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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원 동기는 남의 얘기였다

by 세아


나는 생각보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다.
내가 편하다고 생각하면 쉽게 말도 걸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여럿 모여있거나 불편하다 생각되는 사람 앞에서는 입을 꾹 다문다.

이런 성격이 문제였을까?
나는 다들 생긴다던 조리원 동기가 한 명도 없다. 두 번이나 조리원에 들어갔지만 연락하는 동기가 한 명도 없는 것이다.

처음 조리원에 들어갈 때는 나도 드디어 육아 동지들이 생기는구나 싶어 설레기도 했다.
다 같이 퉁퉁 부은 얼굴에 촌스럽기 짝이 없는 조리원 원피스를 입고 이제 막 태어난 아기를 보러 왔다 갔다 하는 초보 엄마들이 모인 곳.
당연히 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우리 모두가 친구가 될 줄 알았다.

다른 엄마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오며 가며 유리창 안으로 요람에 쪼르르 누워있는 아기들을 볼 수 있는 복도나 마사지 실, 가끔 있는 부모 수업 그리고 식당에서였다.

첫아이 조리원에 들어갈 당시에는 큰 유행성 질병도 없어 다 같이 모이는 것이 문제없었기에 붙임성 있는 엄마들은 마주치기만 하면 쫑알쫑알 말도 잘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성격이 못되어 식당에서 밥 먹을 때 옆에 앉은 엄마들과 그 순간은 어찌어찌 말을 이어갔지만 그다음을 기약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는 조리원 동기 하나 만들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으로 홀로, 아니 어머니와 친정엄마와 함께 열심히 아기를 키워냈다.

그리고 둘째를 낳기 전 이번에는 진짜 '조동'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에 맘카페를 기웃기웃하다 인연을 하나 이어가나 싶은 적도 있었다.


조리원에 들어가기 전 가까운 동네에 사는 산모들이 친구를 찾는 채팅방에 우연히 들어가게 되었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같은 조리원에 들어가는 엄마를 알게 된 것이다.


나보다 출산예정이 빨랐던 그 엄마는 먼저 조리원에 들어갔고 나는 예정보다 빨리 출산을 하게 되며 기간이 겹치게 되어 조리원에서 만나 친해졌다.


그 엄마와 식사하며 만난 다른 두 엄마까지 넷이서 식사시간이면 같이 얘기도 많이 나누고 번호도 교환하면서 나도 드디어 동기가 생기는구나 싶은 마음에 기쁘기도 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일 먼저 친해졌던 그 엄마가 멀리 떨어진 동네로 이사를 가면서 연락도 흐지부지되었고 다른 동기들과도 연락이 자연스레 끊어졌다.

다들 조리원 동기는 영원히 간다고 꼭 만들어야 한다는 글들을 맘 카페에서 종종 보았기에 걱정을 했던 적도 있지만 지금 이렇게 세월이 지나 돌아보니 전혀 걱정할 게 아니었다고 본다.

조리원에 들어오는 엄마들은 대부분 초보 엄마들이 많기에 처음 경험해 보는 '엄마'라는 위치에서 걱정과 두려움을 같이 헤쳐나가고 의지할 동지를 찾기 위해 그렇게들 열심히 동기를 만들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이었기에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정말 못 만들어도 괜찮다.

몇 년이 지나도 잘 만나는 무리들도 있지만 점점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친구들을 더 자주 만나며 자연스레 멀어지는 무리들도 있고 사소한 일로 틀어져 아예 연락을 끊어버리는 무리들도 있기 때문이다.

억지로 만남을 만들려 하지 않아도 인연이면 이어질 거고 인연이 아니면 만남도 쉽게 깨질 수 있으니 동기 하나 없다고 위축될 필요도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고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는 당신도 조리원 동기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좋은 인연은 동네에서 우연히,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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