에게 전화하는 일만 남았다. 그녀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자 바로 메시지로 넘어갔다. 그는 달콤한 목소리를 흉내 내어 메시지를 남겼다.


“내일 런던으로 떠나야 해. 뭐 어떻게 할 도리가 없네. 우리가 키웨스트에 있을 때 기획된 일 같아. 보고 싶어. 제길 헐! 전화 줬으면 해!”


그는 구슬프고 비참한 심정으로 침대 위에 벌렁 누웠다. 그러고는 자신도 모르게 꿈조차 꾸지 않는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1] Brigade de répression du banditisme를 가리킴. 경찰청 산하 조직으로 특수 강도 절도 범죄를 다루는 경찰 조직.


[2] 포슈 가(Avenue Foch)의 사격장에 사격훈련을 위해 모인 경찰들이 우애를 다지기 위해 결성한 단체 모임.


[3] 메르카토(mercato)란 이탈리아 어로 ‘시장’이란 뜻으로 여기서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됨.


[4] 캉탈(Cantal)은 오리악(Aurillac) 지방에 속한 도(道, 데파트망)에 해당하며, 크뢰즈(Creuse)는 마시프 상트랄(Massif central) 지방에 속한 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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