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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도동와룡선생 Jul 25. 2023

7월에 마지막

7월은 빠르게 흐른다.

이번달은 독서도 하고, 자기계발도 하고, 공부도 하고, 나름 빡시게 보낸 것 같다.

물론 면접도 틈나는대로 꾸준히 받았다. 

비록 마음에 드는 곳이 없어 들어가진  않았지만 그들이 나를 선택하지도 않았다.


나만의 의미 있는 삶을 알기 위해서 나는 계속 나에게 묻는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러셀을 처참하게 무시하며 본인이 천재란걸 증명한다.


비트겐도 사실 처음에 철학을 배울때는 러셀에게 다가갔다.

그는 집이 굉장히 잘살았고 부자였고 유복했다. 하지마 모든 재산을 가족 친지에게 줘 버리고 본인은 작은 방이 있는 집한재만을 유지하고 평생을 살았다. 


이런 그가 확립한 것은 멋진 삶이다. 

죽어서 까지도 멋진 삶을 살았다고 말해주오 애기한 걸 보면 그는 진짜 세상을 자기만에 생각으로 바꿔버리고 전생과 현재를 또다른 삶으로 연결하여 의미를 만드는 천재과에 속했다. 


처음 러셀에게 철학을 배우기 위해 찾아 갔을때 러셀은 긴가민가 해서 여름방학 동안 글을 써가지고 오면 철학가를 해도 된다고 말해준다고 했을때, 비트겐은 그 질문을 비웃듯히 글을 천재적으로 적어서 제출했고, 러셀은 그걸 보고 아무말도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가지는 알았다고 한다. 그는 천재란걸...


인생은 총 3가지로 분류 된다고 한다.

1. 즐거움 

2. 몰입

3. 삶의 의미 

이걸 위해서 인생을 거는거고 살아가는 것


신격인 제우스는 고작 인간 시지프에게 골탕을 먹였다고 한다. 제우스는 욕정을 채우기 위해 강의 신의 딸을 납치 했는데 시지프는 강의 신에게 고자질을 했다. 이에 열받은 제우스는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시켜 시지프를 데리고 가라고 한다. 죽이 라는 것인데, 시지프는 기지를 발휘해서 타나노스를 감금해 버린다. 


죽음의 신이 감금되어 버리니 세상에는 죽음이 없어졌다고 한다. 이에 황천의 신, 전쟁의 신, 운명의 신들이 제우스에 항의 한다. 제대로 열받은 제우스는 시지프에게 끔찍한 형벌을 내린다. 커다란 바위를 산 정상까지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인데, 문제는 바위를 간신히 산 정상에 올려놓으면 다시 산 밑으로 내려와서 다시 바위를 정상으로 밀어 올려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무한반복한다. 무의미한 노동 그것이 바로 시지프가 받은 형벌이다. 우리가 바로 시지프 인 것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출근합니다. 미팅을 하고 손님을 응대하고 일을 하죠 그리고 퇴근을 하며 동료들과 소맥을 마십니다. 이처럼 우리는 무언가를 열심히 하며 삽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이러한 일상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제우스는 시지프에게 골탕을 먹고 열받아서 형벌을 내렸죠 결국은 굴러 떨어질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 입니다. 그런데 만약 시지프가 그러한 현실을 너무 힘들어서 자살을 한다면 제우스는 아마 고소해할 것 입니다. 제대로 복수를 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에 시지프가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일이 근력운동에 좋다고 의미까지 부여하면서 자기기만을 해도 제우스는 아마 고소해할 것입니다. 바보 같은 놈이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시지프가 바위가 결국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 매일 즐겁게 열심히 밀어 올린다면 제우스는 약이 올라 죽을 것 입니다. 자신을 골탕먹인 시지프에게 복수를 하려고 형벌을 내렸는데 전혀 고통을 느끼지도 않을 뿐더러 그것을 너무 좋아하니 약이 오를 수 밖에 없죠. 


삶이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그 외면 자체가 자기기만 입니다. 또한 부조리한 삶을 끝내기 위해 자살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제우스를 비웃게 만들 뿐입니다. 신의 구원을 기대해서도 안 됩니다. 그 또한 자기기만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카뮈는 반항하라 고 합니다. 카뮈에게 반항한다 는 것은 현재에 충실하라는 의미 입니다. 삶의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받아 들이되 그냥 행복하게 현재를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삶의 무의미함을 즉시하고 그러한 의미 없는 삶에 충실할때 역설적으로 삶의 의미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17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생각하는 인간만이 진정한 인간이라는 말이겠죠 데카르트로부터 300년 후 20세기의 카뮈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반항이 진정한 인간을 만든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의 반하는 삶을 위하여 나도 취업을 하지 않고 열심히 반항하도록 하겠습니다. 


ps . 평범하게 비범한 철학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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