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짐과 재건의 현장
날씨가 너무 좋아 어김없이 라임에 올라탔다. 어젯밤만 해도 음침했던 기찻길 옆 도로는 아침 햇살 아래 조용하고 고즈넉한 산책길로 변해 있었다. 차도 많지 않아 라임을 타고 달리기엔 더없이 좋았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전방에 줄지어 선 자동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행진하는 시위 행렬이었다. 무슨 시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위기는 놀라울 만큼 평화로웠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산책하듯 걷는 모습에 오히려 축제 같은 기운마저 흘렀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다면 자연스레 자기 목소리를 내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몸에 배겠구나 싶었다.
행렬을 따라가다 보니 어제 스쳤던 긴 광장이 나타났다. 일요일이라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그 덕에 라임 타기에는 최적의 길이 되었다. 신나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아우구스투스 왕의 금빛 동상 앞에 도착했다. 화려한 동상을 카메라에 담은 후 아우구스투스 다리를 건너려던 찰나, 강가의 평화로운 펍이 눈에 들어왔다. 지나치기엔 너무 아쉬워 시원한 맥주 한잔을 주문했다. '여행의 참맛은 바로 이런 여유로움이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맥주로 텐션을 올린 뒤 오늘의 목적지인 드레스덴 성으로 향했다.
성 입구에서 1층부터 4층까지 모두 볼 수 있는 패스를 끊고 들어갔다. 성의 규모는 외관에서 느껴지는 것 이상이었다. 1층이 볼만하다고 들었는데 개인적으로는 2층과 3층이 더 흥미로웠다.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순식간에 두 시간을 넘기고 나니 어느덧 오후 4시. 마음이 급해졌다. '전망대와 궁중 성당을 봐야 하는데...'
전망대는 멀리서 보기엔 높아 보이지 않았지만, 막상 올라가 보니 끝없는 나선형 계단이 만만치 않았다. 무려 67m나 되는 높이였다. 정상에서 바라본 드레스덴의 풍경은 그 모든 수고를 잊게 만들 만큼 압도적이었다. 아쉬웠던 건 배터리를 챙기지 못해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것. 배낭에 여분 배터리가 있었지만 박물관 입장 시 락커에 맡겨야 했던 탓에 꺼내오지 못했던 것이 실책이었다.
이어서 성당에 들어섰다. 마침 미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예상했던 것만큼 화려하진 않았다. 오히려 개신교 교회인 성모교회(프라우엔키르헤)가 훨씬 더 화려했다. 성모교회는 11세기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카톨릭 성당을 허물고, 1734년 바로크 양식의 개신교회로 재탄생했다. 이후 2차 세계대전 당시 완전히 무너졌지만 시민들의 오랜 노력 끝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유리 하나까지 옛 기법을 그대로 재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독일 장인정신의 진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저녁 무렵 성모교회에 도착하니 입구에서 여성도들이 주보를 나눠주고 있었다. 마침 영어로 예배를 드리는 날이었기에 예배에 참석하기로 마음먹고 입장했다. 화려하게 금빛으로 장식된 교회 안은 의외로 적막했다. 목사님과 오르간 연주자, 그리고 문 앞에서 주보를 건네던 여성도 몇 분이 전부였다. 종교개혁의 나라에서 텅 빈 교회의 현실을 마주하니 짠한 마음이 들었다. 300년 역사의 예배당이 관광지로 전락하고 말았다니... 오랜 세월 온갖 풍파를 겪은 장소에서 드리는 예배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예배 후에는 애런이 추천해 준 전통 음식점으로 향했다. 오리 다리 요리에 곁들여 나온 작은 양배추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맥주는 말할 것도 없었다. 체코의 자존심 부드바이저, 그리고 독일의 자존심 파울라너를 차례로 마셨는데 둘 다 역시였다.
늦은 시간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트램을 이용하려고 역으로 갔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그때 영어를 못하는 아랍계 아주머니가 굳이 길을 건너와 “여긴 안 온다”라고 몸짓으로 알려주셨다. 너무 고마웠다. 결국 40분가량 기다리다 어렵게 숙소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드레스덴에서의 마지막 밤은 깊어갔다.
3일간 머무른 드레스덴의 느낌은 “어둡고 조용했다.“ 길거리에서 종종 마주친 술 취한 사람들, 차가운 시선과 불친절한 태도 속에서 전쟁의 상흔을 떠올렸다. 이곳은 독일 내에서도 네오나치 활동이 가장 활발한 도시라 한다. 나와 스쳐 지나간 사람들 중에도 네오나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쳤다. 아름다움 속에 어둠이 내재된 도시랄까.. 고요 속에서 무언가를 외치고 있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그래서 어려움에 처한 이방인에게 따뜻한 손길을 건넨 아랍계 아주머니의 친절은 더욱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