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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토이 피아노 [백두산]구입 리뷰

내가 처음 북한 토이 피아노를 보게 된 것은 폴란드의 "작은 악기들(Male Instrumenty)"이라는 토이 피아노 앙상블 단체에서 낸 책인 [Graja Chopina - Fenomen Toy Piano]에 실려있는 사진에서였다.


파웰 로만슈크의 그라챠 쇼피나 - 토이 피아노 책


이 책은 쇼팽의 나라 폴란드의 토이 피아노 앙상블이 쇼팽의 연주곡을 현대음악과 접목시켜서 연주한 20개의 연주곡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앙상블 소개와 이 단체의 리더가 수집한 300개가 넘는 토이 피아노들 중 일부 악기의 소개, 토이 피아노의 역사에 관한 간략한 정리 등이 포함되어 있다.


비록 폴란드어로 써있어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지만 컬러로 된 이 단체의 멋진 소장품들을 황홀한 눈빛으로 넘겨보던 중 낯익은 한국어가 적혀 있는 피아노가 눈에 들어왔다. 애매한 건반 갯수에 한국어로 당당하게 [백두산] 이라고 적혀 있는 이 피아노는 북한에서 제작된 피아노라는 간략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그때부터 내 눈앞에 이 피아노가 계속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그 뒤 토이 피아노 연주활동을 하면서 sns 활동을 같이 하니 자연스럽게 해외의 토이 피아노 뮤지션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Male Instrumenty 의 리더인 파웰 로만슈크와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다. 나는 그에게 너의 책을 잘 봤고 네가 북한 토이 피아노를 가지고 있는것을 안다. 어떻게 구했냐’ 고 물어보았다. 다짜고짜 던진 내 질문에 그는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폴란드는 유럽의 일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구 소련에 속해있던 나라 중 하나였으며 공산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같은 공산주의 국가들과 형제 같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중국 및 러시아 등 공산주의 국가들의 물건이 폴란드의 중고 장터에 수입되었고 북한 상품들 또한 많이 유입된다고 말했다. 특히 내가 사진에서 본 백두산 토이 피아노는 1980년대에 생산된 피아노로 그 당시 폴란드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음을 알려주었다.


파웰 로만슈크가 소장하고 있는 또다른 백두산 토이 피아노 이미지


나는 그의 설명을 듣고 백두산 토이 피아노를 구입하기 위해 검색을 시작했다. 구글번역기를 통해 폴란드어로 토이 피아노를 뭐라고 부르는지 확인한 뒤 검색어 뒤에 korea를 붙여서 구글링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미지 검색을 시작하자마자 책에서 보았던 사진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사진들의 출처 중 판매와 구매가 가능한 사이트를 확인했고, 일명 폴란드의 중고나라 카페라고 볼 수 있는 olx.pl 사이트에서 구입이 가능한 상품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 사이트는 사이트내에서 바로 결제를 하는게 아니라 구입을 희망하면 판매자에게 메일 혹은 전화번호 등의 연락처로 직접 문의를 해야 하는 중계 사이트 였다. 그리고 문의는 당연히 대부분 폴란드어로 해야 했다.

나는 구글 번역기를 돌리면서 ‘너의 북한 토이 피아노를 꼭 사고 싶은데 너 국제 배송 하니? 가능하면 어떻게 구입하면 돼?’ 라는 내용으로 판매자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내 메세지를 확인한 판매자에게 빠른 답변이 왔다.


“구입 가능하고 국제배송 비용 포함한 금액 계좌 이체 해줘.”


폴란드 현지 계좌로 이체해달라니. 카드 결제가 아닌 답변에 당황했지만 나는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서 알겠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곧 폴란드가 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폴란드는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고 자국 화폐를 쓰는 유럽 국가 중 한 곳이다. 폴란드의 화폐 이름은 즈워티(złoty)로 금이라는 뜻이다. 내가 북한 토이 피아노를 구입하려면 한국 계좌에서 폴란드 현지 계좌로 구매가에 맞는 금액을 즈워티로 보내야 한다. 나는 주거래 은행인 A은행에 전화해서 송금 가능 여부와 방법을 물어보았다.


상담사 : 고객님, 폴란드로 해외 송금 가능하시구요~ 어플 깔고 송금하시면 수수료도 절약되실 거에요. 송금시 필요한 정보를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생각보다 쉬운데? 라는 생각으로 은행 어플을 깔았다. 국내 계좌에서 해외 계좌로 보낼때 드는 수수료는 총 3종류이다. 송금수수료, 전신 수수료, 해외 중계은행 수수료인데 은행마다 비용이 다르지만 적게는 2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 이상이라고 한다. 수수료를 조금이라도 절약할 수 있다면 당연히 어플로 하는게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설치한 은행 어플의 통화 선택란에는 즈워티가 없었다. 내 생각엔 상담사가 폴란드가 유럽국가이니 유로화를 쓰겠거니 하고 안내해준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직접 은행에 방문해야 했다. 10명의 대기 인원을 물리치고 친절해보이는 은행원에게 용건을 말했다.


 나 : 국내 계좌에서 폴란드 현지 계좌로 송금하고 싶습니다.

은행원 : 네. 국내 계좌에서 폴란드로 송금 가능한지 확인해드리겠습니다. 먼저 이 양식을 작성해주시구요.(해외송금시 필요한 정보를 적는 양식을 한장 건내준다.)

나 : (종이를 받으면서)저기 폴란드는 유로가 아니고 즈워티를 사용한다는데요...

은행원 : 네? 주..오티요?

나: 즈워티요. 즈으워티.


창구 은행원은 처음 듣는 화폐이름에 당황한 눈치였다. 바로 며칠전 까지 나도 즈워티라는 단위는 처음 들었으니 이해가 되지만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검색을 통해 A은행이 폴란드에도 지점이 있는것을 확인하고 왔다. 안되면 안된다. 내 불안한 눈빛을 눈치챘는지 상담원은 빠르게 듣고 몇군데 전화를 돌려서 문의했다. 그리고 컴퓨터로 검색을 해보는 등의 해결방안을 모색해보다가 15분 만에 답을 내놓았다.


은행원 : 고객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저희 은행이 즈워티는 취급하지 않아서 유로화로 송금은 가능하지만 즈워티 송금은 불가능하십니다.

나 : 어... 전화 상담으로는 된다고 하셨었는데... 유로화만 가능하다구요?

은행원 : 네. 죄송합니다.

나 : 그럼 판매자에게 유로화로 돈을 보내면 그 사람 이 현지 계좌로 유로화를 받을 수 있나요?

은행원 : 받을 수는 있지만 판매자분이 유로화로 받아도 괜찮을지 직접 문의를 해보고 진행하셔야 합니다.


계좌송금이 안된다니...


나는 북한 토이 피아노를 구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구글 번역기를 통해 장문의 메세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북한 토이 피아노를 구입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

판매자에게 내 주거래 은행에서 폴란드 계좌로 송금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세가지 제안을 했다.


첫번째 방안은 유로화로 송금을 받을 수 있니?

두번째 방안은 폴란드로 송금 가능한 새 계좌를 만들테니 기다려줄래?

마지막 방안은 계좌이체 대행을 해줄 사람을 찾아볼테니 기다려줄래? 였다.

그리고 나는 꼭 그 피아노를 갖고 싶다는 말도 함께 보냈다. 메세지를 발송한 지 얼마 안되서 읽음 표시가 떴고, 어떻게 답변이 올지 걱정했다.


국제 운송비까지 10만원이 조금 넘는 물건 하나로 판매자가 이런 번거로움을 감수해줄까? 그냥 거래 취소한다고 말하면 어쩌지?


잠시 후 판매자에게 메세지가 왔다.


판매자 : 카드 결제가 가능한 폴란드 옥션에 상품을 올릴게. 내가 보내는 링크로 결제하면 될거야.


판매자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배려심 있는 판매자 덕분에 나는 무사히 결제를 마치고 배송을 기다리는 중이 아니고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다.


폴란드의 옥션이라 불리는 사이트인 알레그로 (https://allegro.pl) 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우리나라의 지마켓이나 옥션에 해당하는 사이트로 많은 물건들이 거래되는 곳이다. 나는 다음날 판매자가 보내준 링크에 접속해 기쁜 마음으로 가입을 하고 구매 버튼을 눌러서 배송정보를 입력했다. 그리고 결제 버튼을 눌렀는데 전화번호가 오류라고 떴다.


분명히 한국 국가번호 82에 010 앞자리 중 0 하나를 떼고 나머지 숫자를 입력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몇 번이고 내 번호를 입력해도 결제가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완료 페이지로 추정되는 화면으로 넘어갔다.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어서 판매자에게 캡처 화면과 함께 다시 질문을 했다.


나 : 네가 보내준 링크로 결제 시도를 했는데 결제가 안된다. 이렇게 했다.(캡처 화면 첨부) 구입이 완료가 된 거니?


내가 보낸 메시지를 읽고 판매자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드디어 이 사람이 결제도 못하는 바보 같은 한국인에게 질렸구나 싶었다. 그런데 잠시 후 짧은 메시지가 연달아 왔다.


안녕?

너 결제 실패했어.

다시 판매 링크로 들어가 봐.

내가 사진 보낼 테니까 녹색 화살표를 따라 눌러.


그리고 사진이 한 장씩 오기 시작했다.


사진 하나 하나에 어디를 눌러야 할지 귀여운 녹색 화살표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다행히도 이 친절한 폴란드인은 나의 허튼짓을 귀찮아하지 않은 모양이었고 도리어 온라인 구매도 못하는 한국인이 안쓰러웠던 것 같았다. 그는 결제 전체 과정에 대한 스크린샷을 내게 한 장 한 장 보냈고 나는 고마워하며 그대로 따라 했다. 그러나 여전히 최종 결제까지 가지 못한 나는 한국에서 폴란드 옥션을 막아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나의 이런 모습을 실시간 중계로 지켜보던 친구가 한마디를 던졌다.


친구 : 너 전화번호 입력할 때 국가번호(82) 앞에 플러스(+) 기호 넣었니?


답은 플러스였다.


구매창에 전화번호를 입력할 때 [+82-10-xxxx....]라고 입력하지 않아서 결제가 진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결제 끝까지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성공한 북한 토이 피아노 [백두산]은 열흘 뒤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다.


북한 토이 피아노 [백두산]

영어와 한글로 ‘Paekdusan’이라고 정직하게 쓰여 있으며 건반 아래 좌측 하단부를 살펴보면 ‘조선-청진’이라고 적혀있다. 그리고 우측 하단부에는 D.P.R of Korea라고 쓰여있다. 북한을 가리키는 조선 인민주의 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의 약자이다. 


외관은 목재와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국식 양철 밥상과 같이 세 개의 쇠로 된 접이식 다리가 붙어 있다. 제조 연도가 정확히 나와 있지 않지만 해외 중고장터 판매자들은 백두산 토이 피아노를 소개할 때 1970~1980년대 사이에 생산된 것으로 추측하여 소개하고 있다.


이 피아노를 구했으니 나머지 목표는 백두산 토이 피아노의 다른 모델을 구하는 것이다. 파웰 로만슈크가 소장하고 있는 백두산의 다른 모델은 더욱 구하기 어렵지만, 열심히 폴란드의 중고나라를 헤매다보면 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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