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하늘 위에서 시작된 손목시계의 역사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는? : 엘리자베스 1세에서 산토스-뒤몽까지

by 토이비

근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듯 1900년 이전까지만 해도 남자들은 회중시계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렇다면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는 언제, 어떻게 탄생했을까?


알려진 최초의 손목시계는 1571년 '로버트 두들리'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게 증정한 팔찌 형태의 손목시계라고 한다. 그러나 이 시계에 대해선 기록만 있을 뿐 실제 시계의 실물이나 제작 브랜드가 안 남아있기에 최초의 손목시계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다음 시대로 넘어가 보자.


문서로 기록된 최초의 손목시계는 1810년, 나폴레옹의 여동생이자 나폴리 왕비인 카롤린 뮈라의 의뢰로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제작해 납품한 시계 브레게 2639로 알려져 있다. 이 시계는 팔찌처럼 착용할 수 있도록 특별히 설계된 제품으로서, 재밌는 것은 아브라함 브레게의 주문 장부에 기록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나폴레옹의 여동생이자 나폴리 왕비였던 CAROLINE MURAT
꼼꼼하게 기록된 브레게의 시조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의 장부 (출처 : 브레게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이 시계(브레게 2639) 역시 문서를 통해 디자인을 추정할 뿐 실물이나 사진이 남아 있지 않아 기네스북 등재 등 공식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다음 시대로 넘어가 보자.


기네스북에 등재된 공식적인 최초의 손목시계는 1868년, 파텍필립의 시계다. 엄청나게 화려한 외형을 갖춘 이 시계는 다이아몬드 장식을 열어야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구조라고 한다. 그런데 사진을 보면 이건 시계라기 보단 화려한 장신구라는 생각이 든다.

파텍필립의 팔찌형 손목시계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비슷한 시기에 지라드 페리고에서 제작된 또 다른 시계가 있다.

1880년, 지라드 페리고에선 위의 파텍필립 시계와는 대척점에 서있는 엄청 터프한 디자인의 손목시계를 제작했다. 다이얼, 러그, 스트랩, 용두위치 등 디자인만으로는 손목시계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해군장교들을 위해 2000개 한정, 전투용으로 제작되었다는 이유 때문에 최초의 손목시계라고 불리기에는 애매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아이언 마스크만 아니었어도...)

지라드 페리고의 (진정한 의미의) 전투용 손목시계


마지막으로 소개할 시계는 누구나 인정하는 최초의 손목시계라고 불릴 수 있는 까르띠에의 산토스다.

때는 1904년, 브라질의 비행사 알베르토 산토스-뒤몽은 비행 중 시간을 확인하는 데 불편함을 느껴 루이 까르띠에에게 특별한 시계를 제작 의뢰했고, 루이 까르띠에가 예거(예거 르꿀뜨르의 예거)와 함께 연구 끝에 세상에 선보이게 된 시계가 바로 산토스 드 까르띠에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디자인을 갖춘 이 시계는 출시와 동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알베르토 산토스-뒤몽과 그의 시계
설마 저 모자를 쓰고 비행을?

까르띠에 산토스가 남긴 영향은 단순하게 손목에 올라간 시계라는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제품을 계기로 시계는 단순하게 시간을 확인하기 위한 도구에서 패션 아이템으로 변화했고, 이후 군용 시계와 스포츠용 시계 등 다양한 남성용 손목시계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시계 씬의 패러다임을 바꾼 혁명적 아이템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초기 디자인이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고 많은 이들에게 찬사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여담) 라이트형제가 최초 비행에 성공한 연도는 1903년이지만 대중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착륙에 성공한 비행은 1906년, 산토스-뒤몽의 비행이 최초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손목시계의 역사는 비행의 역사와 맥락을 함께 하고 있고, 파일럿 워치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F1 더 무비’ 속 IWC가 어색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