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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믿음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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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v Jun 19. 2023

한나스 베이베

아름다운 부부

옛날에 엘가나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는데,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 또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였다. 엘가나는 매년 제사를 드리고 난 다음에 나오는 제물들을 두 아내에게 나누어주었는데, 한나를 더 사랑했던 건지 그녀에게는 브닌나보다 두 배나 많은 양을 주었다. 남편이 자기보다 한나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아 질투가 났던 걸까, 브닌나는 자식이 없던 한나의 마음을 심히 괴롭게 했다. 한나가 자신의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은 마음이 크면 클수록 자기를 괴롭히는 브닌나의 말들이 얼마나 큰 상처로 다가왔을까. 그런데 자기를 괴롭히는 브닌나에 대한 한나의 반응이 참으로 놀랍다. 한나는 침묵했다. 한나는 자기가 브닌나보다 두 배나 많은 양의 제물을 받았다고, 자식은 없지만 그보다 남편의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고 브닌나에게 자랑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제물이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또 남편에게 달려가 자기가 받은 말의 상처들을 전달하지도 않았다. 그로 인해 남편의 마음이 아프게 되는 건 원하지 않았으니까.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한나는 매년 자기가 늘 걷던 길, 자기가 늘 가던 자리로 가서 기도하는 여인이었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한나는 긴 호흡으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기도했을까. 자기도 10달 동안 뱃속 아이와 교감하면서 아이에게 세상을 구경시켜 주고, 세상의 수많은 소리들을 들려주고 싶다고, 세상을 수놓는 아름다운 색깔들도 말해주고 싶다고 기도했겠지. 어느 날에는 자기에게 만일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에게 기도하러 걷던 길가에 피어있던 꽃들의 이름을 말해주고 싶다고 기도했을 것이고, 또 어떤 날에는 며칠 전에 들었던 동네에 재미난 일들을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기도했을 것이다. 또 어떤 날에는 아이가 입을 옷을 지어주고 싶다고 기도했을 것이고, 또 어느 날에는 아이와 함께 가고 싶은 여행지들을 하나씩 하나씩 떠올리며 기도했을 것이다. 한나가 아이에게 해주고픈 일들이 하나씩 늘어날수록 그녀의 기도는 그렇게 길어졌을 것이다.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한나는 속으로 기도했다. 마음이 고통스러운 날에도, 누군가의 비난으로 인해 마음이 찢어지게 아픈 날에도 그녀는 속으로만 기도했다. 왜 속으로 기도했을까? 속으로 삼키고 삼키며 기도하던 한나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한나는 자기의 기도소리가 누군가에게 들리지 않기를 바랐나 보다. 침묵의 힘을 알았던 한나는 세상에 파다한 선명한 소리들에 자기의 기도소리를 끼워놓고 싶지 않았었나 보다. 선명한 그 소리들은 때론 누군가와 누군가를 갈라놓기도 하기 때문에. 


제사장이었던 엘리는 속으로만 기도하는 한나를 보고 그녀가 술에 취해 주정 부리는 줄로 알았고, 그런 그녀를 나무라고 말았다. 한나는 엘리에게 자기를 마음이 슬픈 여자로 표현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라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는 것이라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런 한나에게 엘리는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라며 축복해 주었다.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엘리의 축복 이후에 한나의 마음과 얼굴빛은 완전히 달라졌다. 한나는 통 입에 대지 않았던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고, 근심이 가득했던 얼굴빛도 슬픈 기색이 하나 없는 얼굴로 변했다. 한나에게 아이가 생겨서 변화가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한나에게 언젠가 자기에게 아이를 허락하실 거라는 믿음이 생겨난 것일까. 한나에게는 엘리 제사장의 축복의 말들 속에서도 그분의 음성과 그분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던 실력이 있었던 게 아닐까.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 이른 시간에, 세상의 모든 소리들이 잠잠해지고 세상을 움직이던 것들이 멈추어 있는 그 시간에 두 사람은 함께 나란히 서서 기도를 드리고 여호와를 경배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언젠가 이루실 그 약속을 기대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까. 그런 그녀에게 드디어 아이가 생겼다. 한나가 그토록 기다리던 아이, 10달 동안 품고 어디에든 함께 다닐 수 있는 아이가 생겼다. 그리고 그녀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드렸던 자기의 기도를 떠올렸고, 마음의 결심을 내렸다.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뵙게 하고 거기에 영원히 있게 하리이다 하니"


한나는 자기의 결심을 남편 엘가나에게 용기 내 말했다. 그건 아이가 젖을 떼면 영원히 그곳에 있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청천벽력과 같은 그녀의 고백에 엘가나는 그녀의 선택을 담담히 존중해 주었다. 엘가나는 그토록 기다리던 아이를 영원히 그곳에 있게 하겠다는 아내의 고백 뒤에, 그녀가 그동안 드려왔던 기도를 보았고, 그녀가 매년 기도하며 보내온 숱한 시간들을 보았다. 아내를 향한 엘가나의 깊은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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