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일상이 행복할 수 있을까

속초 한 달 살기 D-3

1월 둘째 주, 우리나라 전국은 강추위에 휩싸였다.

우리 가족이 한 달 살기 하는 속초도 춥다.

하지만 내가 살던 경기도보다는 2도 정도 높다.

강원도 북쪽이라 추울 줄 알았는데 2도 씩이나 높다니...

추운 걸 싫어하는 나에게 속초로 겨울에 한 달 살기 하러 오기를 잘했단 생각이 든다.


오늘은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집에 있었다.

남편은 영랑 호수에 가서 산책이라도 하고 오자고 했지만

나와 아이들은 집에 그냥 머무르고 싶었다.


집이란 이런 곳이다.

아늑하고 따뜻하고 머무르고 싶고...

다시금 공간이 주는 힘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원래 집에 안 있는 사람이다.

틈만 나면 밖에 나가야 했다.

결혼 하기 전의 나는 자의적으로 그랬고

결혼 후에는 아랫집 주민의 성화에 못 이겨

타의적으로 아이들과 밖으로 다녀야 했다.


그런 내가 집에 있는 것에 대해 편안하게 여기고, 즐거워하다니...

참 숙소를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늘 집을 예쁘게 꾸미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막상 시도해보려고 하면 두렵고 잘 안되었다.

물건들은 방이 넓게 보이게 벽 근처에 두었고

집을 예쁘게 깨끗하게 하는 법을 몰랐다.

하지만 이번 한 달 살기 숙소에는

이곳에 살기만 해도 살림의 많은 팁들을 얻는 기분이다.


가구와 소품의 배치,  방안에 있는 물건들의 색상 매치,

집안의 식물,

심지어 방향제까지도 주인장의 센스가 보인다.

덕분에 남의 집이지만 정말 내 집처럼 편하게 쓰고 있다.

아이들도 거실에서 하루 종일 레고를 만들며 논다.


얼마 전 이 집에는 햇빛이 들어와서 좋다고 아이들이 말하는데 마음이 아렸다.

2년 동안 두꺼운 커튼과 블라인드로 창밖을 가리며 살아야 했던 우리.

아이들은 한창 낮인데도 “지금 밤이에요?”라고 물었다.

밖을 볼 수 없어 천장 형광등만 의존했던 우리들인데...


낮이면 창밖으로 해가 들어온 다는 사실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 거구나...

항상 친정엄마가 아이를 키울 때는 밝은 곳에서 키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평소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출근해야만 했던 남편

요즘 늦잠의 매력에 푹 빠졌다.

늘 잠이 부족해 다크서클을 달고 다녀서 안타까웠는

밤늦게까지 그동안 보고 싶었던 프로그램을 보고

아침 늦게 일어나는 남편을 보며

이렇게라도 남편이 쉴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남편이 밤늦게까지 보는 프로는 ‘의천 도령기’라는 중국 드라마.

남편이 고등학생 때 보던 중국 드라마라는데.

옆에서 슬쩍 보니 주인공들이 새를 타고 날아다닌다.

내가 기억하기로만 남편은 5번, 그 시리즈를 본 것 같은데

보고 또 봐도 재밌다고 한다.

웬만하면 2번 이상 안보는 나에게 그런 남편은 늘 새롭다.


오늘은 아점을 먹었다.

이마트에서 어제 사온 피코크 부대찌개.

그냥 구성품을 모두 같이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된다.

보기도 그럴듯하고, 무엇보다 요리 과정이 너무 쉬웠다.

제일 중요한 맛은?

정말 엄지 척이다.

그동안 유 퀴즈에서 대한 미국인이 부대찌개 이야기하는 방송 보고

부대찌개를 너무 먹고 싶어 하던 나였다.

코로나로 식당도 못 가고 집밥만 먹던 우리.

한 달이 지난 지금이라도 이렇게 먹을 수 있어서 감사가 절로 나왔다.

냉장고에 있던 치즈도 사리로 하나 올려주었다.

그리고 어제 사온 강원 초당 두부도 올렸더니 정말 근사한 요리가 되었다.

2인분 짜리로 나와 남편은 정말 말 그대로 배부르게 잘 먹었다.


그리고 저녁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아점으로 먹은 부대찌개로 인해 아직도 배가 든든했다.

그래도 안 먹으면 나중에 잘 때 너무 힘들 것 같아 샐러드를 만들었다.

봄동과 케일, 시금치를 준비하고 발사믹+올리브 오일 드레싱을 해준다.

그 위에 닭가슴살을 얹어주면 건강하고 맛있는 샐러드 완성!

이번 닭가슴살은 매콤한 인도 카레 소스 제품!

맛도 정말 좋았다.


저녁에는 얼마 전 주문한 용과를 꺼냈다.

열대과일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을 위해

한 달 살기 하며 과일이라도 잘 먹어보자라는 마음으로 주문했었다.

시원한 용과를 예쁘게 썰어 놓으니

“엄마 꼭 참치 회 같아요”라고 아이들은 말한다.

회는 아직 먹어보지도 못했는데 너희들이 어떻게 그걸 알았니?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레고도 가지고 놀고

귤도 맛있게 까먹는 아이들 덕분에

집에 있는 게 지루하지 않고 즐겁다.

그렇게 우리의 속초 한 달 살기 3번째 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일상을 함께하는 가족들이 있어 참 좋다.


작가의 이전글 '한 달 살기'에도 엄마는 밥을 해야 하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