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은 또다시 깊은 어둠으로 침전되고 말았다. 채울 수 없는 욕망의 덩어리에 자신을 내맡긴 여인은 아무도 볼 수 없는 어두컴컴한 욕망의 끝에 서있다. 여인은 감출 수 없는 밝은 빛 앞에 서게 됐다. 성전 한구운데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죄인으로 서게 된 여인은 이제야 자신이 끌고 온 죄의 굴레를 끊을 수 있다는 마음에 오히려 담담했을까. 자신을 바라보는 경멸의 시선들과 돌로 쳐서 죽여야 한다는 말들 그리고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여인을 둘러싸고 있었다.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숱한 선인과 한 명의 악인으로 나뉜 그 성전에서 예수가 걸음을 옮겼고, 곧 여인 곁에 섰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여인과 나누어 짊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여인 곁에 서자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고, 무거운 침묵만이 그곳에 가득했다. 예수는 손가락으로 조용히 바닥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한껏 올라와 있는 사람들의 흥분을 잠시 가라앉히기 위함이었을까? 더러운 죄를 지은 자신 곁에 누군가가 함께 서있다는 것만으로 여인은 자신을 가둔 욕망의 그늘이 서서히 걷히는 느낌이 들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날카로운 돌을 들고 언제라도 율법의 조항을 성실히 수행하려던 사람들은 예수가 던진 이 말 앞에 선뜻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여인에게 먼저 돌을 던질 죄 없는 누군가가 그들 중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이 말은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을 깊이 찔렀다. 날카로운 돌, 누군가를 쳐 죽일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돌을 쥔 사람들 손에도 피가 나게 할 수 있는 율법의 돌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율법은 누군가를 정죄할 수 있지만, 누구도 살릴 수는 없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예수에게는 붙잡힌 여인도 붙잡아둔 사람들도 모두 생명이 필요한 이들이었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죄 있는 자들이 모두 떠난 성전 한가운데에 여인과 예수 둘만 서있었다. 여인은 자신이 저지른 더러운 죄가 해결된 것인지, 율법의 조항에서 자유로워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제 다시는 자기를 괴롭혀온 어둠의 굴레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여인은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그의 말이 율법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한 번만 더 죄를 짓게 된다면, 또 기회는 없다는 용서의 조건처럼 들리지도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죄로 물든 삶을 살 필요가 없다는 희망의 말이었다. 더 이상 목마르지 않게 해 줄 그가 있으니 깊고 긴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어둠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아도 된다는 약속의 말씀이었고, 새로운 삶으로의 초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