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나에게 있어 가장 설레던 시작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망설임 없이 언제였다고 말할 수 있는 기억이 있다. 바로 Y를 만나게 된 순간이었다. 때는 대학시절 상담학 전공수업에서였다. 교수님의 강의가 시작되기에 앞서 주차별 과제와 진행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교수님의 조교가 단상에 올라왔다. 그 조교는 말끔한 세미정장 차림에 오차 없는 설명을 했고 뭐랄까 따스할 것 같으면서 지적인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Y였다.
'와. 저런 사람이 우리 학교 학생이었나? 진짜 예쁘다.'
나는 늘 회색 추리닝 바지를 입고 강의실 맨 뒤에 앉아 학업보다는 생각하는 일에 더 열심이었다. Y는 조교를 하면서 학부부대표를 맡고 있었다. 나는 Y에게 닿을 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업에 열심히 참여해서 조교에게 과제에 대한 문의를 했던 것도 아니고, 조교가 채점하는 주차별 Test에 좋은 점수를 받았던 것도 아니고, 학부 활동에도 소극적이었으니까. 그래도 그 강의가 좋았던 것은 과제 중 하나가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글을 쓰는 것이었는데, 쓰면서 그때의 나하고 대화를 하는 느낌이 참 좋았었다. 그 글이, 그냥 진솔하게 썼던 내 이야기가 Y에게 닿을 줄은 몰랐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 과제를 읽고나서부터 Y는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고 했다.
Y는 교수님들이 이뻐하는 학생이었고, 물론 공부도 잘했으며, 친절하기도 해서 늘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어느 날은 내 친한 친구도 "야! 나 곧 고백할 거다. Y한테."라고 나에게 말할 정도였으니까. 나도 Y가 좋았다. 어떤 사람인지가 궁금했고, Y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회색운동복에 강의실 맨 뒤에 앉아 중-고등학교 때 끝내놓았어야 했을 법한 질문들에 답을 찾고 있었다. Y는 나 같은 사람이 있는지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상담심리학부 Y입니다. 물어볼 게 있어서 문자 드려요.'
동아리 장이었던 나는 곧 있을 동아리 행사 포스터를 건물 곳곳에 붙여놓았고, 포스터 내에 기타 문의사항이 있을 시 내 번호로 연락하도록 써놓았다. 와! 그냥 행사 관련 문의 문자인데, 그 문자를 받고서 몇 시간 아무 일도 못했다. 뭐라고 답장을 보내야 할지, 약간의 내 마음을 담아도 될지, 그냥 형식적으로 보내야 하는 건지 괜히 쓸데없는 고민들을 하다가 그냥 문의사항에 대한 답만 적어서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는 며칠 동안 그 문자를 수십 번 읽었다. 그러다 한번 더 문자를 보냈다.
'언제 한번 학교 산책이나 할래요?'
그렇게 Y하고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