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 Morning Sun(에드워드 호퍼, 1952)
얼마 전 모임에서 하와이로 가족 여행을 다녀온 이가 환상적이었던 날씨에 대해 말했다. 햇살이 강렬했음에도 땀 한 방울 나지 않아서 야외 활동 하기에 최적이었다고. 후덥지근한 여름을 보내왔던 우리로선 와 닿지 않는 그 날씨에 대해 열띤 토론장이 열렸다. 나도 한때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으므로 대충 짐작할 순 있었다. 근데 하와이와 지중해의 유사성을 이야기하자고 무슨 기후니 운운하면서 가물가물한 고등학교적 지식을 선보이는 것도 우스웠고, 오래전 추억을 덧붙이는 게 사족처럼 보였다. 괜히 입 밖으로 꺼냈다가 딴 길로 샐 것 같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내 역할이란 들어주거나 가끔씩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이야기를 주도하는 편이 아니다.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과거에는 우스갯소리를 곧잘 하고 고민을 스스럼없이 털어놓거나 타인의 문제점을 잘도 지적했다. 어떤 친구는 나를 엉뚱한 아이로 알았고, 또 다른 이는 솔직하고 꿍꿍이가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 들수록 듣는 게 편해진다. 그게 문제라고 할 순 없지만 말하는 걸 주저하는 나 자신이 가끔 초라하게 느껴진다. 무슨 말을 하기에 앞서 ‘이런 말 해도 되나’하고 갸우뚱거릴 때도 있다. 이건 별거 아닌 것 같아서 안 하고, 저건 듣기 싫을까 못한다.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확 얘기해 버리면 되는데 지나치게 조심하는 것이다. 대화라는 것이 솔직한 감정을 교류하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투박해지고 여과 없이 나올 수 있는데 뭐가 그렇게 두려운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소심과 배려는 한 끗 차이다. 지나치게 남의 시선과 말투에 신경 쓰면 말 한마디 꺼내기 어렵다. 혹은 툭 던진 말에 한번 호되게 당한 적이 있다면 그러지 않기 위해 매사 신중하게 말하게 된다. 그러다가 생각지 않게 입이 무겁다는 평을 듣거나 예의 바른 친구라 불리는 것이다. 내 경우는 원래부터 연민이 많은 편이다. 여러 물건 중 하나 고르라고 해도 괜히 닳거나 떨어진 것을 집고, 어디가 불편한 아이를 놀리면 참지 못했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똑 부러지기보다는 덤벙거리나 털털한 모습으로 편하게 보이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신경 쓰이는 게 늘어났다. 누군가 불편할까 혹은 낙오될까 노심초사하고 불의에 참을 수 없어 스스로 총대를 매는 일이 허다했다. 비록 얻는 게 없어도 칭찬이나 인정받으면 그걸로 족했다. 배려하느라 눈치가 늘었고 여러 경우의 수를 따지게 됐다. 하다 못해, 이런 일도 생겼다. 친정 부모님이 부산에 있는 남동생의 상견례로 내려갈 것이란 연락이 왔다. 며칠 가는 거라면 숙식 문제가 생기는데 여윳돈 없이 내려갈까 걱정하기 시작했다. 다만 얼마라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에게 말했다. 냉철한 그는 그런 문제라면 남동생이 미리 생각하고 결정한 거니 믿고 맡기라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렇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어떻게든 자금을 마련하려다 그와 다퉜다. 결국 나는 생각해준답시고 부모님, 남동생, 그의 눈치까지 보는 처지에 놓였다.
이젠 우유부단한 건지 마음이 넓은 건지 모를 지경이다. 그런 상황을 구구절절 입 밖으로 꺼내고 싸우는 것에 지쳐간다. 그렇게 해서 내가 찾은 결론은 굳이 표현하지 말자는 것이다. 나만 감내하고 넘어가면 된다. 그동안 속으로 삭히고 참았던 일이 영사기 속 필름처럼 흘러간다. 폭발하는 경우가 흔치 않은 대신, 가끔씩 치밀어 오르는 화나 분노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보이지 않고 머리 속에 빙빙 맴돈다. 쓸데없는 잡담도 그렇지만 정작 하고 넘어가야 할 말도 나오지 않는다. 총체적 난국이다. 이게 나만의 문제라면 그나마 다행일지 모른다. 말하지 않는, 꼬치꼬치 따지지 않는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들도 비슷한 처지에 놓인다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영향을 주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했는데, 요즘 딸의 행동을 보면 꽤나 그랬던 모양이다. 아이는 물어보지 않으면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건 뭐 어리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물어보는 말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학교에서 누구랑 놀아?’하면 ‘그냥 안 놀았는데’하고 만다. 학교에선 공부하지 노는 게 아니란 뜻이다. 친구들의 미묘한 반응이나 심리적 변화에 비교적 둔감하다. 며칠 전에는 친구랑 같이 하교하는데 그 아이에게 몇 마디 걸었으나 영 반응을 하지 않았다. 내 생각엔 그 친구가 무슨 일로 삐진 것 같은데 인지하지 못한 것 같다. 조금 후 피아노 학원에 같이 가란 말에 선뜻 친구가 손을 내밀었다. 그때, 딸이 ‘그래, 근데 아깐 왜 그랬니?’ 하고 물었으면 됐는데, 오히려 뿌리치고 달려갔다. 결국 친구네 엄마가 ‘아니 왜 화가 났지?’하며 걱정했고, 잠시 후 친구의 입에서 ‘아까 얘가 그런 건 날씨가 더워서 그랬대’라고 마무리됐다. 그 바람에 우리 딸은 시도 때도 없이 삐지는 아이가 돼버렸다. 집에 와서 ‘정말 그랬니?’라고 물으니, ‘걔가 먼저 말 안 해서 그랬는데… 날씨도 더웠잖아’라고 얼버무린다. 아, 이놈의 업보라니.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몇 마디 더 건넨다. ‘오늘 뭐 했니?’ 혹은 ‘무슨 생각하니?’를 던지니 또다시 제자리걸음이다. 누군가 구체적인 질문을 해라고 조언하겠지만, 대부분 예상 대는 답변이다. 아이에 관해서는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역할 관계가 확실하다는 판단 하에 그것이 바뀔 수 있는 여지나 유연성을 허용하지 못하고 단지 엄마로서 뭔가 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만 작용한다. 여기서 하나의 실마리를 얻는다. 어쩌면 할 말을 잃은 경위가 그런 이유가 아닐는지. 엄마로서 아이에겐 보호자나 조언자로 존재하지만, 타인에게는 친목을 유지하는 거 말고는 더 이상 어떤 역할을 갖지 못한 것이다. 한때, 뭐든지 배려했던 나의 무기란 그들을 돕고 같은 편이 되어주는 것이었다. 하다 못해 대화를 해도 상담자를 넘어 해결사란 기대에 부응했다. 직장인 시절에는 많은 정보와 역할이 있던 터라 무엇보다 가능했다. 반면, 가정이 익숙해진 근래엔 그런 기회가 많지 않다. 싸워서 부딪치고 쟁취할 일이 별로 없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현실 앞에서 내가 조언할 수 있는 거란 지혜나 연륜에 근거한 것이지 정보나 냉철함이 아니다. 둘 다 가진 자들 앞에서 전자만으로 으스대기엔 왠지 부끄럽다. 그러니, 참고 들어주며 배려하면 그만이다. 아마 그런 차원에서 나는 내 목소리를 잃고, 자신감을 잃었으며, 빛바랜 색깔처럼 희미해진다. 점점 나다운 게 뭔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만난 이가 문뜩 ‘다시 일 안 할 거야?’라고 묻는다면, 이제부터 자신을 찾겠다고 다짐한 친구의 외침을 들을 때, 또 한 번 말문이 막힌다. 정말 이대로 할 말을 잃은 채 보필이나 하면서 살아야 할까? 그게 싫어졌나? 이제서야 자신을 찾고 싶은 걸까? 그놈의 정체성이, 자존심이 뭐라고. 남들의 평판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꼭 눈치를 봐야 하는가. 별 볼일 없으면 어떤가. 안 먹히면 어떤가. 뭐라 하면 또 어떤가. 내 마음은 한 번씩 들쭉날쭉하는 감정 기복의 곡선을 질주하며 서커스를 벌인다.
삶은 다양성의 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