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가지 Vs 신시가지
드레스덴의 아침은 어두웠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때문이었다.
집주인 애런은 디자인 일을 하고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는 청년이다. 음악도 좋아해서 괜찮은 스피커에 블루투스 시스템을 만들어놨다. 덕분에 지금은 최백호의 '방랑자'를 들으면서 글을 쓰고 있다. 비 오는 날 드레스덴에서 최백호라니.. 묘하게 잘 어울린다.
아침식사는 어제 마트에서 사 온 빵과 치즈, 햄, 딸기잼, 토마토, 포도, 커피로 간단히 해결했다. 베를린 온 이후 계속 이 식단을 유지하고 있는데 속이 편해서 좋다.
스피커에서는 레드제플린의 'Immigrant song'이 흘러나온다. 드레스덴과 잘 어울리는 곡이다.
오늘은 S반을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내가 산 티켓은 4회권인데, 정확하진 않지만 4 정거장까지 이용 가능한 표라고 한다. 트램은 정거장이 많아 S반을 선택했다. 두 정거장을 지나니 미테(Mitte) 역이다. 이름 그대로 중심이란 뜻인데, 막상 내려보니 주변은 한산했다. ‘역시 성 주변으로 가야만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걷다 보니 츠빙거 공원이 나타났다. 여유로운 풍경을 즐기며 걸어가자 츠빙거 궁전 안으로 들어가는 다리가 보였다. 다리 양쪽에는 원형 나무 바닥을 보존하기 위해 가드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미관상은 다소 아쉬웠지만 세심한 배려로 느껴져 좋았다.
바로크 양식의 궁전 외관은 정말 장관이었다. 오전의 비 때문에 하늘은 잔뜩 흐렸지만, 그 사이로 가끔 비추는 햇살이 묘하게 어울렸다. 그을린 듯한 성벽과 우중충한 하늘의 조화는 드레스덴다운 풍경이었고, 햇빛에 반짝이는 금빛 장식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오늘은 외관만 보고, 내일은 성 내부를 둘러보기로 했다. 사진을 열심히 찍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마땅한 식당이 보이지 않아 고민하던 순간, 근처에 전동킥보드가 눈에 들어왔다.
킥보드를 타고 성 주변 구시가지를 돌며 남쪽 백화점까지 약 다섯 블록을 돌아봤다. 예전에는 높은 곳에 올라가 도시를 내려다보곤 했지만, 이제는 우버나 라임 같은 이동수단으로 훑는 것이 훨씬 편하다. 독일은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어 이런 교통수단이 특히 유용하다. 어제 신시가지를 보고 오늘 구시가지를 둘러보니 드레스덴의 윤곽이 잡히는 듯했다.
신시가지는 어둡고 사람이 적은 반면, 구시가지는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대부분은 버스에서 내려 성 주변만 보고 떠나기 때문에 주차장 반경 200미터를 넘지 않는다. 그 반경을 조금만 벗어나도 동양인을 보기 힘들다. 라임을 타고 돌아보니 그 차이가 더욱 뚜렷하게 느껴졌다. 역과 구시가지 사이에 위치한 상업지구는 사람들로 붐볐지만, 역시 동양인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남쪽은 화려하고 활기찬 반면, 북쪽 노이슈타트(Neustadt)는 어둡고 힙스터들만이 모이는 분위기였다. 지역별로 극명하게 다른 색채가 드레스덴의 매력처럼 느껴졌다.
밤이 되자 광장에선 버스킹 공연이 시작됐다. 성벽이 울림을 더해 공연장으로는 최적이었다. 관광객들이 영상을 찍어 올리면 홍보 효과도 크겠다 싶었다.
여유로이 야경을 찍으며 돌아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아우구스투스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강을 건너 신시가지에 가까워질수록 썰렁해지기 시작했다. 신시가지는 전반적으로 조용한 편이었는데, 가끔 술에 취해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가 크게 들렸다. 적막함을 뚫고 나오는 소리라 더 크게 강조되어 들리는 편이었다. 베를린에서는 개 짖는 소리조차 거의 들은 적이 없었는데, 여긴 법적인 제재가 없어서인지 개 짖는 소리도 자주 들렸다. 도시가 전반적으로 묘하게 언발란스했다.
지도를 보니 숙소까지 2.4km에 불과했다. 애매한 거리라 트램 대신 킥보드를 이용하기로 했다. 메인스트리트를 따라 달리는데, 양쪽으로 상점이 늘어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신나게 달려 중앙 교차로에 이르러 숙소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달리다 보니 옆으로 트램이 지나갔다. 드레스덴의 밤거리는 어두워서 킥보드를 타기엔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는 돌길이라 킥보드를 타기에는 덜컥거림이 심했다. 결국 트램이 없는 골목 안쪽 길을 택했다. 차도 사람도 없는 조용한 길이었는데, 어둡고 양옆에 가득한 그래피티가 주는 분위기가 다소 으스스했다. 그럼에도 킥보드를 타기에는 최적이었기에 빠르게 달려 무사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 주변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조용했지만, 바로 옆 코너에는 제법 큰 바가 하나 있었다. 이곳은 주택가인데도 불구하고 어제(금요일)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볐다. 지금 이 시간(밤 12시)까지도 쿵쿵 울리는 음악 소리와 함께 시끌벅적하다. 독일은 이런 소음에 관대한 걸까? 한국 같았으면 벌써 민원이 빗발쳤을 것이다. 독일은 어떤 부분에선 지독할 정도로 엄격하지만 또 다른 부분에선 놀라울 만큼 느슨하다.
내일은 주일. 드레스덴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성당 안을 둘러보고, 성에도 올라가 보기로 계획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