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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잠? 그게 뭔가요?

by 세아


7월 초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할 때 첫아이를 낳았고 찜통 같던 우리 집에서 나는 갓난아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조리원에선 때 되면 먹고 자고 싸고를 잘도 하던 우리 아이를 보며 편하게 키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집에 온 후 이런 행복한 생각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나는 모유와 분유 혼합수유를 하였는데 아기가 분유를 먹을 때는 유축을 해야 했다.
젖은 계속 물려야 양이 늘고 유축을 자주 하면 모유가 줄어들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이지 갈수록 모유 양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유축을 하면 팩에 미리 수가 쓰여있어 양을 알 수 있었는데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젖병의 젖꼭지를 무는 것보다 엄마의 젖 물기를 더 좋아하기에 혼합을 하면 아이가 젖병을 거부하는 일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제 양을 다 먹지 못할 수도 있다 하여 혼합수유를 꺼리는 이들도 있었는데 이 모든 일들이 정말 나에게 일어났었다.

그러면 그때 모유나 분유 둘 중 하나를 선택했어야 했는데 나는 모유를 조금 더 먹이고 싶다는 욕심과 모유에서 부족한 영양분을 분유로 채워줘야겠다는 생각으로 혼합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래서 처음엔 3.94로 튼튼하게 나왔던 우리 아기의 뱃구레가 점점 줄어든 것 같다.
아기는 배가 불러야 푹 잠을 잘 수 있는데 양이 충분치 않아 그런지 자다 깨는 일이 잦아졌고 배는 점점 홀쭉해져 갔다.

먹이는 것에 문제가 있던 것과 더불어 아이의 수면을 방해하는 환경도 문제가 있었다.
아기를 처음 키울 당시 나는 아기와 거실에서 생활했는데 늦게 들어오는 남편의 문소리와 밥 먹는 소리에 아기가 자다 깨는 일이 자주 있었다.

아기를 볼 시간이 별로 없던 남편은 아기가 깨면 좋아서 눈 맞추고 안아주느라 아이의 잠을 홀라당 깨버리기도 하면서 아이의 잠자는 시간은 더욱 들쑥날쑥 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유를 조금 더 먹이고 싶어 하던 엄마의 욕심과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아빠의 욕심 때문에 상황이 그렇게 된 건지도 모른다.

그때 깨닫지 못하여 우리 큰 아이는 뱃구레가 작은 아이로, 자다 수시로 깨는 아기로 커 나가면서 나를 정말이지 엄청 힘들게 했다.

이유식 한 번 먹이려면 치즈를 주는 척 밥숟가락을 입에 넣는 쇼를 해야 했고 잠을 쪼개가며 이유식을 정성껏 만들어도 잘 먹지 않아 속상하기도 하였다.
시어머니도 내가 만든 이유식을 아기가 잘 먹지 않자 "맛이 없나?"라는 말을 하며 의문스러워하기도 하여 속상한 마음에 시판 이유식을 먹이기도 하였지만 역시나 먹다 안 먹다를 반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안아서 재우지 않으면 아기는 잠을 못 잤고 눕히면 깨고 다시 안아 재우는 일이 매일같이 되풀이되었다.
겨우 재운 후 나도 자봐야지 싶으면 두세 시간 만에 어느 날은 한두 시간 만에 '에엥'하고 울면서 깨버리기 일쑤였다.
아침 일찍 나가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남편에게 차마 새벽에 아기를 맡길 수 없었기에 오롯이 홀로 아이를 보아야 했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는 날이 늘어나자 나는 점점 좀비처럼 변해갔고 아침에 아이를 봐주러 친정 엄마가 오셔야 겨우 한두 시간 눈을 붙일 수 있었다.

평소에 잠이 많지 않던 나였지만 그때는 정말 아침까지 푹 자보는 게 소원일 정도로 잠을 못 잤다. 사람이 잠을 못 자면 얼마나 미칠 정도로 스트레스가 오는지 깨달았던 것도 그때였다.

아이가 세 살 무렵이었을까 그즈음 낮에 잘 놀다 이유 없이 한 시간을 울어 젖히던 첫째였다. 자다 깨는 것도 여전했고 밤에도 자다 깨서 갑자기 자지러지듯 울어대던 나날이었다.
그런 날이 지속되던 어느 날 아이를 달래도 울음이 그치지 않자 정말 내가 미칠 것 같아 아이에게 도대체 왜 그러냐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울고 있는 아이와 마주 보며 나도 같이 울고 있었다. 자다 놀래서 달려온 남편은 내가 지른 소리를 듣고 순간 내가 아이를 던진 게 아닌가 싶어 기겁을 했다고 한다.

그때의 나는 아이의 마음을 알 수 없어 답답했고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어떤 아이는 100일이면 통잠을 잔다더라, 거부하는 것 없이 주는 데로 잘만 먹는다더라 소리를 들을 때면 더욱 내 잘못 같아 속상했다.

아이가 통잠을 못 자는 것도 시원찮게 먹는 것도 모두가 엄마인 나 때문이라고 자책을 많이 했었다. 토실토실 몸매에 소시지 팔다리를 가진 아기들을 보다 우리 아기의 삐쩍 마른 몸을 보면 진짜 나 때문인가 싶어 괴로웠다.
아이가 이유도 없이 한참을 울어댈 때도 내가 아이의 마음을 몰라준 게 있었는지 한참을 고민하였다.

지금도 힙시트를 하고 옥상에 올라가 자장자장 노래를 부르며 제발 오늘은 푹 잘 수 있게 해달라고 달님에게 빌었던 날들이 선명하다.
너무 지치고 힘들어 눈물을 흘리던 날들도 떠오른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키우는 것 같지? 뭐가 문제지?'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런데 이제 와 돌이켜보니 나의 잘못 때문에 아이가 그렇게 된 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나의 부족한 면도 있었겠지만 아이 둘을 키워보니 그냥 아이의 기질이 그렇고 체질이 그런 것 일뿐이었다.

둘째도 남자아이였지만 눕혀만 놔도 잘 잤고 우는 일도 거의 없이 방실방실 잘 웃었으며 먹는 것도 곧잘 먹었다.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큰 아이는 겁이 많아 자다 깨면 꼭 엄마를 찾아 화장실에 같이 가주어야 했지만 둘째는 한 번 잠들면 아침까지 깨는 일이 없었고 어쩌다 깨어도 혼자 잘 다녀왔다.

병원에서 큰 아이의 기질 검사를 한 적이 있는데 타고나길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에 몸에 긴장감이 많고 그래서 겁을 많이 내는 것이라 하였다.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것이었다.

지금도 남의 아이는 잘 먹고 쑥쑥 크는데 우리 아이는 왜 안 클까, 혹시 내가 잘 못 챙겨줘서 그런 걸까 괴로워하는 부모가 있을 수도 있다.
남의 아가들은 100일의 기적이라는데 왜 나는 기절의 연속일까 속상해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 탓이라고 자책하지 말자.

분명 당신도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거다.

남의 아기와 비교하지 말고 우리 아이가 크는 대로 그냥 그대로를 받아들이자.

잘 못 자는 것도 잘 못 먹는 것도 나 때문이라는 생각을 버리자.
엄마가 괴로워하는 날이 길수록 아이를 키우는 기쁨보다 키우는 게 힘들다 느끼는 날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행복하지 않은 엄마의 마음은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시간이 힘들겠지만 조금만 버텨내자.
자책하는 마음만 내려놓아도 아이를 보며 한 번이라도 더 웃어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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