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현지 가이드 체험
아침 식사는 숙소에서 메인 스트리트 쪽으로 내려가는 쪽에 위치한, 국립박물관 옆에 있는 cafedu라는 곳에서 먹기로 했다. 코워킹 스페이스 느낌의 카페였는데 손님들이 노트북을 펴놓고 아침부터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뭘 먹을까 하다가 크로와상 샌드위치랑 커피를 주문했다. 크로와상이 너무 맛있었다. 독일에서 이빨이 아플 정도로 딱딱한 빵만 먹다가 오래간만에 부드러운 크로와상을 먹으니 어찌나 반갑던지..
많은 여행을 해봤지만 단체 투어 여행 상품을 이용했던 경우를 제외하면 가이드와 투어를 했던 적은 없었다. 짧은 일정에 많은 곳을 둘러보는 스타일의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가이드 여행을 지양하는 편이었다. 에어비앤비를 들여다보다가 '프라하 일정은 짧으니까..'라는 생각에 즉흥적으로 신청한 상품이었다. 투어가이드와 만나기 위해선 11시까지 Municipal house (시민회관)로 가야 했다. 미션 임파서블의 밴지(사이먼 페그 분)를 닮은 가이드는 말이 엄청 빠르고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 가뜩이나 영어가 어려운데 체코인의 발음은 더욱 알아듣기 힘들었다. 종일 따라다니면서 대략 30프로 정도 알아들었던 거 같다. 나의 즉흥적인 성격으로 인한 결과를 후회했지만 중간에 이탈하기도 뭐해서 끝까지 따라다니게 되었다.
서양인이 대다수였던 관광객 사이에는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동양인 아주머니도 한 분 계셨다. 발음을 보아하니 왠지 한국인인 거 같았다. 아는 척을 할까 하다가 여행에 집중하고 싶어서 그냥 모른척했다. 한국어만 안 하면 내가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지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아는 척 안 하길 잘했다 싶었던 게 이 아주머니 셀카를 찍다 찍다 나중엔 외국인에게 자신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끊임없이 부탁하는 거였다. 함부로 아는척했다간 아주머니 사진 찍어주다가 투어 끝날뻔했다는 생각이 들어 오싹했다. 자신의 사진보다는 풍경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는 외국인들과 자신의 사진에 집중하고 있는 아주머니를 번갈아 보고 있노라니 한국인들은 왜 본인이 들어간 사진을 선호하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자기애가 강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타인에게 인증샷을 보여주기 위해서일까?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엔 가이드의 말이 너무 많았고 어려운 발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집중을 해야 했다.
투어가이드와 함께 3시간 반을 돌아다녔다. 가이드는 다른 가이드는 13곳 정도를 보여주지만 자기는 33곳을 가이드해 줄 것이라고 했다. 장인정신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알아듣기도 힘든 말이 너무나도 많아서 더욱 고통스러웠다.
올드타운에서 천문대와 성모마리아 교회로 시작해서 여러 곳을 보았는데 주로 처형당한 장소들이 많았다. 프라하도 여러모로 사연이 많은 곳인 듯했다. 시민회관은 과거 왕이 머무르던 궁전으로 사용되었고, 파우더 게이트 위에 연결 통로가 만들어진 연유는 밤에 여자에게 가기 위한 난봉꾼 왕의 의도가 있었다는 등 재밌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줬는데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어서 답답했다. 이런 경우 부족한 나의 영어실력을 자책하게 된다.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야 된다는 결심은 언제쯤 그만해도 될까..
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정권이었던 시절의 이야기도 많이 했다. 아마도 그때에 대한 트라우마가 국민들에게 남아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모차르트가 돈 지오반니를 초연했던 스타보브스케 극장을 지나 카프카의 행적이 담긴 장소들을 돌아보았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온통 카프카였고 의외로 말러나 드보르작에 대한 흔적은 별로 없었다. 아마도 카프카는 평생을 프라하에서 살았기에 그의 흔적들이 많을 거라 추측해 보았다.
까를교가 잘 나오는 뷰포인트에 가서 사진을 찍고 난 후 카프카 박물관 앞에서 잠시 자유시간을 주었다. 그 옆엔 예쁜 진저맨 쿠키를 파는 상점이 있었는데, 바쁘게 움직이던 가이드가 갑자기 많은 자유 시간을 주는 것으로 보아 상점 주인과 가까운 사이인 듯 보였다. 의도가 먹혔는지 다들 박물관을 관람하기보다는 진저맨 쿠키 구입에 열심이었다.
카프카 박물관 앞 자유시간이 끝나고 계속하여 이동하였다. 존레넌을 기리는 벽화가 있는 곳을 지나 한참을 가서야 투어가 끝났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강행군에 지쳤던 나는 급하게 근처 음식점에 들어가 편의점 삼각김밥을 사듯 알리오올리오 파스타를 주문하였다. 음식의 퀄리티보다는 배를 불리는 것에 목적이 있었지만 의외로 너무 맛있었다. 특히 그 면발은 평생 못 잊을 거 같은 식감이었다.
다시 거꾸로 돌아가야 하는데 너무 많이 걸어서 더 이상 걷고 싶지가 않았다. 킥보드를 타볼까 하며 찾아보니 라임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버를 열었더니 라임이 연동이 된다. 나이스.
베를린의 좋은 기억으로 킥보드를 타기 시작했는데 아뿔싸. 프라하는 킥보드 타기엔 최악이었다. 온 길바닥이 커다란 돌들로 짜 맞추어진 길이었기 때문이다. 거친 오프로드를 작은 바퀴로 덜덜거리며 고생 고생 하다 보니 겨우 처음 건너왔던 다리 근처로 돌아왔다. 어서 킥보드를 버리고 걸어가고 싶었지만 관광지 내에선 주차 금지구역이 많아 그 조차도 쉽진 않았다.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벌써 4시가 넘었다. 프라하 관광의 1순위가 무하 박물관이었는데 6시면 문을 닫기에 마음이 급해졌다. 빨리 이동해야만 했다. 옛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에 적용하긴 쉽지 않다. 급하면 일단 타고 보는 거다. 지하철을 타야 하는데 아이콘 모양만 보고 트램인 줄 알았고, 트램이 오길래 가는 방향을 대충 보고 올라탔는데 반대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 프라하는 길도 교통체계도 베를린보다 복잡해서 감으로 가면 안 되는데 실수였다. 킥보드로 어렵게 왔던 길을 트램이 순식간에 돌아갔다. 허무했다. 이게 다 노안 때문이다. 나이 드니 여행도 힘들어진다. 젠장..
우여곡절 끝에 무하 박물관에 도착했다. 가격은 300 크루나니까 만 오천 원 정도인데 규모는 아주 작았다. 마감 시간이 촉박한데 사이즈가 작으니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도 무하의 영상을 보다가 살짝 졸았다. 너무 피곤했나 보다.
그토록 좋아했던 무하의 작품을 박물관에서 직접 보니 깨닫는 바가 있었다. 무하의 그림은 그냥 그곳에 살았기 때문에 나온 것이었다. 문양, 색감, 여성의 외모, 패턴 등등 프라하에 와서 보니 자연스레 이런 그림이 나올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상상과 창작이 아니라 현실 모사의 영역이랄까?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이런 걸 깨닫고 무하의 그림을 보니 어떤 느낌이냐 하면 사진 잘 찍는 사진작가가 디자인적 감각까지 뛰어나 합성까지 잘했다는 느낌이다. 무하는 시대를 앞서간, 현대 포스터의 선구자였던 셈이다.
다음 코스로는 해 질 녘 천문시계탑 위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을 강추했던 가이드의 말이 생각나 중앙광장으로 다시 이동했다. 역시 천문시계탑의 황혼 풍경은 진정 최고였다. 날씨도 잘 받쳐줬기에 더욱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셔터를 누르고 영상을 찍는 사이 해가 저물고 있었다.
가이드가 추천해 준 드래프트 비어를 마시러 다시 이동했다. 우핀카스라는 오래된 전통의 펍이었다. 여기서 마신 필스너 드래프트는 그야말로 인생 최고의 라거였다. 진정한 필스너 우르켈을 만났다는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게다가 471ml가 55 크루나. 2800원이라니!!!! 백 잔 정도 마시고 싶었지만 절제하는 의미에서 두 잔만 마시기로 했다.
다시 카를교 쪽으로 이동했다. 다리를 건너며 끊임없이 셔터를 눌렀다. 과연 세계 3대 야경지라 할만했다.
다시 건너와 뷰포인트를 찾아 사진을 더 찍고 맥주를 한잔 더 마실까 했는데 너무 피곤했다.
귀가하여 하루를 정리하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예전엔 유럽 여행의 목적이 영화나 달력 사진(옛날 사람 인증)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였는데 이젠 사람 중심으로 바뀌는 거 같다. 체코의 풍경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인상이 안 좋다 보니 빨리 독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고 팁의 맛을 안 종업원들의 태도 때문이니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 됐건 예의 바르고 매너 좋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ps) 프라하에선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이후 드레스덴에 가있는 동안 이상하게 프라하가 그리웠다. 역시 굉장한 매력이 있는 도시임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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