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덴에서 만난 성실하고 착한 청년들

드레스덴 강북 지역 체험기

by 토이비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여서 짐을 싸고 10시에 체크아웃을 했다. 프라하 스튜디오는 시설이 너무 좋았고 먹을 것도 많이 남아 떠나기 아쉬웠다. 남은 과일을 키친타월에 싸서 가방에 넣었다. 짐이 되긴 했지만 드레스덴 가면 도착과 동시에 또 장을 봐야 하니 그게 그거다 싶었다. 젊었을 땐 절대 하지 않던 행동들을 나이 들어서 하는 이유는 무얼까. 아마도 벌어먹고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겠고, 음식에 대한 소중함 또는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일 수도 있겠다.

건물을 나서다 숙소 관리인 할머니를 우연히 만났다. 작별의 인사를 나누는데 왠지 섭섭했다. 현지인과 짧게나마 교감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에어비앤비만의 독특한 문화가 아닌가 싶었다.

전날 이용했던 카페에서 아침 식사를 해결하려고 하였는데 이전과 달리 샌드위치 메뉴가 변변치 않았다. 크로와상 샌드위치가 인기라서 빨리 소진되었나 보다. 아쉬움 속에 역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국립박물관 역을 지나 길을 건넜다. 체코의 지하철은 노선이 3개인데, 묵었던 숙소 근처의 국립박물관 역과 그 바로 밑 중앙광장 역이 메인이다. 기차역까지 한 정거장. 버스터미널이 그다음 정거장이다. 숙소 위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잡았다. 여행 시 숙소 위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은 도착할 때와 떠날 때인 거 같다.


시간이 애매해서 근처 스타벅스에서 아침을 해결하기로 했다. 여행 중엔 맛도 맛이지만 예측 가능한 시스템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트렁크를 들고 다니면서 식사도 하고 화장실도 가야 하는데 화장실은 있는지 없는지, 청결한지, 트렁크를 잠시 자리에 두고 볼 일을 봐도 괜찮을 만 한지 예측이 가능해야 하는데 가장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곳이 스타벅스와 맥도널드다. 전 세계 어디나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되니 말이다. 갑자기 제국주의의 상징과도 같았던 스벅과 맥도널드가 고마웠다. 언어가 안되어 의사소통이 어렵고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곳에 가면 겸손해진다. 어린아이와 같은 처지가 되는 것이다. 한국에선 스벅 커피 맛은 탄내가 심하고 어쩌고, 맥도널드는 불량하고 어쩌고 하면서 무시하지만 외국에선 그 둘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FLIX 시스템을 한번 경험해 봐서 시간에 여유를 두고 버스에 탑승했다. 프라하에서 드레스덴까지는 2시간 거리다. 끝도 없이 펼쳐진 목초지와 좌우로 길게 늘어선 지평선. 답답하게 막힌 것을 싫어하는 내가 유럽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여유롭게 하늘과 들판을 묵상하다 보니 어느덧 드레스덴에 도착했다. 화려한 프라하에 있다가 드레스덴에 오니 풍경이 삭막한 것이 괜스레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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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 애런의 집


버스에서 내려 4회권 교통 티켓을 구입하고 지하철로 2 정거장 이동하니 숙소가 있는 Neustadt에 도착했다. 집주인 애런에게 연락하여 숙소 앞에서 만났다. 애런의 첫인상은 착하고 싱거운 독일청년이었다.

집은 프라하의 집처럼 시설이 좋진 않았지만 날 것 그대로의 예술적 감성이 물씬 풍기는 집이었다. 베를린에서 묵었던 곳이 예술가가 잘 꾸민 숙박업소의 느낌이라면 여긴 예술가가 살고 있는 집에 잠시 놀러 온 느낌이랄까? 실제로 냉장고엔 먹다 남은 음식들이 그대로 남아있고 방에는 애런의 빨래들이 널려있었다. 이건 뭐지? 자연주의인가? 무엇보다도 침실에 왜 그리 많은 신발들을 놔뒀는지.. 물론 세탁된 것 같기는 했지만 불결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어쨌든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것이 이 여행의 목적이니 나쁘지는 않았다. 심지어 화장실 휴지도 없기에 얘기했더니 미안하다면서 근처 슈퍼에서 2개를 사가지고 왔다.


애런과의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나니 배가 고팠다. 전철역 근처 피자가게 냄새가 너무 좋아서 거길 갈까 하다가 근처에 있는 맥도널드에 가기로 했다. 독일 맥도널드는 패티가 맛있어서 나름 수제햄버거 맛이 나기 때문이다. 시그니쳐 메뉴가 있길래 세트로 주문했더니 13000원 정도 나왔다. 일반 물가에 비해 너무 비쌌다. 그래도 역시 맛은 좋았다. 한국 시그니쳐와는 다르게 수제버거 맛이 난다.


식사를 마친 후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전날 프라하에서 강행군을 해서인지 너무 피곤했다. 피곤할 땐 쉬어야 한다. 어릴 땐 그걸 모르고 정신력으로 돌아다니다 몸살도 많이 났지만 이젠 그럴 나이가 아니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잘 파악하는 나이가 되었다. 두어 시간 편히 쉬다 보니 밤이 되었다. 물도 사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해서 다시 집을 나섰다.

애런이 알려준 마트로 걸어가 보았다. 규모도 꽤 있고 가격도 괜찮았다. 늘 사던 아침 식사 메뉴를 골랐다.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적응이 되어서 빠르게 쇼핑을 끝냈다. 12.5유로 정도가 나왔다. 물이 4.8유로(팡트 1.5유로) 인걸 감안하면 토마토, 햄, 치즈, 빵, 잼 다해서 8유로 즉, 11000원 정도다. 한국에서 저 정도 산다면 3만 원 정도는 나올 거 같은데 말이다.

마트에서 나오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숙소에 들어와 냉장고에 음식을 넣고 빨래를 널고 나니 7시가 넘었다. 이대로 하루 일과를 마치기는 아쉬웠다.

DSC02885.jpeg 드레스덴의 저녁 풍경. 어둡다.


내가 묵는 숙소는 드레스덴 강북에 위치하고 있었다. 여긴 강북이 뉴타운, 강남이 올드타운이다. 올드타운은 관광지이다 보니 동양인이 많았지만 강북에선 나 외엔 한 명도 못 봤던 것 같다. 어딜 가나 신기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80년대도 아니고 이런 시선이라니.. 묘한 느낌이었다.

숙소에서 트램으로 4 정거장 정도 이동하면 메인스트리트가 나온다. 드레스덴 강북의 밤거리는 가로등이 없어 정말 어둡다. 으스스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메인 스트리트로 가는 길은 밝을 줄 알았는데 계속해서 어두웠다. 트램에서 내렸는데도 여전히 어두웠다. 저녁 8시 정도 되었는데 사람도 별로 없었다. 마실 삼아 슬슬 걸어 다니다가 애런이 강추한, 80년대 음악을 틀어준다는 바에 들어가 보았다. 반갑게도 제임스 브라운의 노래가 나를 맞아주었다.

DSC02904.jpeg 바에 앉은 동양인을 신기한 듯 바라보던 현지인의 눈빛

바텐더는 온몸이 문신으로 뒤덮여 멀리서 보면 무섭지만 가까이서 보면 착한 인상의 독일 청년이었다. 슬쩍 Tab을 보니 드래프트는 필스너 우르켈이었다. 맥주 부심이 가득한 독일에서 체코 생맥주라니.. 필스너 우르켈의 힘이겠지.

필스너를 한잔 시키고 바텐이랑 대화를 나누었다. 이곳은 11시부터 디제잉이 시작되어 새벽 6시까지 영업한다고 했다. 놀라웠다. 사람도 없고 조용한 이 거리에서? 트램은 24시간 운행한다고 했다. 대체 뭐지? 드레스덴이란 도시는..


DSC02905.jpeg 혼자서 어마어마한 양의 일들을 해냈던 바텐더 청년


나의 예상과는 달리 9시가 넘어 10시쯤 되니 손님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처음 도착했을 때만 해도 손님이 한 테이블 밖에 없었는데 어느덧 거의 다 찼다. 그 와중에 바텐더 청년은 홀로 열심히, 잘도 일을 했다. 이런 친구 하나 있음 한국에서 펍을 해도 잘되겠다 싶었다. 들어오는 손님마다 신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동물원 원숭이 보는듯한 시선도 몇 시간 반복되니 익숙해져 갔다.

바텐더는 나와 대화를 나누다 손님이 오면 일하고 시간이 나면 또 대화를 나누고를 반복했다. 이 친구 댄스를 전공해서 두 달 전에 자기 스튜디오를 열었다고 한다. 이제 막 개인 사업을 시작해서 투잡을 뛰는 모양이었다. 돈을 모아 내년쯤 아시아로 여행 갈 계획이라고 했다. 한국 대중음악사에 대해서도 공부를 했다고 말하였다. 드레스덴에서 한국 대중음악사라를 공부한 바텐더를 만나다니 흥미로웠다. 내가 예전에 만들었던 뮤직비디오도 보여주며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10시가 넘어섰다. 피로가 몰려와서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부터 궁금했던 한 가지를 물어봤다. 독일 시계의 자존심 '랑에 운트 죄네'를 현지인의 발음으로 듣고 싶었다. 한국에선 랑게냐 랑에냐 등등 의견이 분분했기에 현지인의 발음이 궁금했다. 랑에의 로고를 보여주며 읽어달라고 했더니 독일인 특유의 인토네이션으로 그가 발음했다. “아 랑에 운트 조이네.” 아.. 감동이었다. 랑에의 본고장 글라슈테가 위치한 작센주에 사는 청년의 발음으로 듣는 오리지널 사운드라니. 혹시 랑에라는 브랜드 아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했다. 시계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누구는 한국에서 11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선 갈아타고 1시간을 더 가고, 거기서 또 고속버스를 타고 2시간 반을 가서 다시 지역 버스를 타고 1시간 반을 가야 도착할 수 있는 글라슈테 지역의 자랑 랑에를 모르다니.

아쉽지만 밤새 일을 해야 하는 성실한 독일 청년과 작별인사를 나누고는 바를 떠났다. 맥주도 맛있었고 드레스덴에서 음악 공부를 하는 바텐더 청년과의 대화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DSC02913.jpeg 늦은 밤이 되니 되려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숙소에 들어와 영화 '레드 스패로우'를 마저 봤다. 독일에서 보는 스파이 영화는 왜 두 배로 재미있는 걸까? 냉전시대 스파이들의 본고장이라는 관념 때문인 것도 있겠지. 중간에 끊고 잠을 잤어야 하는데 피곤함을 이겨내며 끝까지 봤던 게 화근이었다. 피로는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심하게 불편했던 베개도 한몫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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