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사람 vs 소중한 하인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백부장의 하인이 쓰러졌다.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하인은 병이 주는 아픔이 너무도 괴로워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이 이 집안에 더 이상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인으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렸지만 백부장은 그를 절대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백부장에게 그 하인은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백부장은 누워있는 하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와 함께 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백부장은 군인이 될 때에 그리고 십부장이 되고, 백부장이 될 때에도 그 기쁨을 하인과 온전히 함께 누렸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은 집안의 모든 크고 작은 일들을 함께 해왔었다. 백부장에게 하인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나지막히 들리는 죄송하다는 하인의 말에 백부장은 그런 말 말라며 무슨 일이 있어도 고쳐주겠다고 그를 가만히 안심시켰다. 백부장은 백명의 병사들을 거느리고, 숱한 전장을 오가는 강인한 군인이었지만 자기 하인을 점점 죽게 만드는 중풍이라는 병 앞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자신을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어느 날, 예수가 가버나움 마을에 온다는 소문이 들렸다. 백부장도 예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예수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 나병을 낫게 하고, 앉은 자를 일으키기도 하며, 보지 못하는 자를 보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라면 하인의 병을 낫게 해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백부장에게 예수는 강한 사람이었다. 백부장에게 예수는 말 한마디로 천하를 호령하는 로마황제보다 강한 사람이었을까? 로마황제도 질병의 문제는 해결할 수는 없었으니까. 백부장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바쁜 군대 일을 잠시 제쳐두기로 했고, 투구와 갑옷을 벗었다.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백부장은 예수를 만나기 위해 자신이 먼저 그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는 자신이 거느린 백명의 군사를 동원해서 예수를 자신 앞에 데려오게 하거나, 예수의 능력을 얻기 위해 자신의 권력이나 지위를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도움을 구하는(간절한???) 한 사람으로 예수 앞에 섰다. 백부장은 예수를 만나자마자 그를 붙잡고 자신의 하인이 지금 아파서 너무 괴로워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백부장에게는 다른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마치 언제라도 예수를 만난다면 그 말을 하려고 준비했던 사람 같았다. 하인이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며 애끓는 심정을 예수에게 전해본다. 백부장은 하인이 아파서 쓰러진 이후로 하인이 느꼈을 고통을 고스란히 함께 느끼고 있었고, 그의 머릿속은 어느새 하인의 병과 그걸 해결해 줄 예수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백부장은 한시라도 빨리 하인의 병을 낫게 하고 싶었다. 백부장이 예수와 만나고 있는 지금도 집에서 누워서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을 하인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백부장은 강한 예수가 자신의 집에 오는 걸 감당하지 못하겠다며 겸손한 말로 자신의 생각을 표했다. 하인의 병이 끊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너무도 간절해서였을까, 백부장은 다만 예수의 말씀만으로도 하인의 병이 사라질 것이라는 고백을 했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라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백부장은 말씀의 능력을 사용해 달라는 자신의 부탁이 예수에게 과하게 들렸을지를 염려했던 걸까, 이때서야 자신이 하고 있는 일, 군사를 지휘하는 장교이며, 누군가의 수하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모든 게 하인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함이었다.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드디어 백부장이 가장 바라던 일이 이루어졌다. 백부장의 '소중한 사람'이 병에서 해방되었다는 선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