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풍경들
유치원 남자행정교사가 바라보는 3월의 유치원 풍경들을 써보려고 한다. 2023년이 시작된 지도 벌써 두 달이나 지나고 있어 새해를 맞이하는 설렘이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다. 유치원에서는 새로운 한 해를 3월부터 시작하니 아직은 그 설렘을 느낄 수가 있다. 작년만 해도 막둥이였던 5세 반 아이들은 제법 형님티가 나는 6세 반으로 진급을 하고, 6세 반이었던 아이들은 유치원 내 최고참인 7세 반으로 올라간다. 유치원에서 한 해, 두 해를 보낸 아이들이지만 3월이 낯선 것은 신입생과 다를 바 없다. 1년 동안 자기를 보살펴줄 새 담임선생님을 만나 적응을 해야 하고, 교실 안에서의 약속들을 배우고 익혀야 하니 아이들의 낯선 마음도 한편 이해가 된다. 유치원에서 남자 행정교사로 일하면서 누리는 특권들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는 아이들에게 낯설기만 할 3월을 최대한 따뜻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선생님들의 씀씀이를 지켜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눈을 맞추려 무릎을 가지런히 꿇고서 자기가 가진 가장 환한 미소로 아이들을 맞이하는 모습들을 보면 나도 마음이 환해진다. 신발장에서부터, 복도를 지나, 교실로 향할 때까지의 동선에서도 아이들이 따뜻한 환영을 받고 있다고 느껴지도록 선생님들은 곳곳에 따스한 말들, 그림들을 붙여놓는다. 그중의 제일은 아이가 자그마한 행동 하나를 성공했을 때 보내주는 선생님들의 찬란한 격려와 칭찬이다. 성취감을 선물로 받은 그 아이는 아마 그 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다른 행동도 해내기 위해 시도해 볼 것이다.
유치원에 처음 입학하는 신입생 아이들에게는 특별히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약속된 행동들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를테면 현관에 들어서며 정해진 자리에서 신발을 벗고 가지런히 정리를 하는 일, 바닥에 그어진 줄을 따라 앞서 있는 친구와 나란히 걷는 일, 교실까지 가는 동선을 익히는 일, 교실로 가서는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서 자크를 채우고 옷걸이에 정리하는 일 등이다. 이때 아이들이 가장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이 있는데 멀찍이서 연신 손을 흔드는 엄마, 아빠를 뒤로하고 유치원 현관으로 들어가는 그때이다. 남자행정교사인 내가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한 번은 다른 아이들 모두 들어가고 나서도 울고 불며 바닥에 드러누운 아이가 있었는데, 잠시 지켜보다가 번쩍 안고서는 유치원 옆 공원을 조금 걸었다.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는 조금 기다려주어야 한다. 울음이 점차 잦아들면 공룡이야기부터 꺼내본다.
"진우는 좋아하는 공룡이 있어요~?"
다행히 그날은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관심사가 공룡이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힘센 공룡들을 울먹이며 말하는 아이를 안고 공룡처럼 마음의 힘이 자라길 바라면서 그 주변을 조금 걷다가 들어간 적이 있다. 또 한 번은 5세 쌍둥이 남자아이였는데, 한 아이가 등원시키고 떠나려는 아빠에게 매달려서 떨어지지 못했었다. 그때는 아빠에게도 용기가 필요한데 마음을 굳게 먹고 아이를 선생님에게 맡긴 후에 발걸음을 돌릴 수 있는 용기다. 아이가 안쓰러워서 받아주다가 보면, 등원할 때마다 어려움이 생겨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저 안아주는 것보다 단단한 마음으로 아이를 위해 돌아설 줄도 알아야 한다. 나중에 아이는 힘든 순간 아빠가 돌아섰다는 기억보다 낯선 순간이었지만 그래도 아빠 없이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을 기억할 테니 말이다. 그 아이도 내가 맡았다. 아이를 번쩍 안고서 그 주변을 걸었다. 한 손에 사과한 쪽, 다른 손에 폴리 자동차를 움켜쥔 걸 보니, 집에서부터 울먹이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엄마가 사과하고 자동차를 쥐어주며 어렵사리 유치원에 온 것 같았다. 폴리자동차가 아이에게 힘을 주기를 바라면서 3월의 아침햇살 아래 아이와 몇 걸음 더 걸었다. 그 아이는 결국 2층 사랑반까지 가는 데에 성공했다. 마음의 키가 2층 사랑반에 걸어갈 수 있는 만큼 자란 것 같았다.
낯선 3월을 보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다 보면 아이들마다의 다른 모습들을 볼 수가 있다. 의젓하게 적응을 잘하는 아이, 부끄러워하지 않고 웃으면서 선생님하고 인사를 하는 아이, 엄마 아빠하고 떨어지는 게 어렵지 않은 아이가 있는가 하면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 교실공간이 어색하고 쑥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아이, 신발장에서부터 교실까지 가는 게 어려워서 기다려주어야 하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의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건 뭘까? 타고난 기질일까, 엄마 아빠하고 지내는 가정환경일까, 다른 기관을 먼저 선행학습처럼 다닌 경험일까, 아이들 저마다 이유들이 있을 테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우는 아이도, 쑥스러운 아이도, 용기가 부족한 아이도 마음밭의 키가 자라도록 격려의 물을 주고, 싹이 자라날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주면 신발장에서 신발을 벗고 용감하게 사랑반까지 갈 만큼 마음이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적응을 잘하는 아이, 다소 못하는 아이로 아이들을 구분 짓는 것보다, 낯선 상황에서 아이들 저마다 그 상황을 견디는 방법이 다르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부끄럼 없이 잘 웃는 아이는 자기가 가진 미소라는 무기로 낯선 상황을 헤쳐나가는 것이고, 쑥스러워 아직은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도 자기가 가진 쑥스러움이란 무기로 그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내가 맞이했던 어린 날의 3월은 어땠을까. 새로운 교실,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선생님, 그리고 서늘하고 따스했던 3월의 햇살이 기억나는 걸 보면 분명 나에게도 내 마음의 키가 자라나도록 기다려준 선생님이 있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