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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신을 찾는다

by 세아


큰 아이가 조리원에서 나오고 몇 달이 지났을까?
저녁 9시가 넘은 시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우리가 사는 지역의 무슨 보건 담당하는 곳이라고 소개를 받았던 것 같다.
그 저녁에 나에게 왜 이런 곳에서 전화가 온 것인지 알 수 없어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했던 걸로 기억난다.

내가 아이와 2주간 지냈던 조리원에서 근무하신 선생님 중 한 분이 결핵에 걸리셨던 걸로 확인되었고 아이들이 감염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과 조만간 설명회가 있을 거라는 말이었다.

나는 정말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고 그때는 그게 심각한 일이라는 걸 자각하지 못하였는지 '아.. 그래요.. 일단 알겠습니다' 하고 말을 했다.

수화기 넘어 담당자는 이런 일이 생기게 되어 유감이라며 말을 건넸고 나는 우리 아이가 몇 달을 약을 먹게 될 거라는 것도 모른 채 전화를 끊었다.

조리원 동기가 없던 나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정보를 공유할 사람이 없었고 며칠 후 상황 설명을 듣기 위해 모인 강당에서 화를 내고 언성이 높아지는 사람들 속에서 이 일이 심각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 기간 내에 감염된 선생님과 접촉됐을 것으로 파악된 아이들의 부모들은 아직 어리기만 한 자기 자식이 결핵에 옮았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상당 기간 결핵 약을 먹여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책임질 것을 요구하였다.

이미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3개월 정도는 약을 먹였던 것 같다.
아직 어린아이들이었기에 약을 먹이는 것이 부담스럽다 생각된다면 먹이지 않고 조금 더 커서 검사를 해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기만 해야 한다 했다.

나는 무작정 불안감을 가지고 기다리느니 약을 먹이는 것으로 택했다.
먹기 싫어 몸부림치는 아가에게 억지로 약을 넘기며 제발 우리 아이가 감염된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몇 달 후 다행히 결핵에 감염된 게 아닌 걸로 확인되며 이제는 약 먹는 일 없이 건강하게 잘 커나가자 싶을 즈음에 돌 전에는 잘 걸리지 않아 예방주사도 돌 이후부터 맞는 수두에 옮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울긋불긋 물집이 생긴 아기의 몸에 약을 뿌려주며 왜 우리 아기만 이런 일이 생길까 속상해했다.

큰 아이가 두 살 즈음 고열이 나 며칠째 고생 중인 날이 있었다. 해열제를 뱉어내어 다 먹이지도 못하고 찬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면 기겁을 하여 우는 아이를 달래다 지친 몸으로 그냥 안아재우려 힙시트를 하였다.
이미 전날부터 잠을 제대로 못 잔 나도 그래 그냥 같이 자자 싶은 마음에 아이를 재우려 한 것이었다.

등을 토닥이며 재우는데 아이가 갑자기 몸을 움찔하기에 아이를 내려다보았는데 눈이 마주친 아이는 그때부터 경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내 품 안에서 경기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너무 놀라 남편을 소리쳐 불렀다.
5층에서 순식간에 달려 내려와 차를 타고 응급실을 향하며 119에 전화를 하였다.
아이가 이러다 질식하면 어떡하냐고 눈물을 흘리며 구급 대원과 통화를 했었다.
새벽시간이라 차도 별로 없었고 응급실까지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그땐 그 거리가 얼마나 멀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아이에게 해열제를 언제 먹였냐 물어보는 의사의 말에 아이가 먹다 자꾸 뱉어내어 주다 말았다고 사실대로 말하였다.
그때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던 의사의 눈빛과 끝까지 약을 먹여야지 먹이다 말면 어떡하냐고 채근하는 그 말투에 나는 가뜩이나 아이 때문에 불안한 마음에 죄책감까지 들어 마음이 괴로웠다.

응급실에서 경기를 멈추는 주사를 놔주었지만 중간중간 크게 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어대는 아이를 보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때 이러다 우리 아이한테 큰일이 나면 어떡하지라는 공포를 처음 느꼈다.
'아가야 엄마가 너무 미안해', '제발 우리 아이를 살려주세요'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밤새 아이 곁에서 못난 엄마 탓을 하고, 이 아이가 내 옆에서 떠날까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기만 했다.

다행히도 아이는 시간이 지나자 경기가 멈추고 안정을 되찾았다. 경기가 나고 다음 날 재발하는 경우가 많기에 잘 지켜보라는 의사의 말에 불안하였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그 후로도 우리 큰 아이는 감기에 걸렸다 하면 편도선이 잘 부었고 그래서 고열이 생겼다.
한번 경기를 일으켰던 경험이 있기에 나는 아이가 열이 나면 긴장했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아이를 간호했다. 끔찍했던 기억이 떠올라 아이가 싫어해도 약을 끝까지 먹이고 몸을 닦아주었다.

힘들게 잠든 아이를 보며 '우리 아이 열 좀 떨어지게 해 주세요' 빌며 신을 찾았다.
그 신이 하느님이던 부처님이던 상관없었다.
그냥 모든 신께 빌고 또 빌었다.
'우리 아이를 지켜달라고'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자기 탓인 것 같아 괴롭다.
내가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었다면 아이가 아프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너무나 괴로워지는 것이다.
차라리 내가 아프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아픈 아이 옆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엄마는 신께 기도드리는 것밖에 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11살, 9살이 되었지만 아직도 아이들이 아프면 나는 긴장이 된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고 아이 옆에서 기도를 드린다.

우리 아이를 지켜달라고, 빨리 낫게 해달라고

그때만큼은 신이 있기를, 내 기도가 닿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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